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양가감정

... 나를 잊었기를, 나를 사랑했기를.

by 리나권

우리 아빠는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30분이 지나서야 병원에 이송되었다. 원체 튼튼했던 덕분인지 그저 운이 좋았던 덕분인지 아빠는 뇌수가 모두 빠졌지만, 자율신경까지는 손상되지 않아 뇌사상태로는 빠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빠는 그날 이후 혼자 앉지도, 말을 하지도, 밥을 먹지도 못하게 되었다.

간신히 눈만 뜬 식물인간 상태로, 7년간 내 곁에 있었다. 그렇게 힘겹게 내 곁에 있었다. 기적적으로 내 곁을 지켰다. 하지만, 7살 봄에 쓰러졌던 나의 사랑하는 아빠는 햇수로 7년을 버티고 13살 여름, 결국 나를 떠났다.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나는 아직도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아빠가 쓰러져있던 7년 동안 아무런 인지가 없었기를, 또 반대로 모든 인지가 살아있었기를 바란다. 기억하지 못했기를, 하지만 모든 것을 기억했기를. 고통 없었기를, 하지만 끝까지 나를 놓지 않았기를.


... 나를 지웠기를, 나를 사랑했기를. 나는 아직도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아빠는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항상 어렸던 나를 무릎에 앉혀서 나를 먼저 밥을 먹였고 단 한 번도 나에게 화를 낸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토록 다정한 사람이 긴 시간 동안 자신을 붙잡고 우는 가족들을 보며 슬퍼했을까 봐, 미안해했을까 봐 두렵다. 굳어가기 시작한 자신의 몸이 무서워 차마 만지지도 못하며 주위를 서성거리는 어린 딸의 모습을,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을, 그리고 어린 딸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던 젊은 아내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했기를. 그냥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고통 없이 편안하게 잠들었기를.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어린 딸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렇기에 미안해하지 않고 모든 걸 인지하지 못한 채, 편안하게 나를 떠났기를. 긴 시간 동안 내 곁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이 세상에 나를 두고 가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나를 떠났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편으로는 아빠가 모든 것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모두가 아빠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음을 기억하고, 내가 커가는 모습을 기억하고, 내가 아빠를 사랑했음을, 모두가 아빠를 사랑했음을 기억하고 이 세상을 떠났기를. 모두의 사랑을, 나의 사랑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떠났기를 바란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아빠를 사무치게 원망한다. 이 두렵고 막막한 세상에 어린 나를 두고 떠나버린 아빠가 밉다. 나를 떠날 때 슬퍼했기를. 나를 기억하고 모두를 잊지 않았기를. 끝까지 나를 사랑했기를...


나의 작은 원망이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원망이자 아직도 어린 딸의 철없는 저주다. 아빠의 떠나는 모습마저 보지 못한 채, 장례식에서 차마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있던 나를 지켜보고 떠나갔기를. '아빠'라는 고작 한 단어를 입에 올리지도 못한 채, 말을 잊은 것처럼 앉아있는 13살짜리 아이를 아무것도 못하며 지켜봤길. 그런 나를 지켜보며 슬퍼하며 나를 떠났기를. 가슴이 사무치게 아파하며 나를 사랑하며 세상을 떠났기를.

이 세상에 날 두고 가는 아빠가 가장 아팠을 텐데. 가장 가슴에 사무쳤을 텐데. 정말 많이 울었을 텐데. 아직도 철이 없는 나는, 그런 아빠를 원망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드는 내가 밉다. 그럼에도 글을 써본다. 글을 쓰며 내 감정을 정리하다 보면 털어지는 감정의 조각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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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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