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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Nov 06. 2019

세상살이의 제 2 정석;세상은 나의 중력대로 구성된다


이화여대 학생이 기숙사에서 떨어져 자살했다고 하고 성북구 4 모녀가 같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죽었다는 소리, 싸웠다는 소리, 아프다는 소리, 힘들다는 소리가 넘쳐납니다. 험한 세상입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 역시 많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나고 자라서, 멋진 외모와 학력과 스펙으로 무장하여 고소득의 삶을 누리는 즐거운 사람들. 그들에게 세상은 봄날이고 꽃길입니다.


어디까지 사회 탓이고 어디까지 내 탓일까요? 좋은 집에 좋은 외모를 받아 태어난 것은 운이 좋은 것이고, 공부 못하고 취직 못하는 것은 환경 때문일까요? 어디까지 내 탓이고 어디부터 사회 탓인지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경계가 불분명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그런 구분은 없어져야 합니다. 모든 것은 내 책임, 내 탓이니까요.


솔직히, 인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게 내 탓’이라고 단언하는 저도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나의 이 외모를 내가 원해서 얻은 거라니, 그게 인정이 되겠습니까? 백번 천 번을 성형 수술해서라도 고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인데 말이지요.


하지만 인정해야 합니다. 그게 진실이니까요. 나의 간절한 염원과 필요에 의해서 현재의 내가 만들어진 거니까요.(정우성 같은 외모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거나, 전생에 좋은 외모로 많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거나 하는 말들은 샛길이거나 덧붙이는 말들이니 생략하겠습니다.) 나의 현실을 내가 원한 것이라고 보지 않고 부모나 사회가 만들었다고 남을 탓하기 시작하면 나와 사회와의 간격은 점점 벌어집니다. 스탑! 이제 그 지겨운 악순환의 논쟁은 때려치웁시다!


먼저 세상살이의 제1 정석을 다시 꺼내볼까요? 제1 정석은 ‘나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입니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감이 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들을 주인공으로 살지 못했으니까요. 자존심 자부심 주인의식 등 말은 많이 하지만 정말 주체적으로 내가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동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따라 살아왔지요.


그래서 제2 정석을 준비했습니다. 뜬구름 잡는, 풀리지 않는 정석에 매달리기보다는, 차라리 새로운 문제를 푸는 게 효과적입니다.


“세상은 나의 중력대로 구성된다!”


세상살이의 제2 정석입니다.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라는 말보다는 훨씬 구체적입니다. 단순히 주인공이라는 말만 생각하면 ‘여러 사람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가능하지만, 제2 정석은 철저하게 ‘나’ 중심입니다. 태양계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듯이, 이 세상도 나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니까요.


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치밀하게 중력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중력이 클수록 나와 가까운 곳에 배치되고, 중력이 작을수록 멀리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 배치됩니다. 여기서 중력이란 욕망의 크기, 혹은 집착의 정도들 뜻한다고 보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욕망과 집착이 클수록 나와 가까이 있게 된다는 말이지요. 내가 사는 집,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나의 욕망과 집착이 끌어들인 결과물입니다.


“전생의 원수가 현생의 부부지간, 혹은 부모 자식이 된다.”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장 나의 중력(욕망과 집착)이 큰 상대입니다. 지금 나에게 처한 현실이 내가 나의 중력으로 필사적으로 끌어당긴 결과입니다. 내 생각과 감정이 어떻든 간에, 나의 온 존재가 지금 내 앞의 사람을 부르고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의 질서는 내가 만든 것입니다.


“난 이렇게 사는 거 정말 싫어. 다 때려치우고 싶어.”


중력의 법칙은 물질에 작용하는 구체적인 힘입니다. 싫다는 감정이나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강력합니다. 현재 내 앞의 현실을 내가 불러들이고 내가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고 하지만, 법칙은 예외가 없습니다. 따라서 법칙을 인정하고 이렇게 질문을 해야 합니다.


