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작별하지 않는다.
아빠의 긴 투병생활을 보며 했던 생각이 있다. 냉정하고 조금은 잔혹한 생각.
'아빠가 과연 이 상태로 오래 살아있는 것을 바랐을까? 살아있는 사람의 욕심이 아닐까?'
목에 구멍이 뚫린 채, 발가락 하나를 잃은 채, 등에 욕창을 안은 채. 아빠는 정말 살고 싶었을까. 아빠를 붙잡고 있던 건, 아빠의 의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심은 아니었을까. 가족의, 아니 나의 욕심으로 아빠를 괴롭게 한 것이 아닐까. 아빠는, 차라리 죽고 싶지 않았을까. 모든 고통을 끝내고 싶지 않았을까. 지금 이렇게 생각을 서술하는 것조차 고통스럽지만, 그런 생각을 꽤나 오래 했다. 긴 시간 자책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든 생각이 있다. '욕심'이라는 폭력적인 단어로 그 마음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온 힘으로 붙잡는 마음. 차마 놓지 못하는 마음. 그 간절한 마음을 '욕심'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런 차가운 단어가 어울릴까?
아니다.
어울리지 않는다.
그 마음은 욕심이 아니다.
할머니가 식물인간 상태로 있는 아버지에게 한약을 투여한 것은. 몸의 좌측이 마비되어도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한 것은. 폐에 물이 차도 산소호흡기를 끼운 것은. 내가 병원에서 본 모든 장면들은 욕심이 아니다. 산 사람의 욕심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마음, 차마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
사랑이다.
'욕심'이라는 차가운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사랑'이라는 뜨거운 단어가 어울린다. 그 마음을, 그 장면을, 감히 욕심이라는 차가운 단어로 폄하할 수 없다.
아버지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지만, 나는 이제야 그때의 우리의 마음을 '욕심'이라 부르며 자책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버지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당신과 작별하지 않으려 몸부림쳤던 우리의 뜨거운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