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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니 Nov 25. 2020

약방 호은당의 뒷이야기

<에피소드 14-흉가체험, 그 후.> 해설

<에피소드 14-흉가체험, 그 후.>


※살귀오사환

… 이름 뜻 그대로 귀신을 죽이고 다섯 가지 사기(邪氣)를 치료하는 환약이다. 귀신이나 여우에게 홀렸을 때 사용되기도 하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도 사용된다. 다섯 가지 사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은 기록마다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병을 일으키는 인자, 혹은 기운을 뜻한다.

 귀구, 귀전우, 단사, 도인(복숭아씨), 용골, 웅황, 원청, 적소두를 가루로 만든다. 가루로 만든 후에는 밀랍을 녹여 섞어 동그랗게 환약을 만든다. 그다음 붉은 주머니 안에 살귀오사환 한 알을 넣고 팔에 묶어 둔다. 혹은 꿀을 졸여 섞어 환약을 만든다. 미음과 함께 최대 세 알씩 섭취하도록 한다. 「동의보감」



 작가가 인터뷰를 위해 호은당에 방문했을 때, 호은당 식구들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먼저 인터뷰를 하겠다며 선뜻 자리를 잡은 것은 연화 선녀였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작가의 앞에 털썩 앉아 한숨을 쉬었다.


 “자기야, 자기도 흉가 체험 이런 거 좋아해?”


 설마요.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연화 선녀는 자신이 물어놓고 자신이 대답했다.


 “안 좋아하지? 자기는 바위도 약한 데다 새가슴이라서 안 갈 거야. 그렇지?”


 연화 선녀가 한숨을 푹 쉬는데, 은미 씨가 방에서 나와 그 옆에 앉았다. 은미 씨는 빨간색 비단 주머니를 내밀었다. 내가 멀뚱히 보고 있으니 은미 씨가 어깨를 주무르며 낮게 중얼거렸다.


 “저 쪽 팔 내 봐요. 이대로 사흘만 지내다가 나흘 째 되는 날 와요. 떼 줄게.”


 은미 씨는 내 소매를 걷고 한쪽 팔뚝 안쪽에 비단 주머니를 걸었다. 동그랗고 작은 환약이 든 것 같은 주머니를 붉은 실로 단단히 묶은 은미 씨는 매듭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왜, 왜요! 불안하게 왜!


 “그냥.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차를 가지고 온 우민 씨도 싱긋 웃으며 자신의 오른팔을 툭툭 쳤다. 다들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괜히 오늘 왔나. 오늘이 정우 씨 월급날이라서 일부러 오늘 왔는데. 월급날 맛있는 거 사 준다고 했는데.


 “아, 오늘 아빠 월급날이야?”


 연화 선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침침하던 사람이 갑자기 활기를 찾았다. 그녀는 인터뷰는 내팽개치고 호다닥 달려 주방으로 사라졌다. 아빠아아! 하면서 말이다.


 “나랑 해요, 인터뷰. 쟤랑 뭘 해.”


 은미 씨는 한숨을 쉬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 전원을 켰다. 은미 씨와 이번 에피소드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호기심이라는 것은 사람을 여러모로 곤란하게 한다. 물론 호기심이 많다는 것은 좋은 것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을 배우게 하고 도전을 하게 한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호기심을 가지고 산다. 그 호기심으로 세상을 배우고 성장하며 살아간다. 순수한 호기심은 인간을 성장하게 하고 발전하게 한다. 하지만 그 호기심이 늘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오지는 않는다. 그 호기심이 엉뚱한 곳으로 튀어 버리면 좋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이번처럼 말이다.

 담이 좀 세다, 귀신 따위 믿지 않는다, 겁이 없다 하는 사람이라면 종종 농담처럼 언급하는 흉가 체험은 사실 아주 위험하다. 누구나 알고 있다. 위험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나름의 이유와 자신감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개중에는 정말로 안전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전하지 못하다. 그 어떤 비방을 하더라도, 그 어떤 비책이 있다 하더라도 위험한 것은 변하지 않는다.


 “흉가든 폐가든, 어쨌거나 내 집이 아니잖아요. 거기에 누가 살든, 어쨌든 거긴 내 집이 아니죠. 입장 바꿔 봅시다. 작가님 집에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 갑자기 들이닥치더니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뒤적거리고 만지고 어지럽히고... 기분이 좋으시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은미 씨는 픽 웃었다.


 “그래요. 그거예요. 귀신도 기분이 나쁠 거예요. 그 귀신이 나쁜 귀신이든 아니든 말입니다. 그런데 그 집에 있던 귀신이 하필이면 악한 녀석이었던 것이 문제였죠.”


