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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Aug 17. 2022

제3화; 아모르 파티

본격 탐사 판타지 <지구인들> 제 1부 ; 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

         

제3화; 아모르 파티     


잠에서 깨어났으나 눈을 뜨지 않았다. 

눈을 뜨면, 마치 최강의 미세먼지처럼 불쾌함이 밀려올 것이다. 눈을 감고 있어도 방안 가득히 고여 있는 불쾌함의 냄새는 느낄 수 있다.     

‘끙... 어젯밤 죽었어야 하는데.’     

생각에 묻어 들어오는 불쾌함을 피해 몸을 반대편으로 돌리자 물컹, 부드러운 살이 만져진다.     


‘씨...ㅂ...’     


눈을 떠서 보지 않아도 뻔한 장면이다. 

나는 어젯밤 질주하듯 술을 마셔댔을 것이고,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을 것이고, 지금 내가 경찰서 유치장에 있지 않다는 것은 어느 여자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뜻이다.      

여기는 내 집 아니면 그 여자의 집일 것이고, 지금 내 옆의 그 여자는 지나치게 남참견을 좋아하는 푼수거나 사소한 싸움도 그냥 넘기지 못하는 타고난 싸움꾼일 것이다. 

    

‘주옥같다...!’     


눈을 뜨면 안 된다. 눈앞에 둥실, 낯선 여자의 허여둥둥한 얼굴이 보이면 아마 나는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밤이 지나고 새롭게 하루가 시작된 지금, 또다시 악화된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낮이 되면, 술이 깨면 얌전해지는 미친 멧돼지다.   

  

“벌써 깼어요?”     


내가 등지고 돌아눕자 여자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를 듣자 겨우 가둬두었던 불쾌감이 확! 변기 물 내리듯 쏟아 내렸다.    

 

“그냥 가라. 말 섞기 싫으니까..”

“훗...!”     


약간의 콧방귀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짧지만 경쾌한, 물 내려간 변기에 새 물이 채워지는 듯한 상쾌한 소리였다. 

나는 쾌변을 누고 일어날 때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날이 밝았잖니. 우린 그냥 어둠의 자식들인 걸로 하자고.”

“좋은 생각이야. 나도 말 섞기 싫으니까 그냥 가줘.”     


이건 뭔 소리지? 나는 슬쩍 눈을 떴다. 다행히 호텔방은 아니었다.  

   

“여긴 내 집이니까. 핸드폰하고 지갑 잘 챙기고.”     


나는 호텔방을 싫어한다. 호텔방은 내게 버려진 느낌을 준다. 차라리 감옥이라면 가둔 상대라도 있지만 이건 세상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 팽개쳐진 느낌이다.    

  

“그만 좀 싸워요. 인제 나이도 먹었잖아. 얌전히 살아.”     


심플한 원룸. 좋다. 나는 이런 단순한 취향을 좋아한다. 

    

“제발. 자긴 어린 애가 아니라고.”     


문을 닫고 좁은 복도를 빠져나온다. 닫힌 문의 홋수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여기를 벗어나는 순간 나는 저 여자를 잊을 것이고 이 장소를 기억에서 지워버릴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많은 여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다시 말해 많은 여자들이 나를 좋아하고 도와주었다. 많은 경우 나는 그 여자들을 괴롭혔지만 여자들은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불쌍해하고 애처로워했다.      

제발 얌전히 살라고? 제발... 제발... 젠장!  

   

밖으로 나오니 햇빛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햇빛이 눈부셔서 총을 쏘아 사람을 죽였다는데, 정말 내가 그렇다. 

총이 있다면 시원하게 갈겨버리고 싶다. 나는 세상을 증오한다.    

 

그렇게 세상이 싫은데 왜 사느냐고? 나도 진지하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고민해본 적이 있다. 사실 그건 하등 고민할 이유가 없는 문제다. 

우리는 그냥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우리 뜻으로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에 살아가야 할 이유도 없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저당 잡힌, 빚더미일 뿐이다.     


물론 빚을 잘 갚으면서 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므로 그들과 나를 비교하지는 말아 달라. 

나는 벌레처럼 살고 싶지 않다. 벌레처럼 순종하며 평생을 사느니 하루를 살더라도 사자처럼 살고 싶다. 내팽개쳐진 이 세상을 향해 한번 크게 포효라도 해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면 나는 사자가 된다. 질주하는 미친 멧돼지가 된다.     

구체적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와 죽어야 하는 이유를 적어보기로 했는데, 그 과정에서 짜증나서 정말로 죽을 뻔했다. 

죽을 이유 천 개를 넘게 적는 동안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죽을 이유 1300개를 쓰고 나서야 겨우 한 개의 이유를 쓸 수 있었다.      

