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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Dec 10. 2019

딸에게 쓰는 편지 48;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

지난 편지(딸에게 쓰는 편지 47; 영화야, 안녕!)에서 영화와의 작별을 선언했었지. 쿨하게 헤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살짝 미련이 남았어. 친구로 치면 수십 년을 함께 해온 친구이고, 애인이라고 해도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그런 사이인데 너무 쉽게 이별을 선언한 것 같아.


그래서 몇 편 영화를 떠올려 보려고 해. 내가 좋아했고 사랑한 영화들이야 셀 수 없이 많았지만, 옛날 추억 빼고 지금 이 순간까지 나를 사로잡는 영화를 이야기할게. 영화가 싫어지고 나빠서 떠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메말라서 떠나는 거니까 그 영화들도 기분 나빠하지는 않겠지? 그 영화들을 생각하려 하니, 벌써 내 마음이 살짝 설레기 시작한다. 메마르고 황량한 내 가슴에 따스한 봄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


컨택트(Arrival, 2016년. 감독 드니 빌뇌브)

근래 몇 년 동안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영화 보는 재미, 그중에서도 시청각적 만족을 주었던 영화. 내용과 상관없이, 순수하게 시청각적 쾌감을 만끽해 보길.


해피엔드(1999년. 감독 정지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영화이고, 한국 대중영화의 모범이라고 생각하는 작품. 평범하지만 정돈되어 있고, 통속적이지만 곱씹어볼 대목이 있다. 더 알고 싶다면 내가 쓴 "영화 한 잔 할까?'를 찾아봐. 자세히 얘기해놨어.


터미네이터 2(Terminator 2: Judgment Day, 1991년. 감독 제임스 카메론)

예술적인 영화만 좋아하던 내게 충격을 준 작품. 처음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아! 대중적인 오락영화도 좋은 영화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벅차오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


희생(Offret, The Sacrifice, 1986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가 예술이라는 확실한 증명. ‘무엇을’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그려내느냐가 중요함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실내악 사중주를 보는 듯한, 움직임의 놀라운 하모니를 유심히 볼 것.


이웃집 여인(La Femme D'A Cote, The Woman Next Door. 1981년.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의, 가장 좋아하는 영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묻혀있는 작품이지만, 그래서 더욱 나만의 보물로 간직하고 싶은 예쁜 영화. 하나도 더하거나 뺄 게 없이 그 자체로 완전한, 원숙한 장인의 솜씨.


미치광이 피에로(Pierrot Le Fou, Pierrot Goes Wild, 1965년. 감독 장 뤽 고다르)

영화 역사상 단 한 명의 천재를 꼽으라면 고다르가 아닐까? 그러나 이 작품은 천재의 작품이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답다. 영화로 쓰인 시.  동의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산문시.


현기증(Vertigo, 1958년.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신비하고 아름답고 서늘하다.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신비함이 있고, 그것을 묘사하는 절제가 아름답고, 존재의 비밀을 엿보게 되었을 때의 아찔한 현기증 때문에 서늘하다.


동경 이야기(東京物語, Tokyo Story, 1953년. 감독 오즈 야스지로)

영화예술의 품격을 증명하는 작품. <현기증>과 <동경 이야기>는 내가 아는 가장 격조 있는 영화이다. 경험하지 않고는설명할 수 없는 예술의 세계.


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년. 감독 오슨 웰즈)

영화의 모든 것. 영화의 정석. 영화의 백과사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모든 영화는 <시민 케인>으로 통한다.


게임의 규칙(La Regle Du Jeu, The Rules Of The Game, 1939년. 감독 장 르누아르)

나의 예술적 우상이자 나의 아이디 ‘leenoir’의 원형 르누아르 감독의 걸작. 잘 짜인 작품은 아니지만, 일필휘지로 써버린 글씨처럼 생생하게 살아있다.


사랑하는 딸!

너하고 아빠는 많이 다르니까 좋아하는 영화도 그렇게 다르겠지? 아빠가 사랑하는 영화니까 너도 같이 사랑해달라고는 안 할게.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소개를 하는 이유는 이 영화들이 아빠의 흔적이기 때문이야. 말하자면 아빠의 때가 묻은 애장품 같은 것?


그걸 너에게 주는 거야. 아빠는 이제 필요 없거든. 이 영화들을 보면서 아빠가 느꼈던 놀라움과 희열을 네가 느끼길 바라지만, 아니면 또 어때? 너에게는 너 나름대로 즐거움의 방식이 있을 테니까. 사실 영화는 이 넓은 세상의 아주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잖아? 물론 아빠에게는 전부였던 적이 있었지만 이젠 끝이네. 다시 한번 영화야, 안녕!


   ---이름을 불러 영화와 작별을 고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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