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사정은 이랬다. 백성원이 맛있는 순댓국집이 있다며 민도길에게 전화를 했고, 민도길은 백면을 동행해서 같이 나갔다. 서울 지하철 고덕역 근처 시장 끝에 있는 작은 순댓국집이었는데, 민도길이 워낙 순댓국을 좋아하는 걸 아는 백성원이 일부러 불렀다고 했다.
백성원이 음식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유명인사라 사람들이 아는 체를 많이 해서 조금 귀찮기는 했으나 음식 자체는 먹을 만했다.
“죄송해서 어쩌죠? 갑자기 녹화 일정이 잡혀버렸네? 보충촬영이 있대.”
막 식사를 끝낼 때쯤이었다. 전화를 받은 백성원이 예의 사람 좋은 웃음으로 양해를 구하고 급히 자리를 떴다.
민도길과 백면은 조금 황당했으나, 이왕 서울 온 김에 남산이나 올라가 보자고 얘기를 나누며 식당을 나왔다.
“이 쪽으로 갈까?”
저만치 정장을 입은 남자 둘을 발견하고 민도길이 급히 백면을 잡아끌었다. 백면 역시 그들에게서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꼈던 터라 얼른 그들을 피해 골목길로 들어섰다.
“어쨌든 지하철 타얄 텐데?”
“좀 돌아가지 뭐.”
“잠깐만! 여기 좀 보실까?”
발걸음을 재촉할 사이도 없이 뒤를 따라온 두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민도길이 걸음을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백면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저 놈들, 심상치가 않네.”
“무슨 일일까요?”
“기가 안 느껴져."
"그럴 리가? 좀비도 아니고..."
"스스로 기를 통제할 정도로 엄청난 고수라는 거지.”
“그 정도 고수면 대충 아는데...”
“어쨌든 위험할 수 있으니까 자기는 일단 피해.”
“그래도 있어야죠.”
“여긴 나한테 맡기고. 내가 돌아서면, 자긴 무조건 도망쳐. 알았지?”
“같이 튀죠.”
“왜 이래? 나 민도길이야. 걱정 말라고. 자... 나중에 봐.”
그게 마지막이었다. 얘기가 끝나자 민도길은 돌아섰고 백면은 그대로 전력을 다해 달렸다. 한참을 달리다보니 ‘내가 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자리에 섰다.
솔직히 죽음이 두려웠던 건 아니다. 백면은 자신이 그렇게 비겁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 그토록 열심히 도망을 친 것은 왜였을까?
싸움을 못해서? 그건 이유가 못된다. 백면은 도깨비 무리들과 어울리게 된 이후 험한 상황을 무수히 만났고 겪어냈다. 무술 고수들이 즐비했으나 백면은 주눅 들지 않았다.
백면에게는 머리가 있었다. 백면이라는 이름이 단순히 얼굴 모양이 백 개라서 붙어진 것인 줄 아는가? 백 개의 지략을 낼 수 있는 머리 때문이다.
‘민 선배를 믿은 거지. 정말 한 점 의심도 없이 믿으니까 그렇게 뛰지.’
열심히 달려온 길을 천천히 되돌아가면서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했다. 자기가 믿은 만큼 민도길이 상황을 잘 해결했기를 바라면서 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면서 불안감이 엄습했으나 애써 물리쳤다.
민도길은 이쪽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다. 호락호락 당할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백면이 그렇게 무심의 경지에서 도망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게 뭐지...?’
말 그대로, 백면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붉게 물든 바닥 위에 민도길이 누워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민도길의 머리가 수박 자른 듯 둥글게 잘려 있다는 것이었다. 눈썹 바로 위 부분에서 날카롭게 절단된 머리와 부릅뜬 두 눈은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경찰의 통제로 가까이 가지는 못했으나 멀리서 본 것만으로도 백면은 소름이 끼쳤다.
‘이건... 선전포고구나!’
백면은 본능적으로 어떤 세력이 공개적인 메시지를 주는 거라고 느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노골적으로 서울 한복판에서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할 이유가 없다.
민도길의 시신을 뒤로 하고 백면은 돌아섰다. 빨리 대책을 세우는 것이 민도길의 죽음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면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주름 많은 노인의 얼굴로 변신했다.
****
백면은 드물게 추한 얼굴로 태어났다. 부모가 누군지는 모른다. 자식의 흉측한 얼굴이 부끄러워 유기했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보육원에서 지내면서도 백면은 완벽한 따돌림을 받아야 했다. 백면 스스로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외톨이가 되어 얼굴만 가리고 있었다.