그건 ‘아버지를 괴롭히기 위해서’였다. 나를 태어나게 한 아버지를 나는 괴롭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살아야 했다. 

적어도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는 나는 살아야 한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 같은 한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전화가 오면 벨소리로 노래 <아모르 파티>가 시작되고, 나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누구에게 전화가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 노래가 좋다. 하루에 한 번도 전화가 오지 않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래서 더욱 나는 이 순간을 한껏 즐겨야 한다.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이라고? 천만에! ‘모르’는 죽음이라는 말이다. M,O,R,T. Ah Mort Party. 아, 죽음의 파티. 파티를 즐겨라. 네 운명을 사랑하라...  

   

“여보세요? 서명근 사장님이시죠?”

“나 사장 아닙니다.”     


전화를 끊자 곧바로 또 ‘아모르 파티’가 들려온다. 전화를 받는 것은 내가 노래를 들을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지만, 통화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나를 유혹할 수 있어야 한다.   

  

“선생님. 저는 변호사 최민 이라고 합니다.”

“나 선생님 아닙니다.”

“잠깐만요. 서우석 회장님 아시죠? 저는 서 회장님 대리인입니다.”     


다시 전화를 끊으려는데 익숙한 이름이 들려왔다. 

서우석 회장... 서우석... 나의 아버지. 내 운명을 사랑하라고?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인가?     


“회장님이 쓰려지셨어요. 이제부턴 제가 회장님 대신 일을 봐드리게 됩니다. 뵙고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쓰러져요? 아버지가?”

“의식이 없으세요. 아마 깨어나시지 않을 겁니다. 저한테 아드님을 부탁하고 가셨으니까요.”   

  

아! 죽음의 파티! 살다보면 가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믿기 어려운 일 중의 하나다.      

나는 한 번도 나보다 먼저 아버지가 죽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못하는 것이 없고, 안 되는 것이 없고, 평생 언성 한 번 높여본 적이 없고, 아파본 적도 없다. 강철 같은 인간, 아니 신처럼 완전한 인간이라고 할 만하다.     


나는 아버지 서우석이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어딘가에 취직을 한다거나 출근을 한 적도 없다. 

그러나 그는 항상 부자였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냈다. 내가 어떤 사고를 쳐도 그는 흔적도 없이 뒤처리를 했다. 그것도 아주 신속하고 깔끔하게.     


한때는 그런 아버지를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말썽을 부려보기도 했으나 아버지는 한 마디 싫은 소리도 해본 적이 없다. 연락을 받으면 그냥 와서 조용히 해결을 하고 갔다. 

아버지는 내가 필요할 때 부르면 언제든 나타나는 알라딘의 요정 ‘지니’였다. 그는 아직 가면 안 된다. 나는 아직 내 소원을 다 말하지 못했다.    

 

“사무실로 가시죠. 사장님 방도 좀 보시고.”   

  

택시에서 내리자 오피스텔 앞에 서있던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억지로, 마음에도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과 달라서 조금은 안심이 됐다.     


“나 사장 아니라니까요. 사무실 말고 딴 데로 갑시다.”

“아... 그러세요. 그럼 아예 방으로 모실게요.”     


남자는 나의 대답도 듣지 않고 앞장서 걸었다. 대체로 이런 상황이면 나는 따라가지 않는다. 나처럼 천성이 삐딱한 사람은 절대로 상대가 하자는 대로 순순히 따라주는 법이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 나는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경우, 나는 그에게 불량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삐딱함은 상대의 틈새나 불순함에 의해 자동적으로 발동한다.     


그 남자, 변호사 최민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오피스텔의 꼭대기 층에 있는 펜트하우스였다. 널찍하고 전망 좋은 실내에 최소한의 가전가구만 놓여있는, 제법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보기보다는 안목이 있네.’     


내 생각을 엿들었는지 최민이 변명하듯 말을 꺼냈다.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그냥 침대 하나 정도만 놓으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있을 건 있어야지요. 집인데. 어떻게, 마음에 드세요?”

“...?”

“가끔 잠만 주무실 거라고. 그래도 있을 건 있어야지요. 최소한은.”     


최민이 다시 말을 반복했고, 그제야 나는 그의 말을 이해했다. 

그는 지금 이 집이 내 집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난 이런 큰 집 필요 없는데.”     


나는 재빨리 원래의 나로 돌아갔다. 시큰둥하고 시니컬하면서 약간 시시덕거리는 느낌의 말투. 죽음의 파티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시동 거는 소리.    

 

“당분간 305호도 그냥 쓰세요. 왔다 갔다 하시면 되죠.”

