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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Feb 18. 2020

딸에게 쓰는 편지 50;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딸아, 아빠가 요즘 저녁에 TV 보는 시간이 늘었는데 알고 있니? 아빠는 TV 드라마를 재미없어해서 잘 안 보는데, 요즘은 꼬박 엄마와 나란히 앉아서 드라마를 보지. 이제 늙어서 TV 드라마가 재미있어진 거 아니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려. 늙어간다는 것은 한편 유연해진다는 말이야. 좋고 싫음, 옳고 그름, 재미있고 없음의 경계가 흐려져. 멍청해진다는 건 아니고, 크게 그런 구분에 구애받지 않게 돼. 젊을 땐 ‘재미있느냐 없느냐, 볼만하냐 아니냐’가 TV 드라마를 보는 중요한 기준이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 않다는 말이지.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보는 거야.   

  

그냥, 엄마가 보니까 같이 보는 거야. 엄마와 저녁시간을 함께 하고 싶으니까. 전 같으면 엄마가 드라마 볼 때 아빠는 따로 영화를 보거나 다른 뭔가를 했겠지.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보다 엄마와 함께 있는 게 더 중요한 일이고 좋으니까 그냥 같이 드라마를 봐. 어쩌다가 너무 말이 안 되는 걸 보고 한마디 해서 엄마한테 기분 망친다고 구박을 당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런 고난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엄마와 나란히 TV를 봐. 특별한 볼 일이 없는 저녁시간, 아빠에게는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이 최고로 좋은 시간이니까.     


그러다가 6살 전후의 어린아이들이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지. 처음으로 씨름을 배우고 서로 짝을 지어 겨루기를 하는데, 그 반응이 정말 각각이야. 씨름을 하고 나면 승패가 가려지고, 이기고 진 아이들의 행동이 모두 달라. 웃는 애, 우는 애, 덤덤한 애, 아닌 척하는 애, 화내는 애, 우는 애를 보며 난감해하는 애 등등...      


그중 특이한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웃더라고. 이겨서 웃는 게 아니라 졌는데 웃는 거야. 그것도 심플하게 웃고 마는 게 아니라 바닥을 뒹굴며 열심히 웃어대는 거야. 이긴 애는 따라 웃으면서도 영문을 몰라하고.     

재미있는 건 그다음이야. 나중에 선생님이 아이에게 물었어. 졌는데 왜 웃었느냐고. 그때 아이의 대답, 그게 걸작이야.   

  

“웃는 거 아니에요. 우는 거예요.”   

  

그 대답을 들으며 아빠는 깜짝 놀랐어.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웃어대던 모습이 웃는 게 아니라 운 것이라는 사실에 우선 놀랐고, 그렇게 열심히 웃으면서 그게 우는 거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는 아이의 깨끗한 마음에 또 놀랐어. 대부분의 경우라면 그 모습이 우는 것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멈추기 마련인데, 그 아이는 자기 속이 다 풀릴 때까지 한참 동안 바닥을 뒹굴며 웃어대더라고.     


자,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씨름이라는 상황이 있어. ‘졌다’는 결과가 발생했지. 그 결과를 부정하느냐 긍정하느냐의 (감정) 선택이 있고, 또 울 것인가 웃을 것인가의 (행동) 선택이 있어. 부정하면 울고 긍정하면 웃는 게 일반적인 연결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 때론 너무 좋아도 울고,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는 경우도 생기니까.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일종의 오작동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 아이의 경우가 특이한 것은 오작동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정확히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야. ‘졌다- 슬프다- 운다’의 일반적인 연결이 깨지고 ‘졌다- 슬프다- 웃는다’의 비정상 연결이 발생했지만 아이는 이 연결을 중지시키거나 왜곡하지 않았어. 그냥 일어난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충실하게 표현했지. 대개의 경우 웃음이 나오면 일반적이지 않으니까 억제하기 마련인데 이 아이는 그런 자기 억제가 없더라고. 물론 이것을 다르게 볼 수도 있어. ‘슬프다- 운다’의 자연스러운 연결 회로가 망가져서 울지 못하는 아이가 된 결과라고, 극단적인 자기 억제의 형태라고 볼 수도 있을 거야.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아이는 전혀 망설임 없이 ‘나는 울고 있다’고 말을 했고, 그건 적어도 ‘우는 마음’과 ‘웃는 모습’의 상관관계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뜻이야. 감정은 감정대로 행동은 행동대로 따로 보고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연결을 시킨다는 말이지.     


