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하태평 Jan 09. 2020

딸에게 쓰는 편지 49;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영화 <파바로티>를 보고


지구의 인구수가 70억을 넘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80억에 가까워졌다고 하네? 이런 식으로 가면 100억이 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은데 지구의 운명, 아니 우리 인류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지 매우 궁금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전자전기를 전공하는 공대생에게 윤회를 믿느냐고 물으면 당연히 비웃겠지? 하지만 윤회가 없다고 단정하기에 세상은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 부자 나라에 태어나는 사람, 가난한 환경에 태어나는 사람, 같은 부모에게 나서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어떤 이는 고생하며 살다가 일찍 죽어가고 어떤 이는 호의호식 편안한 삶을 살며 무병장수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연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 우리 인생은 너무 소중해. 우리 인생을 그저 본래 없이 태어나서 결과 없이 죽어간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비논리적이야.     


가장 보편적으로 윤회를 설명하는 방법은 여섯 개의 별을 번갈아가며 태어난다는 거야 흔히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부르는데, 천상계 인간계 아수라계 축생계 아귀계 지옥계의 여섯이지. 당연히 천상(天上)이 가장 좋은 곳이고 지옥(地獄)이 제일 험한 세계인 거고. 이 여섯 개의 별 중에서,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영화 <파바로티>(론 하워드 감독. 2020년)를 재미있게 봤는데, 보면서 들었던 생각 중 제일 인상적인 것은 ‘아! 파바로티는 확실히 천상계에서 온 사람이구나!’라는 거야. 전생을 천상계에서 살았는데, 뭔가 죄를 지어서 잠시 인간계에 유배되어 온 사람...     


그런 사람들이 있지. 인간이라고 하기에 너무 아름답고 가볍고 고결한 사람. 나보고 예를 들라하면 몇 명을 말할 수 있어. 모차르트, 마이클 잭슨, 앙드레 김 같은 사람들은 분명 천상계 출신일 거야. 위대하다거나 멋지다는 것과는 다른 뜻이야. 위대한 거로 치면 베토벤이 모차르트보다 뛰어나지 않을까? 하지만 베토벤은 인간의 길을 간 사람이고, 모차르트는 천상에서 잠시 놀러 내려온 사람이지. 마이클 잭슨이 비틀스나 BTS보다 훌륭한 아티스트는 아닐지 몰라도, 분명 천상계에는 가까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 앙드레 김이 흰색 옷을 즐겨 입은 것은 흰색이 천상의 색깔이니까, 고향인 천상계를 그리워한 때문 아니었을까?     


물론 그 사람이 어디에서 왔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지. 그건 과거의 일이니까. 중요한 건 전생이 아니라 이생이고, 지금 이 순간이니까. 믿거나 말거나, 지금 이 순간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가 과거 때문인 것은 분명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 우리가 뿌린 씨 때문에 현재의 내가 있다는 거지. 부자로 태어나고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고 좋은 외모를 뽐내고 많은 인기를 누리는 것은 그럴만한 전생과 과거가 있기 때문이야. 파바로티가 천상에서 왔건 지옥에서 왔건 그게 무슨 상관이야? 문제는 그가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거지. 천상의 삶을 살았느냐 지옥의 삶을 살았느냐 그게 중요한 거야. 지금 현재 너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니?     


과거는 현재를 만들고 현재는 미래의 씨앗이야. 흔히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하지.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 대충 말 수 있어. 천상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축생 아귀의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얼굴에 다 쓰여 있지. 지옥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거야. 내가 시종일관 주장하는 말, ‘내 세상은 내가 만든다!’ 믿건 안 믿건 이건 변치 않는 진리야.      


우리가 인간계에 태어났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야. 인간계는 혼돈의 세계지만 기회의 시간이기도 해. 천상계가 환희를, 아수라계가 질투를, 축생계가 집착을, 지옥계가 증오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면, 인간계는 그 모든 요소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 우리 마음속에 천상부터 지옥까지 항상 함께 한다는 말이야. 어느 세계의 삶을 살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에 달린 거고.     


