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3살의 여름 비

by 리나권

이틀 내내 장례식장 구석 웅크리고 있었다. 엄마가 그런 내 꼴을 보다 못했는지, 나가자고 했다.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던 나는, 냉큼 엄마의 손을 붙잡고 그곳에서 벗어났다. 이틀 만에 본 바깥세상은 흐렸다. 온통 흐리고 습했다. 그리고 엄마의 오토바이를 탔다. 달리는 내내, 엄마의 등을 바라보며 엄마를 꼭 붙잡고만 있었다. 평소처럼 재잘거리지도, 까불지도 않았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구청이었다. 거기서 엄마는 아빠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했다. 멀리 떨어져서 엄마를 바라만 보았다. 엄마의 담담한 어깨는 유독 외로워보였다. 하지만 이미 지친 나는, 엄마의 힘이 되어 주지 못했다.


엄마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내내 비가 왔다. 그때부터 여름이 싫었다. 여름의 비가 싫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를 떠난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또, 저 놈의 비가, 나에게 누군가를 뺏어가진 않을까 두려워하게 되었다.




마지막 날이었다.


이제 아빠를 화장을 하러 화장장에 간다고 했다.

화장장에서는 딱 두 개의 기억만 있다.

아빠가 시뻘건 화마에 들어가는 모습과 나오는 모습.


아빠가 화마에 들어간다.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엄마가 말한다.

"리나야, 아빠 마지막 모습이야. 인사해야지. 이제 진짜 마지막 모습이야."

엄마가 흐느낀다. 모두가 흐느낀다. 그제야 3일 내내 울지 않던 꼬마는, 아니 나는, 영원히 보지 못할 아빠에게 손을 흔든다. 이제야 울기 시작한다. 여전히 소리는 내지 못하고 울며, 손만 흔들고 있다.



아빠가 화마에서 나온다.

작은 뼛조각이 된 커다란 아빠.

다 자잘한 뼛조각이었지만, 대퇴부 한 조각만 선명하게 남았다.

'그렇게 컸던 아빤데, 고작 저만큼 남았네... '

허무하다, 허망하다.

이제는 모든 뼛조각을 모아서 곱게 간다. 이젠 뼛가루가 된 아빠.

뼛가루가 된 아빠가 내 품에 들어온다.

절대 한 품에 들어오지 않던, 155cm의 꼬마의 품에 못 들어오던 아빠가.

이제 내 품에 너무 쉽게 안긴다.

너무... 쉽게...




얼마 전, 할머니께서 아빠의 곁으로 가셨다.

할머니는 뜨거운 화가마에 들어갈 것이고, 작은 뼛조각이 될 것이고, 더 고운 뼛가루가 될 것이다. 이게 조기교육인지 뭔지... 순서를 이미 알고 있어 모든 순간이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수의도 만들어 놓으시더니 당신의 수의도 만들어 놓으셨다. 그 옷을 입고 이 생과의 인연을 끝내셨다.


할머니께서 이 생과의 인연을 끝내신 그날은 다행히 겨울이었고, 비도 눈도 오지 않았다. 그 대신 참 시렸다. 손도 발도 마음도. 이번에는 여름 비가 내 사랑을 앗아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한테 이제 여름 비가 괜찮냐고, 상처가 다 나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할 것이다.

"아니"라고.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다. 아빠도 왕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아마 그들의 사랑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날을, 그날의 비를 잊을 수 없다. 성인이 된 지금도 두렵고, 비가 오면 가끔 이유없는 눈물도 난다.

아직도 비가 오면 비가, 저 놈의 비가 나에게서 누군가를 뺏어갈까 두렵다.

아직도, 저 아픈 여름 비는 나를 적신다. 때론 고요하게, 때론 요란하게, 때론 잔인하게.

하지만 나를 걱정한다면 나는 웃으면 대답할 수 있다.

"괜찮아"라고.

11살의 내가, 12살의 내가, 13살의 내가 이겨낸 더한 고통을, 고작 후폭풍 따위로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고. 걔는 그 고통스러운 여름 비를 이겨낸 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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