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하태평 Apr 13. 2022

빨리 큰 병원에 가보세요

 나이가 들어가면 여기저기 아프기 마련입니다. 약을 먹어야 하는, 지병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 있군요! 심하진 않지만 부정맥이 있어서 매일 아침 약을 먹습니다.    

 

약 먹을 정도는 아니어도 부실한 데는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하지정맥류인데요, 왼쪽 종아리 쪽에 약간 힘줄이 솟아 있습니다. 여러 해 됐는데 변화가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지냈지요.     


그런데 보름쯤 전에 갑자기 무릎 뒤 접히는 부분이 아프더라구요. 매일 동네 산에 다니니까, 그 과정에서 힘줄이 과부하를 받았나 하고 넘겼습니다.

그 부분이 튀어나와 있다는 건 샤워하면서 발견했습니다. 근육이라기엔 딱딱하고, 뼈라기엔 약간 부드러운 뭔가가 볼록 나와 있습니다. 처음처럼 통증이 심하진 않지만 여전히 약간의 통증도 있고요.     


“빨리 큰 병원에 가보세요.”     


보통 의사에게 듣는 말 가장 무서운 말 중에 하나입니다. 뭔가 중대한 병이 있을 확률이 많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바로 그 말을 들어버렸습니다!     


‘하지정맥류가 심해졌나보다’ ‘수술해야 하나?’ 정도 생각하고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는 큰 병원에 가서 자세한 검사를 해보라고 권합니다. 증상의 원인은 혈전인데, 그 혈전이 생긴 원인을 잘 찾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단순히 하지정맥류로 알고 수술했는데 나중에 대장암이었던 게 밝혀진 자신의 진료 경험을 얘기하면서...     

암일 수도 있다는 거지요.


암...   

  

암이라...    

 

대장암인가...?

지난번 종합검진 때 대장암 내시경을 못한 게 떠올라 자책합니다.


피부암인가...?

여기저기 피우에 이상이 생기는 게 혹시 암 때문이 아닌지 의심해 봅니다.    

 

뇌종양? 아니면 스티브 잡스가 앓았던 췌장암?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쓸데없는 생각들이 각개질주를 합니다.

워낙 우울증으로 죽음과 친하게 지내온 터라, 암으로 죽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되지는 않네요.      


‘항암치료는 받지 않을 거야.’    

 

제일 먼저 든 생각입니다.    

 

‘그러면 여편이 화낼 텐데.’

‘암이 초기라면 수술은 받겠다고 해야지. 하지만 항암치료는 안 해.’     


얼마 전 친구 부인의 장례식에서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야, 암은 걸리지 마라.”     


친구는 여러 해를 부인 암 투병으로 보냈습니다. 갖은 고생이 많았겠지만, 가장 큰 고통이 옆에서 암환자가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었나 봅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평소 암도 인생을 마감하는 다양한 수단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아프긴 싫지만 어쩌겠어요? 얼마 전 타계한 이어령 선생도 항암치료 없이 암을 견뎠다고 하니, 나도 그렇게 암과 함께 인생을 마무리해 보지요.   

  

“하지정맥류네요.”     


큰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말하네요. 내가 ‘혈전의 원인이 암일 수도 있다더라.는 얘기까지 했으나 그는 별 반응이 없습니다.     


“초음파 찍고 한번 보자구요.”     


초음파와 피검사를 예약하고 돌아왔는데, 두 의사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 살짝 당황스럽네요.

1번 의사는 암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인데, 2번 의사는 가벼운 감기 정도의 반응입니다. 누구 판단이 옳은지는 곧 밝혀지겠지요.     


뭐... 암이 아니면 좋고, 암이어도 상관없습니다. 평소 병마와 싸우면서 사는 걸 마땅치 않게 생각했거든요. 이제껏 우울증을 보듬고 살아왔듯이, 암이라 해도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많이 아프다니 살짝 무섭긴 하지만 그 또한 내 삶의 일부니까요.  

   

‘암일 수 있습니다 해서 큰 병원 갔더니 아니더라. 깜짝 놀랐다’는 식의 재미있는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네요. 워낙 재미있게 쓰는 재주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이제 내 재주이고 내 모습이니,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요.     


언젠가는 놀랍게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그 때를 위해서, 로또 복권을 사는 기분으로 글을 씁니다. 그런 날이, 여러분이 로또에 당첨되는 날이 꼭 오리라 믿습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길!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3살 때부터 혼난 사람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