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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Feb 11. 2022

딸에게 쓰는 편지 67; 어느 자유주의자의 변명

 너는 행복해야 한다.

너는 건강해야 한다.

너는 잘 살아야 한다.

너는 너다워야 한다...    

 

세상은 ‘옳은 말’의 바다다. 바다가 넘쳐 쓰나미가 될 정도로 ‘옳은 말’은 많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거대한 담론부터 사소한 규칙까지 그 말들은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우리는 그 ‘옳은 말’들에 의해 ‘사육’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너는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되나?

너는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되나?

너는 잘못 살면 안 되나?

너는 너답지 않으면 안 되나?     


질문은 금방 변형된다.

행복과 불행은 어떻게 구분하는가?

건강함과 그렇지 않음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가?

잘잘못의 판단 근거는 무엇인가?

나답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딸!

세상은 늘 변해. 아빠 세대에는 사회정의와 평등이 주요의제였다면, 요즘은 개인의 자유와 공정을 더 중요하게 따지는 듯해. 그런 바탕에서 ‘각자의 행복’과 ‘건강’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고.     

다시 말해서 세상에 절대적인 가치, 변치 않는 진리는 없다는 거야. 각 요소의 배합, 어떤 게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지.


앞서 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나?”   

  

자기가 아는 걸 가르쳐줄테니 그냥 따라서 하라는 거지. 그 사람이 ‘그건 똥이야.’ 하면 똥인 거고, ‘음! 이건 된장이군.’ 하면 그렇게 알라는 거야.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너나 잘하세요!”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때, 99%의 사람들이 똥이라고 말해도 내 마음의 1%가 ‘된장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될 때, 온갖 비난과 조롱의 후환을 무릅쓰고 진짜 똥이 맞는지 확인하는 행동... 그게 자유주의자의 모습이다.     


‘서로 사랑하라.’고 말한다. ‘미워하지 말라.’고도 한다. 허황된 말이다.

사랑은 미움에서 나온다. 미워해보지 않은 사랑은 가짜다. 사랑과 미움은 서로 섞여있다. 그때그때, 비율에 따라 색깔을 달리해 나타난 뿐이다.     


사랑만 해본 사람은, 미워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미움의 감정이 올라오면 당황해서 억누르거나 도망간다. 이게 뭔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워해본 사람은, 미움의 감정에 충실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게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도망가지 않는다. 사랑이건 미움이건 그냥 내버려 둔다. 그리고 현재의 자신에 충실한다. 지금 여기, 나의 선택에 집중한다. 그게 자유주의자의 모습이다.     


우리가 사랑을 칭찬하고 증오를 비난한다. 삶을 칭송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건강을 숭배하고 질병을 회피하려 한다. 그게 맞나? 당연한 일인가?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된다. 겨울은 죽음이다. 세상살이의 당연한 과정이다. 우리의 생도 마찬가지. 죽음은 그저 당연히 찾아오는 인생의 한 계절이다. 사실은 두려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렇게 학습되었을 뿐이다.     


‘건강 염려증’이라는 병명이 생겨날 정도로 요즘 세상은 건강에 집착하고 병을 무서워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병은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다. 병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뼈와 살이 스스로 분해되어 사라질 때까지, 몇 백 년을 죽어가야 할지도 모른다. 병이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이야말로 두려운 일 아닌가?        


  (...)

당신은 바다 나는 파도

내가 이렇게 한껏 모양을 뽐내며 나를 주장하는 것은

빨리 당신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치명적으로 부서져 당신 속으로 스며들기 위해서     


나는 파도 당신은 바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당신에게 항복합니다

    ---아빠의 시 <파도의 변명> 중에서     



항복을, 죽음을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 그게 바로 자유주의자의 모습이다.

지금 이 순간, 한껏 몸을 일으키는 파도처럼

최선을 다해서 나의 진면목을 드러내면 그 뿐!      

          ---딸이 파도처럼 한껏 자신을 뽐내기를 바라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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