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아빠가 떠났다.
13살 여름이었다. 그날은 검도 도장에서 운동이 끝나고 관장님이 축구를 하고 싶으면 축구를 하고 가라고 했다. 그래서 도장 친구들과 신나게 축구를 하고 집에 도착하니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또 위독하다고 하네. 바로 병원 가야 할 거 같으니까 씻고 기다리고 있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빠는 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많은 위기를 넘겼고 그날도 넘길 수 있는 위기 중 하나라고 여겼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지나갈 위기라고 여겼다. 평소라면 나를 데리고 가지도 않았을 엄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나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훗날, 엄마에게 그날은 나를 왜 데리고 갔냐고 물으니 엄마도 모르겠다고 대답하셨다. 그날은 그냥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엄마의 오토바이 뒤에서 결국, 아빠가 나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수많은 위기를 넘기던 아빠가, 매년 적어도 두 번씩은 응급실로 실려갔던 아빠가, 그렇게 쉽게 떠났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엄마한테 끊임없이 되물었다.
"엄마, 거짓말이지? 아빠가 위독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닌데...... 거짓말이지? 그렇게 쉽게 갈 사람이 아닌데, 그렇지 엄마? 잘못 들었지?"
엄마는 내 말도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오토바이를 몰며 병원에 빠르게 도착했다.
병원은 아수라장이었다. 이미 도착한 가족들이 울고 있었다. 오랜 시간 아빠를 간호해 주셨던 간호사님들도 울고 계셨다. 그 울음들을 보니 실감이 났다. 무서웠다.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아빠를 보러 들어가야 하는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 진짜 돌아가셨나 봐.'라며 생각에, 너무 무서워 병실 바깥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떨고 있는 나를 본 엄마가 조심스레 말했다.
"리나야, 아빠 마지막 모습 안 볼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라고 이야기하셨다. 엄마의 말을 듣고 훗날 후회할까 봐, 용기를 내서 아빠를 보러 들어갔다.
새하얬다. 오랜 시간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해 이미 나보다도 하얀 아빠였지만 정말로 창백한 도화지 같았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서 아빠에게 다가갔다.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보며 아빠한테 작별인사 하라고, 손이라도 만져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만진 손, 그 손이 아직도 기억난다. 긴 투병생활로 관절이란 관절은 이미 다 굳어버린 아빠였지만, 너무 딱딱하고 차가웠다. 12살까지만 해도 식물인간이 된 아빠가 무서워서 만지지 못했는데, 13살이 되어서야 손을 만질 용기가 생겼는데... 이제 더 이상 만지지 못할 그 손은 너무 차갑고 딱딱했다.
그리고 아빠의 얼굴을 봤다. 오지 못한 딸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아빠는 눈을 감지도 입을 다물지도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병실을 나왔다. 뛰쳐나올 힘도 없었다. 그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제야 눈물이, 울음이, 한 방울씩 새어 나왔다. 병원 복도에 쭈그려 앉아 조용히 울고 있었다. 쭈그려 앉아 울고 있는 나를 친구 어머니께서 의자에 데리고 와 등을 토닥거려 주셨다. 우습게도 진정이 되어 용기를 내서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여전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빠는 이제 내 곁에 없고 어른들은 여전히 울고 있었고 나는 멍하니 서있었다.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누군가가 아빠의 눈을 감겨주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이제야 삼촌이 눈에 들어왔다. 삼촌은 내게 말했다.
"괜찮아, 아빠 잘 갔어. 아빠 편하게 갔어. 편하게 간 거야."
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셨다. 어린 나는 너무 화가 났다. 세상에 편한 죽음이 어디 있다고. 만날 맛없는 액상 죽만 먹고 나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날 떠났는데 어떻게 편하게 간 거냐고. 7년 동안 병원에만 있다가 갔는데 이게 편하게 간 거냐고 화를 내고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작은 내 눈에 비친 삼촌이 나를 위로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게 보였다. 그래서... 그래서.... 그저 가만히 듣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이제 아빠를 영안실로 옮겨야 된다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렇지만 친할머니께서 아빠를 붙잡고 계속 놓아주지 못하셨다. 아빠를 붙잡고 한참을 우시더니 할머니는 보자기를 하나 꺼내셨다. 그 보자기 속에는 분홍색 한복이 있었다. 아빠의 마지막 옷이었다.
할머니는 한복을 만드는 일을 하셨다. 분홍색 한복은 할머니가 직접 만든 수의 아닌 수의였다. 실제 수의도 만들어 두셨지만 그 순간 할머니는 그 한복을 고집하셨다. 아빠를 옮기던 사람들은 어차피 염습하고 수의를 따로 입혀야 한다고 의미 없다고 말렸지만, 할머니는 꿋꿋하게 아빠의 옷을 갈아입히셨다. 그 모습을, 차마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몇 년 후에 어떤 드라마에서 돌도 되지 못하고 떠난 자식의 수의를 짓는 이야기가 나왔다.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났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나와 나란히 누워서 드라마를 보고 있던 엄마는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손으로 자기 자식 수의 짓는 일이 얼마나 아프셨겠냐고, 지으시면서 얼마나 많이 우셨겠냐고 이야기하셨다.
자식의 마지막 옷을 지으신, 또 그 옷을 직접 입히신 할머니의 심정을. 한복을 배워 자신의 손으로 자식의 마지막 옷을 짓게 된 운명을 원망하셨을까. 아니면 자식의 마지막 옷을 직접 지을 수 있어서, 예쁜 모습으로 보낼 수 있어서, 한복을 배우신 것에 기뻐하셨을까. 그 옷이 얼마나 버거우셨을까. 손끝으로 바느질을 이어가며 할머니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키셔야 하셨을까.
아직도 어린 손녀는 감히, 헤아리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