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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Oct 01. 2021

가장 운전을 잘하는 방법

   

어머니 생신을 맞아 동해안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 왔습니다.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나. 그렇게 세 명, 어머니야 내심 일가족 모두 데리고 왁자지껄 가는 걸 좋아하시겠지만 별 내색을 않네요. 아들 딸을 위해 하루 내준다고 생각하시겠지요.     


잘 다녀왔습니다.

바다도 보고, 설악산도 걷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잘 지냈습니다.

문제는 오며 가며 차 안에 있었습니다.   

  

여동생의 잔소리!

운전하는 뒤에서(두 모녀는 뒷자리에 탔지요) 갖가지 잔소리를 합니다.

속도가 빠르다, 앞 차와 거리가 가깝다, 차선 변경하지 마라, 제한속도 30Km 지켜라...     


내가 운전을 험하게 하는 거 아니냐고요?

전혀!

초보 시절 가벼운 접촉사고가 있었을 뿐, 무사고 운전입니다.

물론 속도는 좀 냅니다. 차가 많거나 복잡한 길에서는 그렇지 않지만, 도로상황이 좋으면 시원하게 속도를 내는 편입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는 과속 범칙금도 많이 냈습니다.)    

 

“제일 안전하게 운전하는 방법이 원지 아니?”    

 

드물긴 하지만, 터널 안에서 차선 변경을 하기도 합니다.

역시 동생은 잔소리를 했고, 나는 되물었습니다.

동생이 원하는 게 바로 안전한 운전이니까요.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것?

방어운전?

적당한 운전 시간?

안전성 높은 좋은 차?(얼마 전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가 자동차 사고에서 살아난 걸 두고 차의 중요성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나의 대답은 이거였습니다.     


“최대한 빨리 운전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     


다시 말해서 최단시간 내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거지요.     

제한속도, 물론 지켜야 합니다.

앞 차와의 거리, 중요하지요.

터널에서 차선 변경, 위험합니다. 자칫 사고라도 나면 큰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언제 어떤 사고가 날지 누가 일겠습니까?

저속 차량 뒤를 차선 변경 없이 따라가다가, 그 차가 운전미숙으로 사고가 나면 연쇄추돌을 피하지 어렵습니다.

50Km 정속주행으로 가다가 맞은편 차선에서 졸음 운전하던 차에 들이받힐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여편과 고속도로를 가다가 갇힌 적이 있습니다.

2시간 넘게 꼼짝도 못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 앞 50m쯤 되는 곳에서 사고가 났더군요. 도로 옆에서 작업하던 크레인이 넘어져 도로를 가로막은 거였습니다.


불과 50m 뒤에서 우리는 2시간 넘게 서있었고,

어떤 차는 넘어지는 크레인에 깔려 응급실로 갔고,

또 어떤 차는 간발의 차이로 (심지어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른 채) 그냥 목적지로 갔습니다.     

어느 게 안전한 운전이었을까요?

안전이 과연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가장 안전한 운전은 가장 신속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입니다.

가장 빠른 시간에 자동차라는 위험한 공간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주 옛날 <칭찬합시다>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한밤중에 신호를 지키는 차가 얼마나 있는지 관찰한 적이 있는데요, 실제로 그런 차가 나와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적이 있었습니다.     


안됩니다! 그런 선택을 칭찬하면 안 됩니다.

주행 중인 차는, 더군다나 한밤중의 도로는 아주 위험합니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이 불가합니다.

신호를 반드시 지켜야한다면, 신호기를 점멸신호로 바꿔서라도 신속히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빨리 죽어야겠네? 이 세상이야말로 정말 위험한 일투성이 아닌가?”    

 

친구가 농담반 진담반 얘기합니다. 자동차 운전이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가장 안전하듯이, 인생의 운전은 죽음이라는 종점에 빨리 도달하는 게 최선이 아니냐는 거지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찔끔합니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은 경험이 있습니다. 완치가 안 된다고 하니 아직 환자입니다.

우울증은 쉽게 말해서 인생의 계산서가 나와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

“죽어야겠다.”     

우울증의 계산서입니다.

계산서를 보긴 했지만 미뤄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계산서를 내밀면 당황하게 됩니다.     


“인생은 운전하고 달라. 정해진 속도로 가야 돼.”     


물론 세상은 험합니다. 힘들고 우울하고 괴로운 일투성입니다.

문제는 우리 인생에 목적지가 정해져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그리고 그 끝은 내가 마음대로 정하면 안 됩니다!


내 맘대로 정하면, 다시 말해서 내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 다음 생에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운전은 차에서 내리면 끝나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시 시작됩니다.

끝을 내는 내 마음에 죄의식이 새겨져서, 그 죄의식으로 새로운 생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내가 끝낸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 그것은 완전연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만의 속도로 나의 삶을 살아서, 아무런 아쉬움이나 고통도 남기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 삶의 여행이 끝납니다.

애써 규정 속도를 지키려고 할 필요 없습니다.

그렇다고 굳이 과속의 쾌감을 즐기는 것 역시 좋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 필요한 속도로,

적당한 나의 리듬으로 운전해야 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1차선으로만 달립니다.

여건이 허락하는 최고의 속도로 달립니다.

대부분 1차선으로 목적지까지 가지만, 어쩌다 한 번씩 차선을 양보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강력한 성능의 고급 스포츠카가 고속으로 다가오면 눈물을 머금고 비켜줘야 합니다. 나의 차로는 그 속도를 감당할 수 없으니까요.

마음이 쓰렸습니다. 젊은 시절 얘깁니다.  

   

젊은 시절은 속도가 나를 지배합니다. 속도가 바로 납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 속도에서 벗어나지요.

정해진 속도란 없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속도를 각자 찾아내는 수밖에...

     

가장 운전을 잘하는 방법을 알고 싶으십니까? 

일단 차를 타고, 달려보십시오.

속도를 느끼고, 나를 즐겁게 하는 지점을 찾으면 됩니다.

적당히 주위 눈치도 보고,

단속 카메라도 조심하고,

느림보 차는 슬쩍 추월도 하면서 나의 리듬을 찾아보십시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것이고,

운전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는 걸 비로소 알게 될 겁니다.   

  

부디 여러분의 인생도

운전처럼 그렇게 저절로 흘러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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