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북에세이

북 에세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예민충이 되지 않는 세상

by 리나권

학생들은 교실에서 참 많은 욕을 사용한다. 이를 제지하기 위해 내가 교실에서 정하는 규칙이 있다. 누군가를 '혐오'하는 욕을 사용하지 않기. 예를 들면 '짱깨', '게이', '장애인' 등의 욕이 있다. 누군가가 너네가 욕으로 사용하는 당사자가 주위에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설득한다.

사실 나는 조금 더 민감하게 혐오를 사용하는 욕의 범주를 정하고 싶다. 흔히들 사용하는 '병신'이라는 욕도 '혐오' 표현으로 지정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분명 누군가를 혐오함으로써 사용하는 욕임은 분명하니까.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병신'까지 혐오하는 욕으로 지정하고 제재한다면, 학생들은 나를 '예민충'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자제한다. 그렇지만 더 많은 사람이 '병신'이라는 단어에 문제를 제기하면 어떨까? 책을 읽으며 나의 생각이 '예민충'이 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고통이 존재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고통은 무엇인가? 신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혹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는 고통? 그중, 책에서는 사회가 외면하는 소수자를, 약자들의 고통에 대해 역설한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해결방법은 그들을 혐오하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그 '혐오'는 절대 해결방법이 될 수가 없다. 오히려 상황을, 사회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고통 구경하는 사회>랑 결이 비슷한 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관점이 달랐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는 미시적인 관점에서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개인의 고통을 '개인'적으로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소비하는가, 그 소비하는 방식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가 주된 관점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정치'적으로 소수자들의 고통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이 복잡한 세상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투쟁에 어떻게 연습해야 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저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 강하게, 구체적으로 주장한다. 우리 사회는 평등에 대해 연습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차별에 대한 공동의 상식을 만들어가고 차별하지 않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사실 차별금지법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이다. 사회의 인식이 받으들이기에는 여전히 진보적인 법이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기 이전에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은 내 생각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한다. 사회적 인식이 아직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더 필요한 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누군가가 사용한 표현이, 행동이 차별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법이라는 것이다. 또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초석이 되는 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세상의 소수자가 혼자 남아있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내가 원하는 세상'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누군가가 생각한 선을 '예민충'이라며 비웃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같이 고통에 맞서 투쟁을 하는 것? 많은 사람이 누군가의 고통에 응답을 하는 것? 그런 거창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누군가 '병신'을 욕으로 사용하지 말자고 주장하면 예민충이 되지 않는 세상, 장애인이 당신들의 이동권을 주장하면 비웃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을 원한다. 그 누구도 예민충이 되지 않는 세상을 원한다.





혐오는 쉽습니다. 가장 약하고, 아픈 당사자들을 욕하면 되니까요. -p.188
이 법으로 우리는 무엇을 꿈꿀 수 있을까. 흑형과 살생이라는 단어에 더 많은 사람이 문제 제기하는 세상, 남성과 여성이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같아지는 세상, 신분증 확인이 두려워 투표를 포기하는 트랜스젠더가 없는 세상, 병원에서 보호자가 될 수 없어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동성 파트너를 바라보면서 발만 동동 굴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 일하다 다쳐도 공장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없는 세상,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늦은 밤 학교 옥상을 서성이는 청소년이 없는 세상, 누구도 홀로 남겨지지 않는 세상.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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