‘조커’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인 것은 항상 웃고 있기 때문이야.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어떤 감정이 일어나건 상관없이 ‘나는 웃겠다’고 미리 정해놓았다는 말이지. 속으로는 열불이 나고 분노가 하늘을 찌르더라도 웃겠다는 거야. 문제는 그 각오가 진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얼굴에 그려진 가짜 미소라는 거지만, 어쨌든 대단한 각오지.     


만약 이 아이가 ‘어떤 나쁜 일이 있더라도 나는 웃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졌다- 슬프다- 웃는다’의 연결이 그냥 된 것이 아니라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 거라면 이 아이는 조커보다 더 대단한 인물인 게 틀림없을 거야. 물론 그럴 리는 없다고 봐. 하지만 ‘졌다- 슬프다- 웃는다’의 연결을 억제하거나 오염시키지 않고 그냥 놔둔 것만도 대단한 일이야.     


우리는 대체로 결과 중심의 행동을 하지. 드러난 결과에 영향을 받고 종속돼. 누구나 씨름에서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어. 확률이 다르긴 하겠지만 정확한 결과는 사실 아무도 몰라.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결과에 따라 우리의 감정이나 행동이 종속된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씨름에 졌어도, 남에게 욕을 먹었어도, 시험에 떨어졌어도, 어렵게 한 부탁이 매정하게 거절당했어도, 잘나지 못했다고 무시당해도 그냥 호탕하게 껄껄껄 깔깔깔 웃으면 그게 이상한 일인가?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어. 그건 우리의 영역 밖이야. 삼분의 일쯤은 타고나는 것이고, 삼분의 일쯤은 운과 관련이 있고, 삼분의 일쯤은 내 책임도 있지. 설령 100% 내 책임이라고 해도, 그리하여 그 결과가 매우 나쁘고 실망스럽다고 해도, 내 다음 행동은 전적으로 지금 나의 선택이야. 기뻐할 것인가, 슬퍼할 것인가, 아니면 화낼 것인가? 웃을 것인가, 울 것인가, 분노할 것인가? 그 선택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된 (씨름에 졌다는) 결과에 달린 게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내 의지에 달려있어. 조커는 작위적으로 그 의지를 흉내 냈고, 그 아이는 아직 어려서 자신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를 모르지. ‘어린이는 부처다’라고 불교에서는 말한다는데, 아마 그런 뜻인지도 몰라. 그런 점에서 우리 인생은 부처로 태어나서 점점 부처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그 잃어버린 부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어.     


사랑하는 딸!

방학 내내 낮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는 너는 뭘 찾아가는 중이니? 엄마한테 듣기로는 밤에 게임을 한다는데, 이제 대학 2학년이 게임을 하느라 밤새는 게 잘하고 있는 건가?     


잘하는 짓이라는 생각은 안 들지만 잔소리는 하지 않으려고 해. 아빠가 할 일은 잔소리가 아니라 네가 잘되고 잘 살기를 기도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네가 네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해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다만 어떤 경우라도 네가 화내기보다는, 울기보다는 웃는 인생을 선택하기 바래.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은 선택이고 의지야.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거지. 세 갈래 길이 있어. 하나는 괴로움의 길, 또 하나는 즐거움의 길. 그리고 마지막은 심심함의 길... 너는 어느 길을 걸어갈래? 보통 우리 감정을 ‘고(苦) 쾌(快) 사(捨)’ 세 가지로 구분해. 괴로움-즐거움-심심함의 순서로 높은 단계로 보지. 많은 경우 즐거움을 추구하고 심심함을 싫어하는데, 즐거움도 스트레스라는 건 너도 많이 들어서 알지? TV, 게임, 핸드폰... 모두 우리를 심심함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이야.     


이제 막 인생을 시작하는 너에게 심심함의 경지를 권하는 건 아니야. 즐거움을 취하되 과하게 집착하지는 말기 바래. 집착하면 무거워지고, 무거워지면 괴로움이 찾아오거든. 부디 가볍게! 부디 즐겁게! 휘파람 불 듯 신나게!     

  -- 갑자기 딸의 멋진 휘파람 소리를 듣고 싶어 진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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