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1살의 여름

캐러멜

by 리나권

시골, 예천에 사시는 왕할머니가 계셨다. 아마 외할머니의 어머니라고 하셨던 것 같다. 꽤나 시골이라 예천에 도착하면 소똥 냄새가 났고 할머니 댁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놀러 온 어린 증손녀가 신경이 쓰이셨는지 왕할머니께서는 밥솥 선반 위, 비닐봉지에 숨겨두신 캐러멜을 어린 내 양손 가득 쥐여주시곤 했다. 어린 증손주들의 선물을 누가 훔쳐갈까 봐 꽁꽁 숨겨놓으셨는지 잔뜩 구겨진 봉지 안에는 캐러멜, 옥춘, 젤리가 섞여 있었고 그걸 꺼내 내 손에 가득 쥐여주실 때면 손바닥은 까칠했지만 이상하게 따뜻했다. 왕할머니께서는 언제 올지 모르는 증손주를 위해 드시지도 않으시던 사탕을 잔뜩 모아두셨다. 물론 엄마나 외할머니는 달가워하지 않으셨지만 단정한 쪽진 머리의 꼿꼿하신 왕할머니는 이기지 못하셨다. 그래서 왕할머니 댁에 간다고 하면 괜히 설렜다. 나를 따스하게 맞아주시던 왕할머니도, 달콤한 캐러멜과 젤리도, 또 정겨운 시골 냄새도. 모두 나를 설레게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왕할머니를 거의 찾아뵙지 못했다. 한참을 뵙지 못한 왕할머니는 결국 내가 살던 도시로 올라오신 후에나 뵐 수 있었다. 꼿꼿하셨던 왕할머니께서는 몸이 많이 상하신 상태로 도시로 올라오셔야 했고 집 근처에 사시던 외할머니댁에서 간병을 받으셨다.

그 당시에 왕할머니는 더 이상 내게 사탕을 쥐여주시지 못하셨고 내 머리를 자주 쓰다듬어주시지 못하셨다. 할머니는 인지가 떨어지셔서 나를 자주 알아보지 못하셨다. 그게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를 종종 알아보시고 내 이름을 가끔 불러주셨다. 그 사실만으로 어린 나는 마냥 좋았다.


11살의, 비 오는 여름날이었다. 왕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날, 그날 나는 지독한 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파서 침대에서 끙끙 앓고 있었는데, 엄마가 왕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장례식장에 갔다 오겠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반지하에 살고 있었던 그날, 바깥엔 비가 왔다. 계속해서 빗소리가 들렸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첫 '죽음'이다. 내가 기억하는 첫 죽음은 축축했다. 또 내가 비 오는 여름날을 싫어하게 된 첫 번째 계기이기도 하다. 뉴스에서만 봤던 죽음이라는 사건이 처음으로 내 주위에서 발생했다.

열 때문이었는지, 축축함 때문이었는지, 죽음에 대한 충격 때문이었는지, 머릿속에 옅은 안개가 낀 듯 흐릿했다. 왕할머니께서 내 손에 쥐어주셨던, 달던, 다정했던 캐러멜이 계속 생각이 났다.


‘아, 이제 더 이상 그 달던 캐러멜이 없겠네.’


그런 생각을 흐릿하게나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또래보다 늦되었던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어린아이였다. 그냥 그 캐러멜이 생각이 났다. 그 '죽음'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게 된 건, 적어도 3년은 지나고 나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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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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