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없는 생과 사 2

성별, 시대, 국가, 가족 …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

by ㄹㄴ


9주차 1일. 탱이(우리 아이 태명)를 보고 왔다. 젤리곰 모양, 모두 젤리곰 때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하는데, 우리 부부도 그랬다. 초음파로만 만나는 탱이의 2등신 몸뚱아리가 귀여웠다. 배가 뽈록 나온 걸 봐서 건강하게 잘 크는 것 같다. 기분이 좋다. 2.3cm의 이 작은 아가는 벌써 심장도 있고 아주 빠르게 뛴다. 1분에 184bpm.



탱이는 세상에 나와서 나와 남편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를 먼저 만나고, 그 다음 우리 가족구성원이 꾸려 놓은 안전한 보호텐트 속에서 생활하겠지. 그러고는 더 크면 어린이집을 다니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어 가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아기는 마주하는 세상을 마냥 기분 좋게 받아들일까? 혹시 두렵거나 낯설어 세상과의 마주침을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그랬는데 임신하면 걱정인형이 된단다)



죽음과 마찬가지, 태어나는 것도 우린 선택할 수 없다. 우선 우린 태어나기를 선택한 적이 없다. 나를 세상에 나게 해주어 부모님께 감사한 것과 별개로, 출생은 타의(부모)에 의해 이뤄진다. 가끔은 (슬프지만) 부모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출생도 있다. 축복 속 탄생이건 그렇지 않건 어쨌든 세상에 던져진 우리는 생을 살아가야 하고 생을 헤쳐나가면서 행복한 일들에 웃기도 하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혹독한 현실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성별, 국가, 부모, 심지어 살아갈 시대마저 선택할 수 없는 우리. 가끔은 내가 선택해서 꾸려온 삶이지만 그냥 그렇게 설계되어 여기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떨치기도 힘든 우리.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의지를 발휘해 열심히 나아가는 우리. '선택'의 영역이 좁다고 느끼는 순간, 인간을 향한 가엾은 감정이 일고, 가능한 이 작디 작은 생명, 탱이에게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물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그러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얼마나 축복인지도 깨우쳐야 한다. 그리고 어찌저찌 주어진 환경들 외에 내가 소소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 지도, 그 선택들은 물론, 하루 아침에 다른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해도 하루하루 쌓여 몇 개월 혹은 몇 년 뒤에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온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비록 나는 그 감사함을 잊고 살지만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게으르게 늘어져있지만, 내 아이만은 그 수많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온전히 자기 것으로 민들어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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