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하태평 Oct 07. 2019

딸에게 쓰는 편지 45; 지리산이 전하는 말


때 늦은 태풍을 맞이하러 먼 길을 내려갔는데, 우리를 살짝 피해 갔나 봐. 약간의 비만 왔을 뿐 태풍이 오는지 어쩐지도 모를 정도였으니까. 할머니 고모는 걱정되는지 전화를 하셨는데, 그 와중에 딸은 천하태평인지 연락이 없더군. 모처럼 엄마 아빠 없는 집 생활을 즐기느라 아 무 생각이 없었을 거라고 이해는 돼. 전혀 섭섭하지 않아. 그냥 하는 얘기야.


지리산을 오르기 전날 무등산에 올라갔었어. 물론 처음이지. 올라가기 전까지는 남산정도 되는, 적당히 산책하기 좋은 산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꽤 크더라고? 올라가는 숲길도 아름답고, 정상의 서석대 주변 경치가 아주 멋져서 기분이 좋았어.


그리고 다음날 올라간 지리산!  힘들지 않은 코스로 선택을 해서 성삼재-노고단-반야봉에 이르는 구간을 가기로 했지. 지리산은 너 어릴 때 꽤 여러 번 다녀갔고 노고단 정도는 올라가기도 했지만 정식으로 산행은 처음이라 약간 설레는 마음? 더군다나 전날 무등산에서 좋은 광경을 본 터라 더 기대가 되었지. 더 큰 산이니까.


큰 산, 지리산...

맞는 말이지. 적어도 직접 올라가 보기 전까지 아빠가 지리산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그 정도였어. 하지만 올라가서 보고 느낀 결과, 지리산이 아빠에게 해 준 말은 전혀 달라.

우리가 수없이 많이 가본 설악산? 큰 산이고 좋은 산이지. 지난여름에 갔다 온 한라산? 남한에서 제일 놓은 산이고 역시 멋진 산이었어.

그러나 이번에 아빠가 올라가 본 지리산은 전혀 느낌이 달랐어. 지리산은 산이 아니었어. 그건 산이라기보다 하나의 세계였어. 지리산 세계, 지리산 월드...


“지리산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아빠가 엄마한테 한 말이야. 대부분의 산행은, 그 정상에 서면 사방이 내려다보이게 되지. 그래서 뭔가 정복한 느낌이 들고, 그 순간 완성된 기분이 되고, 세상을 다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라는 자아가 더욱 강조되는 거지.


그런데 지리산은 전혀 달랐어. ‘나’라는 자아가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사소해지고 무심해지게 만들어. 좌우 사방 끊임없이 펼쳐진 봉우리들, 깊은 어둠의 계곡, 그 광활한 산의 바닷속에서 나는 아주 사소한 한 자락 파도에 불과해. 지리산 정상에 오르지 못해서 정상의 기분이 어떨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아. 이 봉우리나 저 봉우리나 그저 약간 높고 낮음의 차이일 뿐이고, 이쪽 계곡이나 저쪽 계곡이나 똑같이 지리산 월드의 부분일 뿐이지. 흔히 하는 말대로 차이는 있으나 차별은 없어. 내가 지리산의 어느 곳을 가건, 그건 선택의 문제일 뿐이지 가치의 많고 적음은 아니라는 거야.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Because it is there.)”


왜 산을 오르느냐는 질문에 대해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이지. 영국의 산악인 조지 말로니의 말이라고 해. 이유가 없다는 거지. 혹은 오른다는 행위 자체가 이유의 전부라는 뜻도 되고. 좋다 싫다 나쁘다 좋다 아름답다 추하다 높다 낮다는 등의 인간계 속성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 바로 지리산 속에 들어서는 때 생겨나는 거야.


그렇게 ‘나’라는 인식이 사라지면 ‘나’는 없어지고 ‘자연’만 남지. 내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 산 그 자체로 존재하는 거야. 그러면 나는 산속에 녹아들고, 내 자아는 소멸되면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상태에 이를 수 있어.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산을 찾아다니는 이유가, 구체적으로 느끼진 않더라도, 잠시나마 그런 소멸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인지도 몰라. ‘거기 있어서 간다’는 말이나 ‘산은 산, 물은 물’ 같은 말은 그런 ‘존재 그 자체’의 순간이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말들이지.


“나는 내가 있다는 것이다.(I am that I am.)”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성경의 이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될 거야. 내가 자연이 되고 자연이 내가 되는 하나 됨의 세계, 그리하여 나와 너와 세계가 하나 되어 구별이 사라지는 그 순간, 그것이 바로 신의 세계이고 하나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는 거지.


사랑하는 딸!

지리산을 다녀오면 ‘지리산 앓이’를 시작하게 된다고 엄마가 그러던데, 아빠도 그렇게 됐나 봐. 또 가고 싶어. 살짝 걱정되지? 너도 같이 가자고 조를까 봐.

걱정하지 마. 너더러 억지로 가자고 권하지는 않을 테니까. 너는 아직 젊고 하고 싶은 것들이 많잖아. 산행은 버리는 과정이지만, 너는 이게 겨우 채워나가기 시작한 청춘이니까. 열심히, 신나게, 멋진 것들로 너를 채워봐.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나를 채워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달아지는 때가 올 거야. 나와 남이, 나와 세계가, 과거와 현재 미래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지리산이 언제나 그냥 있듯이, 하나님이 언제나 그냥 있듯이, 나도 그냥 있을 뿐이라는 걸...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길~~!

  --딸이 산에 오르는 즐거움을 누리길 바라는 아빠가.



매거진의 이전글 가난함을 감사하는 기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