밖에 있으면 하늘 보기가 부끄러웠고, 실내에서는 행여 누가 볼까 조바심을 쳤으며,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에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자기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그러다가 TV에서 어느 조각가가 진흙으로 얼굴을 빚는 장면을 보고 백면은 보육원을 탈출했다. 이천 어딘가에 있다는 조각가를 헤매고 헤매어 찾아갔다.
“아저씨. 제발 부탁드려요. 제 얼굴 좀 새로 빚어 주세요.”
조각가는 강대성이라고 하는 사람이었는데, 하던 일을 멈추고 한참동안 백면을 보기만 했다. 백면 역시 마지막 동아줄을 잡은 심정이어서, 이 눈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는 어떤 본능적 감각으로 마주 보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을까? 백면은 하루가 아니라 백날 정도는 된 것 같았지만, 실제로 한 두 시간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서로 눈싸움을 해본 사람은 안다. 마주 본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5분을 넘기기 어렵다. 그런데 한 시간 이상을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 보통은 아니라는 얘기다.
“네 얼굴은 네가 빚어야지. 아무도 못 도와줘.”
땀을 뻘뻘 흘리며 백면을 쳐다보던 강대성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한 시간 동안, 수많은 고민 끝에 그가 내린 최선의 결론이었다.
“어떻게 빚는지 몰라요. 가르쳐 주세요.”
진실함은 망설이지 않는다. 백면은 강대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르쳐달라고 했다.
어린 나이였으나 떼를 쓰는 따위는 하지 않았다. 정곡을 찌르는 백면의 말에 강대성은 기분이 좋아졌다.
“똑똑한 아이구나. 내가 하라는 대로 할 수 있겠니?”
“고맙습니다, 선생님.”
백면이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를 했다. 강대성이 다가가 백면의 머리를 안아주었다.
백면이 강대성의 허리를 힘껏 감싸 안았다. 마지막 희망의 끈이었으므로,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저녁을 먹고, 강대성은 벽면을 데리고 작업장으로 갔다. 그리고 말없이 자신의 작업과정을 보여주었다. 평생 해온 일이었으므로, 쉽고 빠르게 누군가의 얼굴이 만들어졌다.
“자! 이렇게 하면 된다. 알겠니?”
“전 그런 기술이 없는데요. 연습을 해야 하나요?”
“무슨 기술?”
“손 기술이요. 만들어내는 손.”
“틀렸다. 손은 거들 뿐이야.”
“예?”
“사람들은 손이 만들어내는 줄 안다. 천만에! 그건 공장에서 가능한 일이지.
예술은 그게 아냐. 네가 만드는 거야. 손은 단지 수단일 뿐이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네가 본 그대로야. 여기 조각상이 있지?
이 조각상의 얼굴이 어디서 나왔을까? 내 손에서 나왔나?”
“아뇨. 선생님 생각이, 선생님 마음속에서...”
“그래! 잘 알고 있구나. 나는 단지 내 마음속에 있는 형상을 구체화시켰을 뿐이야. 만든다는 것은 손이 하는 게 아냐. 마음이 하는 거야.”
“아...! 그거, 저도 있어요.”
“그렇지? 그럼 된 거야. 간단해. 이제 네가 할 일은 손한테 명령만 내리면 돼. 이렇게 만들어라, 하고.”
“이렇게 만들어라...”
항상 말은 쉽다. 하지만 행하는 것은 어렵다. 제대로 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보통 사람들 얘기다.
그런 점에서 백면은 분명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는 강대성의 말을 해냈으니까. 그것도 아주 잘.
시작은 초라했고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의심이 있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다. 아니, 될 것이라고 믿은 사람은 없지 않을까? 손만으로 얼굴을 바꿀 수 있다면, 세상의 수많은 성형외과 의사들은 어떻게 먹고 살라는 말인가?
어쩌면 가르쳐준 강대상마저도 실제로 가능하다고 생각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면은 그걸 해냈다. 저주받은 자신의 얼굴을 자신의 손으로 바꾸어냈다. 진실로 원하는 자만이 불가능을 가능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불가능은 없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백면은 하루 종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있을 뿐이었다. 머리에서 손까지의 거리는 아주 멀어서, 간절하게 명령을 보냈지만 손은 응답하지 않았다. 며칠 동안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강대성이 화를 내며 먹기를 명령하지 않았다면 그러다가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백면은 모든 시간을 그저 얼굴만 감싸 쥐고 앉아 있었다.