 귀신이라고 다 악한 것도 아니고 또 다 선한 것도 아니다. 어느새 약과 하나를 우물거리며 온 연화 선녀가 설명을 이었다.


 “그런 놈들이 있어. 살아있을 때부터 쓰레기 같은 놈들은 죽어서도 쓰레기야. 죽어서 저승 가면 진짜 뒤지는 거 아니까 안 가고 버티면서 음침하고 사람 없는 곳에 숨어서 버티는 거지.  걔네는 산 사람이 자기 영역에 오는 걸 싫어해. 산 사람이 있는 곳엔 사자가 항상 있으니까.”


 귀신들은 그렇게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그 영역에 숨어 지낸다. 그 영역에 들어온 인간이 있으면 어떻게든 밀어내고 쫓아내려고 한다. 무서운 소리를 낸다거나 물건을 던지거나 하는 것이다. 자신의 공간에서 나가라고. 산 사람 들락거리면 버티기 힘드니까. 양기가 들면 음기가 약해지니까. 산 사람이 자꾸 들락거려서 양기가 차면 사자가 찾아오니까. 그래서 그들은 더욱 깊숙이 숨어들고 더욱 철저히 산 사람을 배척한다.

 그런 곳에, 악심으로 똘똘 뭉친 악귀가 둥지를 튼 음기의 구덩이에 산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고 했다.


 “사람마다 달라. 뭐, 신의 은총이라던지 조상신의 도움이라던지. 무슨 버프를 받아도 위험한 건 변하지 않아. 수호신이 있어서 철벽을 치더라도 말이야. 몇 번은 안전하고 무사하겠지. 하지만 자꾸 반복되면 결국엔 그 단단한 철벽에도 금이 갈 수 있어. 그러니 조심해야 해.”


 무서운 이야기는 그만 하고, 처방한 약에 대해 물었다.


 “아, 그거? 원래 환약으로 먹는 거예요. 씹어 먹어야 하는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잖아요. 두 병당 한 알 씩 넣었는데 어차피 제대로 안 먹을 거 알았으니까요. 중간 즈음에 정신 들어서 먹기 시작해도 제대로 삼켰던 분량은 세 알도 되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은호는 뭐고 은미 씨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 정확히 무엇입니까?”


 사실 어젯밤에 정우 씨가 미친 듯이 코톡을 보내며 괴롭혔던 질문이다. 나는 주방문 너머에서 까딱이는 새카만 머리통을 힐긋 보고 다시 은미 씨를 보았다. 은미 씨와 연화는 픽 웃었다.


 “다 까? 까도 돼? 자기 그럼 이거 끝인데, 까? 진짜? 자기가 괜찮겠어?”


 “뭐, 다 아시면서 묻는 저의는 아아주 자알 알겠는데요... 다 불어요? 진짜? 이대로 엔딩이 나도 나는 상관없는데, 작가님 괜찮아요? 에피소드 엄청 남았을 텐데. 우민이 등장하고 은동이 나오자마자 끝내도 돼요? 정말? 작가님 아직 할 말 많다고 한 것 같은데?”


 “제가 잘 못 했습니다.”


 작가는 냉큼 고개를 숙이고 일어났다. 콧대를 세우고 턱을 든 채 고고하게 웃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작가는 주방으로 들어가 문 앞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정우 씨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내가 안 된다고 했잖아요! 나 망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아, 뭐 어때요? 어차피 출간도 안 했잖아! 그리고 왜 나만 모르는데! 불공평하지! 알면 미리 마음의 준비도 좀 하고 그러면 좀 좋아? 더럽게 치사하네. 아무리 스토리상 공개할 수 없는 거라지만, 내가 주인공인데! 주인공은 난데! 왜 주인공을 왕따 시키는데! 에라! 망해버려라! 동네 사람들! 독자 여러분! 이거 그냥 확 망하게 해 버려요! 보지 마요! 저얼대 보지 마!!”


 정우 씨는 마당을 가로질러 달려가며 망해라! 망해라! 소리를 질러댔다. 하얀 강아지 은동이도 덩달아 같이 겅중겅중 뛰어다니고 우민 씨는 뭔지도 모른 채 함께 달렸다. 은미 씨와 연화 선녀가 뒤에서 한심하다는 듯 웃고 있었지만 작가는 전속력으로 정우 씨를 잡기 위해 달렸을 뿐이다.

 이 나쁜 주인공 놈. 다음 에피소드에서 두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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