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13살의 장례식

by 리나권

장례식을 시작할 때쯤, 내 이름 앞에 붙어있는 '상주'라는 단어를 봤다. 상주라는 단어는 이미 드라마에서 많이 봐서 알고 있는 단어라서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엄마 이름 앞에 적힌 낯선, '未亡人'이란 단어도 봤다. 그 단어에 단단히 화가 났단 기억이 있다. 아직, 아닐 '미', 망할 '망', 사람 '인'이란 단어. 13살의 나는 그 단어가 내게 엄마는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니 '곧' 죽을 사람이라고 떠드는 것만 같았다. 그 단어를 보고 혼자 뜻을 생각하다가 엄마에게

"아직 죽지 않은 사람? 따라 죽으란 거야, 뭐야?"

라며 엄마에게 화를 냈다. 방금 아빠를 잃은 아이에게 너무 잔혹한 단어였다. 화를 내는 나를 보며 엄마는 '그러게'라고 조용히 웃으며 응수하셨다.


그날의 나는 부서진, 끈이 끊어진 인형 같았다. 3일 내내 거의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마 물어보는 말에 대답은 했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엄마와의 저 대화 이후에는 입을 다물었다. 장례식 옷을 거부했고, 상주 방을 거부했다. 13살의 나는, 그 상황을 감당하기엔 너무 어렸고, 아무것도 모른 척하기엔 너무 많이 알아버린 아이였다. 불편한 옷을 입고 싶지 않았고, 아빠의 영정사진을 보고 싶지 않았고, 미친 듯이 우는 할머니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애매한 나이가 나를 모든 걸 거부하게 만들었다.


'아빠'를 찾으며 울지도 않았고 '엄마'를 찾으며 울지도 못했다. 그냥 내 눈앞을 바삐 움직이는 어른들을 보며 멍하니, 구석에 숨어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냐면, 글쎄.


울고 싶었다.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싫었다.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단어가 내 몫이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아빠는 죽었는데, 나는 힘든데, 겨우 눈물만 참고 있는데, 사람들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놀고 있었다. 술을 마시기 전에는 엄마나 나를 붙잡고 한바탕 눈물을 흘렸다.

'여기가 잔칫집인가. 나는 이렇게 힘든데, 왜 저렇게 즐겁지? 왜 이렇게 술을 마시지?'

'뭘 안다고 나를 붙잡고 울지? 뭘 안다고 내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하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모든 상황이 우스운 촌극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울지 않고 버텼다. 그런 날 보며 친척 할아버지가 나를 보며 손가락질했다.

"저 독한 년은 울지도 않아."

그런 말을 하는 할아버지를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동조를 했다. 같이 비난의 눈초리로 어린 나를 노려봤다.


내가 평생 들은 말 중에 가장 상처받은 말이다.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말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걸. 갈기갈기 마음을 찢어놓을 수 있다는 걸. 본인은 우리 아빠 병원에 거의 오지 않았으면서. 우리 아빠가 얼마나 많은 위기를 겪었는 지도 모르면서. 내가 무슨 마음으로 버티고 있는지 모르면서... 쉽게 저런 말을 했다.


지금의 내가 그 말을 들었다면, 아니, 지금의 내가 저 강한 척하던, 여리디 여린 13살의 곁에 있었다면,

"형식적 조작기도 모르는 주제에 무슨, 무식하게. 13살짜리가 무슨 죽음을 알아. 야, 듣지 마."

하며 귀를 막고 안아줬을 테다. 그리고 엄마한테 내 손을 붙잡고 가, 저 할아버지가 방금 얘한테 어떤 말을 했는지 아냐며 역정을 냈을 테다. 하지만 당시 내 곁에 있었던 다른 어른들은 어린 나를 지켜주기엔, 자신을 지키기에도 너무 지쳐있었다. 그래서 어렸던 나는, 혼자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7화#7. 양가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