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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May 14. 2020

딸에게 쓰는 편지54;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의 5단계2


어제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이 말한 기업가의 5단계에 대해 간단히 얘기를 했었는데, 오늘은 조금 더 들어가 볼까? 바쁘니까, 그냥 핵심만 살펴보는 정도로 하자고. 

    

1단계; 실패하지 않으려 애쓰는 시기(망하지 말자)

2단계; 돈 벌어서 쓰는 시기(나를 위해)

3단계; 애국자 되는 시기(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4단계; 상생하는 시기(어려운 사람들을 돕자)

5단계; 다음 세대에 떳떳하고자 하는 시기(다음 세대에 번듯한 조국을 물려주자)     


평생 1단계에 머물러 사는 사람도 많을 거야. 생존을 위해서, 먹고살기 위해 애쓰는 삶이지.

2단계 역시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단계지. 나의 즐거움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시기. 1단계와 2단계를 합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속할지도 몰라.     


단계가 되면 차원이 달라지지. 서정진 회장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고맙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3단계에 들어갔다는 증거야. ‘나’에게 갇혀있던 시선이 밖으로 향하고, 비로소 ‘너’와 ‘우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거지. ‘내가 있어서 저들이 있다’는 생각이 ‘저들 덕분에 내가 있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세상은 ‘내 것’이 아니라 ‘우리들 세상’이 돼.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이 소중한 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기는 거야. 서정진 회장은 자살을 하려다가 심경 변화를 겪었다는데, 몸을 살았지만 마음의 에고는 자살을 한 거지. 에고가 죽고 나니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문이 열렸다고나 할까?    

 

4단계의 공간적 확산은 말하자면 ‘박애주의’라고 할 수 있어. 나와 내 주변을 사랑하는 것에서 벗어나 지구촌 전체를 사랑하리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거지. 3단계와 다른 점은, 3단계가 나와 내 집단이 잘 사는 것에 주안점이 있다면 4단계는 고통받고 소외되는 사람이 없는 삶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거야. 자유와 평등이 다른 개념이라면, 3단계는 자유 4단계는 평등에 방점이 있다고 봐야지. 천주교의 테레사 수녀, 불교의 지장보살 같은 삶이 대표적인 경우겠지? 멀리 아프리카 오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가는 사람들도 그 바탕에는 박애주의가 있다고 생각해.     


사실은 여기까지가 끝이야. 우리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도달하는 경지라는 것이 여기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지. 현존 최고의 성공사례인 빌 게이츠를 봐도 4단계의 삶을 살고 있어. 수많은 자선사업과 각종 선행은 우리 모두 알고 있는 바이거니와, 그 엄청난 재산을 대부분 사회에 환원하고 0.1% 미만을 자녀에게 상속하기로 선언하는 등 모범적인 부자의 모습을 보여주잖아? ‘지구를 지켜라!’가 사명인 듯 구석구석 그의 관심이 닿지 않는 곳이 없지만, 어쨌든 그 모든 것은 ‘지금 여기’를 바탕으로 한 행동이고 삶이지.  

   

그러나 서정진 회장의 5단계는 달라. 다른 세계야. ‘다음 세대에 떳떳하고자’ 하는 것 자체는 빌 게이츠도 똑같을 거야. 그가 하는 수많은 캠페인과 사업들은 보다 나은 지구촌을 만들기 위한 시도들이니까. 그러나 겉으로는 같아 보여도 그 차원은 전혀 달라. 빌 게이츠는 ‘지금 여기의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지. 그러나 서정진 회장의 5단계는 ‘지금 여기의 나’를 벗어나 있어. 갑자기 ‘다음 세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아!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벽에 부닥친 느낌? 어떻게 설명을 해야 내가 생각하는 것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을까? 문득 CF 대사가 생각난다. ‘아... 좋기는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설명할 방법이 없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나’라는 주체가 사라졌다는 점이야. 예를 들어볼게. 

A가 B에게 ‘네 마음대로 해봐.’라고 말하는 경우와 ‘네 맘대로 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자. 앞의 말에는 ‘어떤 경우라도 내가 책임을 질게’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지만, 뒤의 말에는 내가 빠져있어. 전적으로 상대에게 맡긴다는 뜻이지. ‘나’라는 가치판단 도구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그게 5단계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이야. ‘해봐’와 ‘해’는 글자 한 자 차이일 뿐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먼 거리에 있는 말이야.     


이처럼 말이란 정확하게 사람의 마음 상태를 반영해. 물론 의도적으로 꾸며서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 탄로 나게 마련이지. ‘네 맘대로 해봐’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정말 ‘네 맘대로 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걸? 실제로 그렇게 말했다면 그건 ‘하지만 난 책임 안 져’라는 말이 생략된 경우일 가능성이 많지. 완전한 믿음, 완벽한 자기 해방... 그런 상태라야 문이 열리는 게 바로 5단계의 삶이야.   

  

사랑하는 딸!

얘기를 하다 보니 서정진 회장이 빌 게이츠보다 더 수준 높은 삶을 사는 것처럼 묘사가 됐네? 지난 편지에서 말했듯이, 실제로 서정진 회장이 아빠가 말하는 5단계의 상태에 있는지 알 수는 없어. 다만 5단계의 문맥이 그렇다고 해설을 하는 것뿐이야. 말이란 마음의 반영이고, 표현은 실제야.      


실제로 각 단계는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어. 지옥- 연옥- 천국이 다른 세상인 것처럼, 각 단계는 전혀 다른 차원이지. 1학년이 끝나야 2학년에 올라가듯이, 1단계를 마쳐야 2단계의 삶을 살 수 있어. 중요한 것은 충실하게 자신의 단계를 살아가야 한다는 거야.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다 보면 마음에 질적인 변화를 겪고 그게 밖으로 드러나지. 서정진 회장이 ‘미안하다’ ‘고맙다’고 한 것처럼 각 단계마다 결정적인 열쇠가 있어. 그 열쇠가 있어야만 다음 단계가 열리는 거지.     


서정진 회장이 5단계에서 말한 ‘다음 세대’라는 단어는 그러한, 일종의 열쇠 단어지. 4단계까지는 공간적 확산, 공간으로부터의 해방에 관한 서사야. 일관성이 있지. 그런데 5단계는 공간의 얘기가 아니라 시간에 관한 이야기야. ‘다음 세대’라고 명칭은 했지만 결국 ‘미래’를 말한 것이고, 그 ‘미래’란 다시 해석하면 ‘나의 현재를 벗어난다’는 뜻이야. 공간적 확산, 공간으로부터의 해방 이야기가 훌쩍 시간적 확산,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비약해. 아름다운 비약...!     


단어는 그 사람의 무기이면서, 또 한편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표식이야. 열심히 살아서 자신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레벨에 상관없이 아름다워. 1단계는 1단계의 아름다움이 있고, 5단계는 또 5단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말이지. 아빠는 네가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를 바래. 아름다움이란 최선을 다할 때만 드러나는 축복이거든.     

  -- 딸이 항상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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