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북에세이

북 에세이: 일인칭 가난

가난이라고 못 팔아먹을까

by 리나권

내가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한 구절 때문이었다. '가난이라고 못 팔아먹을까'라는 한 문장. 그 한 문장이 나를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맞다. 부자들은, 부자가 되려는 이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그토록 팔아먹는데, 가난이라고 안 될 이유가 없다. 그 문장을 읽고 저자 '안온'이 '팔아먹는' 가난이라는 이야기를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읽으며 어쩌면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풍요로웠을지 모르는 내 가난도 '팔아먹어'보자는, 전시해 보자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작가는 나와 비슷하다. 나는 대구의 자존심 센 기초생활수급자의 딸이고, 저자는 부산의 자존심 센 기초생활수급자로 자란 딸이다. 하지만 우리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가족'이다. 저자는 '가족'이라는 존재로 가난을 피할 수가 없었지만, 나는 가난을 만들어준 '가족'이라는 존재로 아이러니하게, 가난을 '나만은' 피해서 자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 사랑하는 가족이, 엄밀히 말하면 나의 엄마가, 온 힘을 다해 가난이라는 총탄으로부터 나를 보호했지만, 그 유탄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그 유탄 중 하나가 바로 ‘말’이었다.


하나는 어른들의 말이다. 어릴 때부터 참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리나는 아빠가 아픈데도 참 밝아, 참 기특해."

"리나는 집이 잘 사는 거 같지 않은데 공부를 참 잘하네! 엄마가 참 좋아하시겠어."

어릴 때는 좋아하는, 자랑스러운 문장들이었다. 스스로 나는 참 밝은 아이구나, 난 잘 자라고 있구나라는 훈장 같은 말이었다. 이런 말을 들었다고 엄마한테 자랑을 하면 엄마의 표정은 항상 굳어지곤 하였다. 어릴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가 좀 굵어지고 나서는 가장 기분 나쁜 말 중 하나가 되었다. 도대체 아빠가 아픈 아이는 어떤 아이여야 하는가? 가난한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게 그렇게 특별한가? 그들에게는 진심 어린 칭찬이었을 것이다. 그 의미 없는 칭찬들이 나를 상처 입혔다.

다른 하나는 친구들의 말이었다. 나의 가난은 다행히 그렇게 티가 나지 않았다. 엄마가 최선을 다해 내 가난을 감췄고 나는 그래서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나만 알았다. 또 나는 공공연하게 아빠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고 동네에 우리 아빠가 아프다는 사실을 모르는 친구는 잘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친구들은 그 사실을 건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선생님의 총애를 받는 친구를 '아빠가 없는 애'로 놀릴 만큼 간 큰 애는 없었다. 그럼에도 '가난'으로 상처받을 때는 있었다. 친구들이 다른 가난한 친구들을 놀릴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상처를 받았다. '쟤네들 눈에는 내가 저렇게 보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배부른 소리지만, 그런 배부른 상처를 항상 받으면서도 그들의 진짜 상처를 외면했다.




저자는 자신의 가난에 대한 사실을 나열하고 감정은 크게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읽기가 힘들었다. 나의 이야기 같았기 때문이다. 나도 우유급식을 받았고, 한정 상속을 받았고, 국가가 지원하는 집에 살았다. 저자가 하는 모든 이야기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데 누군가가 나의 삶을 살펴본다면 내가 읽고 있는 심정으로 보고 있는 건가라는 두려움이 나를 섬찟하게 했다. 아마 저자도 이런 시선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자신의 가난을 '팔아먹은' 이유는 분명하다. 알리는 것이다. 가난이 존재한다고. 여기에 생존자가 있다고. 같이 가난의 이야기를 두껍게 만들어가자고. 그렇기에 나도 나의 배부른 가난을 조용히 팔아본다. 가난이라는 게 찢어질듯한 가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나의 가난을 '팔아먹으며' 납작한 가난의 이야기가 조금 더 두꺼워지고 풍부해지길 바라며.


떨리더라도 세상에 말해야만 하는 것이 세상에 많다. 젠더와 가난이 그렇다.
-p.74
나는 이 사이에 이 책을 끼워 넣는다. 가난의 이야기가 두꺼워지길, 다른 가난의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이고 뭉치길, 그래서 우리가 우리를 알아가길 바라면서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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