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에서 산맥까지 Ep. 3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해 본 적이 있나요.
필립과 수정은 멕시코에서 재회하기로 약속을 하고 각자의 여정을 떠났다. 수정은 그 기간 동안 Sacred plant medicine diet (아마존 샤머니즘 치유 세리머니)에 몸과 마음을 담갔다. 꿈과 무의식, 영성 세계 사이를 오고 가며 온전한 치유와 위로를 받았다. 그 중심에는 필립이 매 순간 함께하였다. 그를 평생 알고 지낸 것처럼 그녀는 그를 그리워했고 의지했으며, 확신했다. 재회한 그들은 2년 동안 중남미, 유럽, 아시아를 함께 여행하며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키워갔다. 세계 곳곳에 숨겨진 대자연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그들 자신을 탐구하였다.
무엇을 진정으로 관심 가져본 적 있나요.
다시 돌아온 페루. 개개인에게는 어느 한 지역과 이번 생을 뛰어넘는 연결고리가 있다. 아시아인 수정과 북유럽인 필립에게는 이 지역이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끌리며 무언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직감을 주는 곳.
쿠스코의 Sacred Valley (신성계곡)에 있을 무렵. 고산지대의 고도를 온몸 전체로 느끼며 침대에 누워있었을 때였다. 필립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정글에서 같이 지낸 지인들과 함께 콜롬비아에서 Permaculture (퍼머컬처) 농장을 시작하자는 이야기.
수정은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다. 많은 생각이 오고 갔기보다는 매초가 느려지는 기분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자 그 역시 조용해졌다.
이미 수년째 퍼머컬처와 Food Forest (푸드 포레스트)에 대한 관심이 컸고 공동체 생활과 농장에서 일해본 경험도 꽤 있었다.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실용적 지침은 혼란스러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건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참으로 매력적이게 느껴진다. 먼 미래에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지만 수정의 바로 앞 미래에는 ‘농장’은 없었다. 형체 없이 상상만 하던 것이 눈앞에서 현실화될 때는 기대와 달리 당황스럽고 두렵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관심사가 그저 우리를 멋지게 보여줄 만한 도구로만 존재하길 바랄 뿐,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Be careful what you wish for. (무슨 소원을 빌지 조심하라.)”라는 말이 있나 보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두드리며 찾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수정은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말했다. 떠돌이 신분이 익숙한 수정에게 어디 한 곳에 정착하기에는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수정은 혼란스러웠으며 확신이 들지 않았다. 아직 호주에서 다니던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상태여서, 수정은 고민 끝에 대학을 마치고 프로젝트에 힘을 보태기로 결정을 하였다. 개학 전 필립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수정은 덴마크로 향했다.
덴마크에 있을 동안 호주에서부터 비보가 들려왔다. 어마어마한 대형 산불이 셀 수 없는 많은 식물과 동물을 잡아 삼켰다는 비극적인 소식이었다. 순간 부끄러웠다. 전 지구가 인간의 독선적인 권세에 아파하는 시기에 고작 나 하나 안전하자고 졸업 종잇장을 받으려 안달하는 모습에 얼굴이 붉어졌다. 전쟁 난에 다 쓰러져가는 집 기붕을 움켜잡고 아등바등하는 것 같았다. 뜬눈으로 몇 밤을 새운 뒤 수정과 필립은 남미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3주간 페루 정글에서 Sacred plant medicine diet을 한 뒤 그들은 아마존강을 타고 올라가 콜롬비아 국경을 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