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평생 기억에 남을 날이었다.
전날 아빠가 나를 데리고 친할머니 댁으로 가기로 했는데 아빠가 오지 않았다. 전화로 아빠가 몸이 좋지 않다고 내일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그날의 나는 미술 학원을 다녀온 후, 아빠를 기다리며 TV를 보고 있었다. 평소에 아빠가 나를 데리러 오는 시간보다 늦어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전화가 왔다. 고모였다.
고모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뭐 하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아빠 기다리고 있어. 아빠가 나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안 와."라고 투덜거렸다. 그러니 고모가 아빠가 데리러 오기로 했냐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으며 외할머니가 계시면 전화를 바꿔보라고 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무서운 분위기에 외할머니께 전화를 바꾸고 거실에 가서 앉아있었다. 한참 전화를 하시고 나오시길래 할머니께 "아빠 언제 와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아빠가 오긴 뭘 와!" 하시며 소리를 지르셨다.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가서 할머니를 멍하니 쳐다봤다. 나를 보며 할머니께서 아빠가 쓰러졌다고 이야기하셨다. 그 순간의 기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어둠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 막막하고 무서운 기분. 눈앞에 깜깜해지는 기분.
그 길로 할머니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갔다. 어떻게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병원 안에 들어가니 발바닥이 보였다. 당시 또래보다 키가 작았던 7살, 나의 시야에 보고 싶은 아빠는 보이지 않고 하얀, 아주 새하얀 발바닥이 보였다. 그 발바닥의 주인을 붙잡고 고모와 친할머니가 울고 계셨다. 너무 서럽게 울부짖고 계셨다.
그럼에도 멍했다. 상황파악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그저 무서웠다. 그곳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멍하게 서있던 나를 외할머니가 이끌고 바깥으로 나가셨다. 그날 처음으로 외할머니의 눈물을 봤다.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우셨지만, 역설적이게도 할머니 허리께에 오던 나는 그 눈물이 너무 잘 보였다.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닦으며 말씀하셨다.
"아빠 한 번 더 보고 갈까?"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 하얀 발바닥의 주인이 내 아빠구나. 항상 나를 안아주고 따스하게 불러주던 내 사랑하는 아빠구나. 아빠에게 큰일이 났구나. 무서웠다. 무슨 일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나를 지켜주던 모든 어른들이 울고 있었다. 그래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 하얀 발바닥의 주인이 아빠라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