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2살의 여름

by 리나권

12살의 여름, 이른 새벽이었다. 엄마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폐에 물이 찼대. 좀 위험하다는데."


나는 당연히 아빠 이야기인 줄 알았다. '아, 아빠가 또 위독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직 잠에서 못 깬 척 엄마의 품에 파고들었다. 엄마는 내가 잠에 깬 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품에 파고든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고 학교에 다녀왔다. 학교에 다녀오니 늘 그렇듯 엄마는 집에 없었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데 집으로 급한 전화가 왔다. 엄마가 텔레비전 옆에 있는 상자에 오천 원 있으니까 그 돈을 가지고 어느 대학병원 장례식장으로 곧바로 오라고 했다. 바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빠가 있는 병원이 아니길래, 아빠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 주변엔 당장 위독한 분이 없었기에, 그냥 엄마가 심부름을 시킨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착하니 외가 친인척 모두가 보였다. 엄마 옆에 앉아있던 이모가 나에게 핀잔을 줬다.


"쟤는 왜 저런 옷을 입고 왔대."


그때 나는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이모 말에 어리둥절한 채 앞을 바라보니 영정사진 속 외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계셨다. 나는 심부름을 온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외할아버지를 보내러 온 것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새벽에 들은 위독하다는 사람은 아빠가 아닌 외할아버지셨다.




외할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할아버지셨다. 아주 무뚝뚝하셨다는 이야기이다. 5살 때부터 8~9살 때까지 외할아버지 댁에서 살았지만, 단 한 번도 다정하게 안아주시지도 마주 보며 대화해 주시지도 않으셨다. 할아버지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나는 어릴 때, 아프면 걸핏하면 토하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많이 아팠고, 할머니와 엄마는 내 곁에 없었다. 끙끙 앓다가 화장실로 토하러 갔는데 차마 변기까지 가지 못하고 화장실 바닥에 토하고 말았다. 어쩌지 못하고 화장실 문 바로 앞에 앉아 울고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나오셔서 놀라신 눈으로 나를 응시하셨다. 할아버지께서 내가 치울 테니 안에 들어가서 자라고 말씀해 주셨다.

사실은 당연한 이야기다. 어린아이가 아파서 바닥에 토하면 보통의 어른들은 엉망이 된 바닥을 치워주실 것이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것은 할아버지의 눈빛이다. 할아버지께서 놀란 눈으로 걱정스럽게 나를 봐주셨던 눈빛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또 기억에 남는 일이, 정확하게 말하자면 물건이 하나 있다.

할아버지 방엔 늘 은은한 먹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가 계실 때,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면 할아버지는 차분히 서예를 하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훌륭한 서예 솜씨로 손주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한 두 해가 지날 쯤이 되면 천자문을 손수 적으셔서 하나씩 선물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손주 한 명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쓰기 시작하셔서 천자문이 완성되면 주시는 것 같다. 한자와 밑에 한글로 음과 뜻을 정성 들여 쓰시고 마지막으로 손수 표지까지 엮어서 만들어 주신 소중한 천자문이었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아주 소중하게 내 책장 한 켠에 보관하고 있다.




어렸던 나는 장례식장에 그리 오래 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례식장에 어린애들을 오래 둬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한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하지만 장지날은, 할아버지가 묻히신 날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장지로 가는 산은 험했고, 사촌 동생들과 나눠 먹은 도시락의 고추는 유독 매웠고, 강해보이던 이모는 서럽게 우셨다. 그리고... 그날도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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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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