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북에세이

북 에세이: 작별하지 않는다

끝내, 작별하지 않는다.

by 리나권

읽으며 했던 직관적인 생각은 이것이다.


'아, 내가 제주도 방언을 잘 몰라서 다행이다.'


제주도 방언을 잘 몰라서 읽으며 중간중간 멈췄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로 적힌 보도연맹 사건 이야기라면 차마, 끝까지 읽지 못했으리라. 책을 읽으며 계속 생각했다. 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이 참극을 제대로 알지 못할까. 왜 교과서에 고작 한두 줄로 끝나는 이야기일까. 국가의 폭력 앞에서 자국민이 학살당한 사건을 왜 우리는 4.3 사건이라는 가벼운 단어로만 배운 것일까. 왜 우리는 다큐멘터리 외에 이 사건을 다룬 작품을 보지 못할까. 최근 방영한 '폭삭 속았수다'도 이 시기의 이야기지만, 왜 이 고통스러운 사건을 다루지 못한 것일까.


아마 너무 고통스러운 이야기여서 일테다.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섬 인구의 약 10%가 죽은 사건. 누구도 쉽게 말을 얹을 수가 없었을 테다. 그 고통에 어떤 스토리도 부여할 수 없어, 차마 작품으로 만들 수 없어서 일테다.




책의 저자인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쓰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책의 도입부에서도 책의 서술자 '경하'를 자신에 투사해 책을 썼던 일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는지를 말해준다. 한참을 울었고 괴로워했다고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왜 또다시 이런 고통스러운 소설을 쓰기로 맘먹었을까? 저자는 인터뷰에서 말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포기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이 고통스러운 책에 사랑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를 한참을 의심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저자의 인터뷰를 차분히 읽어보다 깨달았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맞구나. 이성 간의 사랑이 아닌 친구와 친구, 사람과 동물, 나와 엄마, 엄마와 엄마의 형제들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특히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이유로,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주인공들은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하고 있었다. '사랑한다'라는 그 흔한 문장 하나 없이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행동으로, 이해로, 희생으로. 모든 인물이 다른 인물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기꺼이 행동한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쓴다. 사랑하기에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다. 이 소설이 말하는 사랑은 말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마찬가지로 인터뷰를 보며 깨달았다. 죽은 사람과, 동시에 깊이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구나라고. 어쩌면 작별하지 '못'한다가 더 알맞은 표현일지도 모른다.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억울함을 풀고 시신을 찾을 때까지, 놓지 못해 작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의지이기에,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 놓지 '않'는 것이다. 한강이 말하고 싶었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눈 덮인 무덤 위에서도 끝내 온기를 잃지 않는 것.

비극 앞에서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그리하여 우리는 잊지 않는다.


끝내,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 인사만 하지않는거야, 정말 작별하지않는거야? 아직 주전자의 부리에서 김이 솟지않았다. 비둥점을 넘어서려면 더 기다려야한다.

완성되지않는거야,작별이?

미루는 거야, 작별을? 기한 없이?

-p.192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왜 '그들'을 싫어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