인간의 특성을 ‘부끄러움’과 ‘노력’이라고 해.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경직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지. 살아있다는 말이야. 지옥계의 증오심으로 화를 내다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은 후회를 하고 반성을 하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돼. 천상계의 환희심으로 기뻐하던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면 겸손해지고 좀 더 베푸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돼. 부끄러움과 노력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두 바퀴라고 할 수 있어.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다행인 이유는 그렇게 천상부터 지옥까지 순간순간 오가면서 살아간다는 거야.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자라나듯이, 우리도 천상의 생각과 지옥의 감정을 오가면서 성장하는 거지. 파바로티처럼 천상에서 오지는 않았다고 해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천상의 삶을 살아낼 기회가 있는 거야. 설령 불운을 타고나서 지옥을 전생으로 두었다고 해도, 인간계에 태어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고 기회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니까. 지금 천상의 삶을 택하면 환희의 세계가 태어나니까.     


사랑하는 딸! 네가 보기에 아빠는 어느 별에서 온 사람인 것 같니?

전생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빠의 젊은 날 많은 시간이 지옥 같은 어둠 속에 있었던 것은 분명해. 너에게 얘기를 했는지 확실치 않은데, 아빠는 그 날의 섬뜩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해. 30대의 어느 때인가, 우연히 화장실에서 거울 속의 나를 본 적이 있어.(사실 거울을 본다는 것도 당시의 아빠에겐 특별한 일이었지. 젊은 시절의 아빠는 세상을 미워했고, 나 자신을 미워했고, 그런 만큼 거울도 거부하며 살았거든. 거울을 본다는 것은 나를 들여다본다는 것이고, 관심을 갖는다는 뜻이니까.)     


아...! 우연히 보게 된 거을 속의 나... 마치 지옥에서 막 나온 악마 같은 느낌... 저주와 증오로 가득 찬 음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 그때의 오싹한 느낌은 절대 잊지 못할 거야. 세상을 미워한다고 날카로운 가시를 온몸에 두르고 고슴도치처럼 성숙의 시기를 살아왔는데, 사실은 그 가시가 내 살을 파고들어 내 속에 지옥을 만들었던 거지.     


그때의 나를 너에게 보여주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 시기에 엄마를 만나지 않은 게 또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아빠는 인간이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여전히 흔들리고 있지만, 부정보다는 긍정의 시간이 많고 고통보다는 기쁨을 많이 느끼고 미움보다는 사랑을 하려고 노력하니까.     


영화 <파바로티>를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것 또 하나는 파바로티가 공연 직전 몹시 불안해하고 떨었다는 사실이야. 전혀 떨지 않고 능숙하게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대에 나가기 직전에 ‘죽으러 간다’고 말할 정도로 극심한 지옥을 맛보고 있었던 거지. 파바로티처럼 천상에서 온 사람도 지옥을 경험하는데,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지옥의 삶을 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라. 중요한 것은 그것을 딛고 일어나 내가 원하는 세계를 만들고, 미련 없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아내는 거지.     


사랑하는 딸!

아빠는 네가 어느 별에서 왔는지 알아. 네가 태어나고 자라온 모습을 보아온 나로서 분명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릴 때의 너는 천상계의 모습이었다는 거야. 천상계의 천사처럼 아름답던 네가 사춘기를 거쳐 이제 대학생이 되었는데, 요즘의 너는 어느 별에서 살고 있니? 좋은 모습으로 좋은 세계에서 살았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빠는 괜찮아. 네가 어디에 있건 너는 아빠의 딸이고, 아빠는 항상 너를 지키고 응원할 테니까.     


한 가지 당부를 하자면, 부디 가벼워질 것! 모든 게 무거우면 가라앉고 가벼우면 떠오르게 마련이지. 부정하면 무거워지고 긍정하면 가벼워지니까, 부디 긍정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그리하여 집착을 버리고 언제 어떤 상황이나 평강 하기를. 열심히 너의 세계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다 이루었다!’ 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를...     

  -- 딸의 윤회가 궁금해진 아빠가.

매거진의 이전글 딸에게 쓰는 편지 48; 내가 사랑하는 영화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