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에서 산맥까지 Ep. 4
머나먼 오지까지 와서 하려던 세리머니에 집중할 수 없었다. 각종 루머와 대규모 봉쇄 이야기에 주변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며칠 만에 핸드폰 전원을 켰다. 켜자마자 가족들한테서 온 메시지가 메시지 창을 가득 채웠다. 코로나 사태가 터진 것이다.
수정, 필립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함께할 지인 L 은 부랴부랴 페루 정글을 떠나 콜롬비아로 갈 준비를 하였다. 새벽 3시에 정글 도시 이키토스에서부터 빠른 보트를 타고 아마존강을 따라 올라가 저녁 7시쯤 콜롬비아 국경에 도착하였다.
숙소에 도착하자 어느 땀을 뻘뻘 흘리는 덩치 큰 여행객이 말을 걸어왔다.
“입국 심사했어? 지금 다들 패닉이야.”
아마존 트리플 국경은 아주 특이한 케이스다. 페루, 콜롬비아, 그리고 브라질이 경계를 나누고 있지만, 그 지역 주민들은 가깝게 공존하며 교류하는 사이라, 누구나 쉽게 보트를 타고 강 건너편 있는 마을, 아니 나라, 를 방문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세관 사무소는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콜롬비아 국경 땅에 서 있었지만, 아직 입국심사를 보지 않은 상태였다.
알고 보니 그들이 보트에 있을 동안 콜롬비아 정부가 국경을 봉쇄한다는 뉴스가 나왔던 것이다. 걱정으로 밤을 새운 뒤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부터 그들은 세관소 문 앞에서 기다렸다. 그러자 관세사가 나와 이미 국경이 봉쇄되었다며 굳게 말하며 얼른 페루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들은 손에 땀을 쥐며 다시 보트를 타고 페루 소속 부두에 도착하였지만 군인들이 입구를 막고 있어 부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군인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페루 국경 역시 닫혔다며 들어올 수 없다고 하였다. 그들의 신분은 이제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비슷한 신세에 처한 외국인이 속속 늘어나자, 그들은 무리를 이뤄 페루 세관소까지 갈 수 있었다. 다행히 어느 관세사가 도움을 주며 조언을 해주었다. 오늘부로 페루 내 모든 장거리 운동 수단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오늘 밤 보트가 그들이 이키토스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우리는 부두에서 선박을 기다렸다. 서서히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밤 12시가 되어서야 멀리서 불빛이 보였다. 선박의 윤곽이 보이자 사람들은 손뼉 치며 기뻐했다. 하지만 선박에서 내린 선장은 화가 잔뜩 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가 크게 소리쳤다, 외국인 출입 금지.
그에 따르면 현재 장거리 운송 수단이 금지되었고, 지금 같은 비외국인주의 분위기에 외국인까지 운송하면 자신의 선장 면허가 취소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비교할 수 없지만 아주 잠시나마 난민들이 겪는 두려움을 느꼈다. 어디 갈 곳이 없는 심정.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심정. 나의 사람들이 없다는 심정.
외국인들의 절실한 부탁, 그리고 몇몇 군인들과 페루인들의 도움으로 그들은 끝내 선박에 탑승할 수 있었다. 느린 선박이나 3일에 걸쳐 아마존강을 타고 내려와 이키토스로 돌아왔다.
그 후로 그들은 밖으로 한번 나가지 못한 채 정글 안에서 4개월을 보냈다. (이때 일어난 많은 일들 - 기생충, 부족한 식량, 등 - 은 다른 다른 에피소드에서 소개하겠다.) 국내 이동 운송이 다시 열였을 때 그들은 쿠스코에서 4개월을 보냈고, 콜롬비아 국경이 열렸을 때에 그들은 드디어 Sierra Nevada 산맥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