피부가 헐어 내렸다. 아팠으나 백면은 개의치 않았다. 더 이상 기댈 곳은 없었다. 실패하면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세 달쯤 지났을까? 손에 움직임이 왔다. 처음에는 살살 어루만지는 것 같더니 차츰 강도를 세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코를 자꾸 잡아당겼다.
결국 코뼈가 부러졌으나 백면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자꾸 눈을 찢었다. 찢어져서 피가 났으나 백면은 멈추지 않았다.
밤에 잠자기 위해 세수를 하면 세면기가 온통 피로 물들었다.
꼬박 1년의 고행이었다. 뼈를 깎는 노력이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한다. 실제로 백면은 뼈를 깎고 살을 발라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냈다. 아무도 옛날의 그를 떠올릴 수 없는, 멋진 얼굴의 청년으로 다시 태어났다.
“장하다. 얼굴 값 하면서 살아라.”
백면은 진심으로 감사하며 절을 올렸고, 강대성은 흐뭇하게 그를 보냈다. 당연히 보육원으로 돌아가야 했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백면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터미널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미 여러 번 화장실 거울로 자신의 새 얼굴을 확인한 터였지만 자신감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자신의 옛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야! 콰지모도!’ 하면서 놀릴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두려움은 사라져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은 익숙했던 조롱과 경멸의 그것이 아니었다. 여자는 감탄과 호기심을, 남자는 부러움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백면은 충분히 그 시선들을 즐겼다. 그 동안의 고통을 생각하면 즐길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버스를 탔다면 백면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배우를 동경했으니 유명한 배우로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원하던 만큼 충분한 사랑을 받고 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백면은 정해진 차편을 타지 않았고, 그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물론 이제 와서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백면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YOLO(You only live once)!
시선을 즐기면서 앉아있는데, 살금살금 증오심이 피어올랐다. 자신의 얼굴에 찬탄하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저주하는 마음이 점점 백면을 사로잡았다. 백면은 참을 수가 없었다. 1년여 동안 겪은 고통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우하하하!”
도를 닦는 중들이 깨달음을 얻으면 웃음이 터진다고 하는데, 백면은 깨닫지 않았지만 돌연 웃음이 터졌다. 해일처럼 밀려온 고통이 팡! 팝콘 터지듯 웃음으로 터져서 걷잡을 수 없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걸음을 멈추고 백면을 쳐다보았다. 백면은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매표창구로 갔다.
“산으로 가는 표 하나 주세요.”
“어느 산요?”
“아무 산이나...”
그렇게 해서 백면은 치악산으로 갔고, 그 곳에서 10년 넘게 얼굴을 만들었다. 그는 수많은 얼굴로 변신이 가능해졌는데, 백면이라는 이름은 그때부터 생긴 것이다.
얼굴이 많으니 여러 사람을 만나기가 수월했다. 그 과정에서 백면은 새로운 것들을 배우게 되었는데, 다양한 사람들을 사로잡기에는 사주팔자만한 것이 없었다.
이 스승 저 스승 번갈아가면서 사주팔자, 음양오행, 주역, 풍수지리 등 여러 분야를 섭렵했다. 죽은 민도길도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백면은 민도길과 가깝게 자주 만나는 사이였다. 명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민도길의 비명횡사를 알지 못했다는 게 몹시 부끄럽고 죄송했다. 아마 민도길 혼자였으면 그렇게 무참히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도망은 할 정도의 실력자였으니까. 민도길은 백면을 보호하려 했고, 어느 정도 그게 죽음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다음부터라고 해야 한다. 개인적 슬픔이나 죄책감이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나 민도길의 죽음은 새로운 전쟁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민도길을 살해한 것은 스스로 지구의 주인이라고 믿는 태양인의 행동 요원이었고, 사자의 머리를 자르고 해골을 전시하는 것은 그들의 태양신에게 드리는 일종의 제사행위였다.
그러면 왜 민도길인가? 민도길은 이른바 ‘도깨비 인간(도인)’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태양인은 지구 운영 계획의 변경으로 자신들이 숙주로 삼던 인류에게서 생체로봇으로 옮겨가기로 했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빛존재인 자신들의 모든 빛을 회수하는 ‘원령회수’ 작전에 돌입했는데, 민도길 등 도깨비 인간은 그 원령회수의 대상이 된다. 도인들은, 태양인처럼 빛 자체는 아니지만, 약간의 빛을 스스로 발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오늘 한 사람이 무참히 죽었고, 아직은 슬퍼할 시간이 있다. 백면은 민도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무엇이든 하겠다고 결심했다. (제 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