“닥치시고... 쓰러졌단 얘기는 뭐예요?”     


‘아버지가 쓰러졌다’라고 말을 하려던 나는 깜짝 놀랐다. 마음속에서 강력하게 거부하는 에너지가 말을 가로막았다.      

결국 나는 ‘아버지’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회장님이 떠나시면서 사장님... 아드님 일을 저한테 부탁하셨어요. 

앞으로 사장님에 관한 모든 일은 제가 처리하게 됩니다.”

“떠났다는 단어는 쓰지 맙시다. 그럼 벌써 죽은 것 같잖아. 

그 사람, 죽으면 안돼요. 내 허락 없이는.”

“...”     


로봇처럼 반응하던 최민이 잠시 말을 못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내 앞에서 그렇게 당황해야 정상적인 사람이지. 

나는 사람들이 편하고 좋아하는 꼴은 절대 못 본다고. 

당황하고 쩔쩔매고 시달리고 괴로워해야지.’

“그러지요. 생물학적으로는 여전히 살아계시니까요. 

하지만 저한테 분명히 말씀 하셨어요. 돌아오지 않겠다고.”

“그 말은... 일부러 쓰러졌다는 거요?”

“예정된, 계획의 일부란 말이지요.”

“계획적으로 뇌졸중을 일으켰다고? 아버지가? 그게 가능해요? 왜?”     


‘인간은 죽음 앞에서 당황하는 동물’이라고 누군가 말했다더니, 나는 아버지의 유고 앞에서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 

아버지는 죽으면 안 된다. 아버지가 없다면, 나는 죽어야 한다.   

   

“이거... 사장님 명함입니다. 형식적인 거긴 하지만 갖고 다니세요. 

아까 말했다시피,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저한테 전화하시구요. 이제 회장님은 안 계십니다.”


‘뭐야? 이놈이 왜 나를 혼내고 있지?’     

사무적인 말투로 얘기하지만 최민은 분명히 나를 혼내고 있었다. 나는 대꾸를 멈추고 그가 꺼내놓은 명함을 집어 들었다. 

맹수가 공격 직전에 몸을 움츠리듯, 나는 공격의 빌미를 찾기 위해 명함을 살펴보았다.     


“작년에 회장님께서 이 오피스텔을 사셨어요. 

사장님 앞으로 증여됐고, 사장님은 빌딩 관리회사 대표가 되신 겁니다.”


‘이건 또 무슨 맥주병 따는 소리야?’     

나는 이 때다 싶어 들고 있던 명함 박스를 공중에 던져버렸다. 명함들이 쏟아져 내리며 낙엽처럼 흩어졌다.     

“이딴 거 나 안한다고! 아버지도 알 텐데? 왜 본인은 평생 안한 짓을 나한테 시키지? 

아직도 날 잘 모르나?”

“지켜야 되니까요. 회장님은 사장님을 사랑하십니다.”

“뭘 지켜? 나 그런 거 필요 없어요.”

“저도 굳이 사장 타이틀 필요 없지 않느냐고 말씀 드렸었어요. 회장님이 고집을 피우셨어요.”

“왜? 사장 시켜주면 내가 감격해서 눈물이라도 흘릴 줄 알았나?”

“...”     


아버지가 머릿속에 떠오르기만 해도 나는 짓궂은 사춘기 아이가 된다. 삐딱해 지고, 마구마구 거친 말 못 된 행동을 하고 싶어진다. 잠시 ‘참 철없는 망나니로군!’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최민이 말을 이었다.     


“미안하신 거지요. 곁에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서, 그나마 회사 대표 명함이라도 있으면 조금 나을까 싶어서... 

그냥 형식적인 거예요. 회사 일은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예? 뭐를...?”

“그 사람... 어떻게 됐느냐고. 어디 있죠?”     


왜 갑자기 아버지가 궁금해졌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아버지는 항상 내가 부르면 오는 존재였다. 언제 어디라도 나를 구하러 달려오는 존재였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아버지에게 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아버지에게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할 놈의 인간. 왜 갑자기 쓰러지고 난리야?     


“오성병원에 계세요. 응급실에서 특실로 옮기셨다는데, 저도 뵙지는 못했어요.”

“뭐요? 아버지가 쓰러졌다는데 가보지도 않았단 말야?”

“가기는 갔죠. 어차피 저는 알고 있던 사안이라 조금 늦게 갔는데, 못 뵈었어요. 

사모님께서 외부인 절대 금지라고 하셨답니다.”     


아, 어머니...!

잊고 있었던 이름, 아니 애써서 잊으려고 하는 존재 어머니...     

그래, 나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가 사라지니 잊고 있던 어머니가 내 앞에 나타났다. (제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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