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북에세이

나는 왜 '그들'을 싫어하는가

외전: 보통 일베들의 시대

by 리나권

북 리뷰에서 나는 담백하게 일베들이 싫다고만 이야기했다. 다들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얄팍한 사상, 그들의 만연한 혐오, 그들의 같잖은 자기 연민 등등. 나도 물론 그들의 사상을 싫어하고 그들의 혐오를, 그들의 자기 연민을 싫어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들을 싫어하게 된 계기가 분명하게 있다. 지금부터 찬찬히 그들이 싫은 이유를 서술해 보겠다.


나는 살면서 3명을 일베를 만났다.




내가 처음에 만난 일베는 대학교 선배였다.(내가 만난 일베들은 다 선배여서 1번 선배라고 부르겠다.) 내가 20살이었을 때,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다. 갓 스무 살이던 우리는 충격에 빠졌다. 사범대생이었던 우리는 대부분 교사를 꿈꾸는 사람들이었고, 더 깊은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 당시엔 페이스북이 유행하던 시기였고, 많은 친구들이 추모의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로부터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사건이 터졌다.


‘세월호, 세월호 거리지 마라. 지겹다.’


군기를 가장 세게 잡던 1번 선배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군기가 심한 학과에 군기를 가장 심하게 잡던 선배의 페이스북 글에 다들 긴장했고, 세월호에 대한 글에 '좋아요'를 누르지 않기 시작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는 어렸고, 더욱이 교사를 꿈꾸는 사범대생들에게는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근데 같은 입장인 사범대생이, 고작 1살밖에 안 많은 사람이 저런 글을 올리다니, 그때부터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그래도 그 선배는 교사가 되지는 못했다. 걱정하지 마시라...)


다른 사건도 있었다. 사대체전이라는 사범대 체육대회였다. 당시 CC였던 동기를 보며 원색적인 비난을 했다. 여자가 다른 여자에게 성적으로 혐오 섞인 욕설을 퍼붓는 장면은 처음이었다. 당황스러움과 불쾌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배는 '일베적 사고방식'을 아주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1번 선배는 자기 과시가 심했다. 자신이 '개념녀'라는 걸 끊임없이 발설하고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위에서 언급한 세월호 사건을 포함하여 대학교 대나무숲에서 자기는 여자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니고 술자리에서도 성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 그래서 거북한 게 아니었나 싶다. '일베'의 기준에서의 '개념녀'인 자신을 끊임없이 과시했다.



2번과 3번 선배는 동아리에서 항상 붙어 다니던 사이였다. 둘 다 전형적인 '일베 감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동아리 단톡방에 혐오 짙은 짤을 올리고,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는 일이 반복됐다. 다들 불쾌해했고 또 누군가는 알지도 못했지만, 참고 넘기고 있던 어느 날, 결국 사건이 터졌다. 어떤 사람의 사진을 두고 누군가 조롱 섞인 메시지를 보냈다. 단톡방이 술렁였고, 한 선배가 정색하며 항의했다. 그러자 2번 선배가 되려 화를 냈다.


“여긴 뭐든 말할 수 있는 방 아니냐, 너나 조용히 해라.”


말다툼 끝에 항의하던 선배는 단톡방을 나가 버렸다. 그러자 남은 이들이 되려 그 선배를 '일베충'이라며 조롱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걸 보고 나도 참지 못했다.


“면전에서는 하지 못할 말이라면 여기서도 하지 마시죠?”


그렇게 말하고 나도 방을 나왔다.


그들 사이에서도 '일베충'은 욕이었나 보다... 일베충이라는 말을 욕으로 쓰고 스스로 혐오하면서도 그 말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 그 어리석음이, 결국 그들을 더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이야기만 풀어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쓰면서도 머리가 아프다.


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결국 다시 동아리에 돌아갔고 졸업까지 활동했다. 그리고 저 일베 선배들은 동아리 '명부'에서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직접 명부에서 지웠다. 그 이후에도 큰 싸움이 있었고 언젠가 그 이야기도 찬찬히 해보려 한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만큼을 적는 것만으로도 꽤나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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