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에서 산맥까지 Ep. 2
4년 전, 수정이 남미 대륙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곳은 페루였다. 열정과 낭만, 도전과 아름다운이 공존할 거라는 부푼 기대를 가지고 도착한 리마는 실망스러웠다. 먼지 날리는 도로 위 회색 건물 사이로 달리는 찜통 버스 안에서 수정은 결심했다. 핸드폰 지도를 켜 페루에서 가장 푸른 색깔인 지역을 손으로 콕 찍었다. 이마와 손의 땀방울이 가르킨곳은 아마존 정글이었다.
별생각 없이 탑승한 아마존 정글행 비행기. 초경량 기능성 가방을 메고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사파리 복장을 입은 사람들 사이로 수정은 흰 티셔츠에 면 나팔바지 차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착륙 안내방송이 나오면서 양쪽 비행기 창문 속으로 펼쳐진 광경을 본 후에야 수정은 아마존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꼬불꼬불한 갈색빛 강을 따라 자란 짙은 초록색 캐노피는 끝없이 울창하였다.
비행기 뒷문으로 향한 줄이 서서히 빠지자 수정은 마지막으로 내렸다. 문밖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훅 하고 어마어마하게 습기가 찬 뜨거운 공기가 목구멍으로 콱 막혀왔다. 숨을 쉬기 어려웠다. 아니, 들숨날숨의 미묘한 온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여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태양광이 직선으로 내리 쬐 눈도 완전히 뜨지 못하여 미묘하게 어지러웠다. 어마어마한 열기를 뿜어내는 태양이 이렇게 가깝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Welcome to the Jungle.’ 싸구려 플라스틱 배너가 걸린 허름한 문을 나가자 순식간에 벌들이 모여듯이 등치가 있는 남자들이 수정을 향해 소리쳤다.
“Mototaxi! Mototaxi!”
장기간 여행을 통해 숙련된 수정은 최대한 무표정으로 벌들을 뚫고 공항 밖으로 걸어 나갔다. 공항 안과 밖에서 받는 교통비가 천지차이라는 것은 집 밖 생활을 꽤 해본 배낭여행자들은 알고 있다. 혹시나 핸드폰 배터리가 나갈 상황을 대비해서 적어놓은 호스텔 주소 종이를 꾸깃꾸깃해진 채 손에 쥐고 수정은 모토 택시에 올라탔다.
아픈 원주민 역사와 끊임없이 진행되는 환경파괴에 정글 도시 이키토스 (Iquitos)의 에너지는 잠시 들린 여행객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무겁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동시에 마성의 블랙홀같이 지나가는 모든 이를 빨아드린다. 또한 깊은 정글에 둘려 싸여있기에 이 도시는 초자연적인 인력에 끌려 움직이며 변화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찾을 수 있게 되며 그 끌림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마법의 법칙이 존재한다. 아마존의 ‘신성한 덩굴’을 통해 마음 치유를 찾는 이들에게는 화이트 매직이 일어나고, 마약이나 성매매를 찾는 이들에게는 블랙 매직이 일어난다.
수정은 이 예측할 수 없는 도시가 싫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떠날 수 없었다. 그녀가 찾고 있는 그 무언가가 이곳에 있다는 직감이 강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직감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정글 도시에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없는 건지, 수정은 이곳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스코틀랜드 괴짜 천재가 운영하는 호스텔에서 일하게 된 지 며칠채 되던 날이었다. 키가 크며 말랐고, 머리를 두피까지 빡빡 민 덴마크 남자가 찾아왔다.
그가 수정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 “You are strange.”
그리곤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오랜 외국생활 중 매번 한국 발음을 고쳐주는 것이 귀찮아 수정은 몇 년째 불려지고 있는 영어 이름을 알려주었다.
“That’s not your name.” 스칸디나비아 남자가 그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는 몇 번 우기다 결국 이름을 알려주었다.
“수정.”
“아름다운 이름이네.” 그가 그녀의 눈을 빤히 보며 말했다.
그를 만난 이날은 수정의 생일이었다.
* Author’s note: 아마존의 ‘신성한 덩굴’ 이야기가 곧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