“이 때려치우고 싶은 지겨운 현실을 내가 왜 만들었지?”


나의 중력, 나의 욕망과 집착이 지금의 현실을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게 ‘세상살이 제1 정석; 나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를 충족시키는 자세입니다. 주인공인 내가 뭔가를 멋지게 해내기 위해서 지금의 상황을 연출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잘 살기 위해서는 ‘왜?’ 보다는 ‘어떻게 할까?’를 질문하는 게 편합니다. 


이 세상은 나의 중력과 질서에 의해 형성된 나의 세계이므로 내가 죽으면 나와 함께 소멸됩니다. 나와 똑같은 욕망과 집착으로 살아온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요. 탄생의 빅뱅으로 만들어진 나의 우주가 죽음의 블랙홀에 빠져 소멸됩니다. 그러나 그게 끝은 아니지요. 다시 윤회의 과정을 겪습니다. 새로운 탄생은 또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끝없는 탄생과 죽음의 수레바퀴... 그 과정을 통해 어떤 이는 점차 진화해가고, 어떤 이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 갑니다.


중력은 가까울수록 크게 작용합니다. 중요하고 집착이 강한 순서대로 배치됩니다. 당연히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고 집착도 강합니다. 내 눈, 코, 입, 손발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이 중요합니다. 저는 송혜교를 좋아합니다만 그건 그저 생각이 그런 것뿐입니다. 멀리 있는 송혜교보다 지금 곁에 있는 나의 여편이 일억 배 천억 배 더 소중합니다. 현실이, 지금 내게 일어난 결과가 내가 원하는 정답입니다.


지금 이 순간, 현재 벌어지는 나의 현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공이 됩니다. 내가 왜 이 상황을 만들었는지 질문할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우리는 부족한 사람들이므로, 현재의 나를 전적으로 긍정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래서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싸움도 합니다. 좋습니다. 그러면서 살아가는 거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주인공인 내가 그러라고 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문을 가져야 하는 것은 이 현실 자체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려고 이 현실을 만들었나 하는 것입니다.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 이 현실이 좋다 혹은 싫다’가 아니라 ‘나는 지금 뭘 하고 싶지?’라고 질문을 해야 합니다. 그게 주인공의 자세이고, 내 욕망의 중력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막상 현실을 인정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제가 야심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었는데 방문객 수가 보잘것없습니다. 글을 쓰면 <브런치>와 <네이버 블로그> 두 군데에 같이 올리는데, 방문자가 양쪽 합쳐봐야 30명 전후됩니다. 그나마 네이버 블로그는 2,3명에 불과한 경우도 있습니다. 수만 명, 최소한 수천 명은 보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게 내기 원한 결과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일종의 ‘중력을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소통을 하려는 노력인 거지요. 나의 글이, 내가 쏘아 올린 전파가 미약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씁쓸하기도 하고, 약간 가슴이 아픈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현재의 중력에 집중합니다. 나와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나는 전파 영향력이 적은, 조그만 행성입니다.


좋은 모습을 염원하는 사람은 좋은 모습을 얻습니다. 좋은 모습으로 살면서 나쁜 마음을 쌓아간 사람은 험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든 종류의 삶을 모두 살아봤을지도 모릅니다. 상승과 하강의 반복되는 사이클... 


가장 좋은 것은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완벽한 긍정으로 대자유를 얻으면, 깨달음을 얻으면, 평강을 얻으면, 해탈을 하면, 우리는 중력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때로는 중력에 휘둘리기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불완전한 우리에게 현실 역시 불완전한 게 당연합니다. 깜박 졸다가 내릴 곳을 지나치고는 하는 게 우리 아닙니까? 넘어지고 부딪히면 아프다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부정하고 포기하면 우리의 드라마는 끝나고 맙니다. 전파는 꺼지고 미래는 어두운 지옥이 됩니다.


쇼 머스트 고 온!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의 드라마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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