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장어의 꿈 ⑤
- <태양을 피하는 방법>(비)

by 천하태평


28. 명륜동 침실 /새벽


태인이 대통령이 되었음을 알려주는 표시들.

태인과 정희가 침실에서 잠자고 있고, 태인이 악몽에 시달리는 듯 몸을 뒤척인다.

진땀을 흘리는 태인, 깜짝 놀라 잠을 깬다.



29. 명륜동 거실 /아침


취임식 복장을 차려입고 거울을 보는 태인.

정희가 태인의 넥타이를 만져주며 생긋 웃는다.


정희; 떨립니까?

태인; 아이다! 나 배짱 좋다. 아무렇지도 않다.

정희; 아닌 것 같은데? 떨잖아.

태인; 엄한 사람 잡지 마라. 내 멋지게 잘할 거니 걱정 마라.

정희; 안다. 당신 잘할 거 안다. 하나만 조심해라. 당신 걸을 때 꾸부정하니 하인처럼 걷는다.

인자 대통령인데 그렇게 걸으면 안 된다. 행사장 들어갈 때 고개 숙이지 말고 똑바로 걸어야 한데이. 알았제?

태인; 그게 뭐 어떻노? 내는 겸손하고 수평적인 대통령 될 기다. 나 겸손한 남편이잖아...

정희; 대통령은 그래 하면 안 되지. 박력 있게 휘어잡아야지. 개혁해야지.

태인; 알았다. 그래 할게. 박력 있게 할게. 어쨌든 당신한테 미안하다...

정희; 머가?

태인; 내가 대통령 돼가 미안하다. 당신하고 오순도순 못살게 됐다 아이가? 용서해도...

정희; 하이고, 일없다! 끝나고 하믄 되지. 대통령 평생 할라는 갑제?

태인; 돌았나? 나 지금도 죽겠다... 내가 우짜다가 대통령이 돼삐맀노?

정희; 좋다 할 땐 언제고? 풍선 껴안고 자는 기분이라매?

태인; 그건 경선할 때 얘기고. 그땐 좋아 죽었는데, 지금은 떨려 죽겠다...

정희; 떨 거 엄따. 당신 잘 할기다. 하던 대로만 해라. 그럼 된다.

태인; 그래. 내 당신땜에 산다. 알제? 당신은 내 우주다... 우리, 뽀뽀하자!

정희; ...그기 문제가 아이다. 자... 한번 걸어봐요. 내 한번 보께. 식장에 들어간다 치고...


정희가 재촉하자 태인이 그럴듯하게 폼을 잡고 걷는다.

어깨를 꾸부정하게 흔들며 품위 없이 걷는 태인.


정희; 그래 흔들거리지 말고! 쫌 무게 있게 걸어봐요!

태인; 이상하나? 난 자연스러운데?

정희; 그럼 안 돼. 일부러 무게를 잡아야 된다니까! 자... 딱 서 봐요.


정희가 태인 앞에 서서 태인의 어깨에 두 손을 얹는다.

똑바로 태인의 눈을 바라보는 정희.


정희; 맘에다 콕 써 놔야 돼. 잊어버리지 않게. 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태인; 안다. 그래가 내 악몽까지 꾼다...

정희; 한 여자의 남편이기 전에, 두 아이의 아빠이기 전에, 이제 당신은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그걸 알아야 한다...

태인; 안다. 이제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고, 경수 경미 아빠고, 무엇보다 당신의 유일무이하고 영원한 남편이다.

정희; ...


물끄러미 쳐다보던 정희가 정성스럽게 태인에게 입을 맞춘다. 힘이 나서 미소 짓는 태인.



30. 현충원 /아침


추모 묵념을 하는 태인과 정희.



31. 대통령 취임식장 /낮


대통령 취임선서를 하는 태인.


태인;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책임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어 21발의 축하 예포 발사와 함께 국방부 군악대 의장대 기수단의 시연이 보여진다.


태인의 취임사; ...이제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를 끝내겠습니다.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가 득세하는 굴절된 풍토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합니다. 이제 시작되는 새로운 시대에는 차별이 없을 것입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32. 청와대 침실 /밤


잠을 자다가 악몽에 시달리며 몸을 뒤척이는 태인.

앞의 28 씬과 같은 상황이지만, 이번에는 정희가 일어나 쳐다보고 있다.



33. 태인의 꿈


- 1950년대 후반,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활기차게 학교 안으로 들어온다.

선생님 한두 명이- 저승사자처럼 검은 정장 차림이다- 아이들을 다정스럽게 맞이하고, 때론 안아주기도 한다.

운동장 건너편 뒷문 쪽에서 들어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어린 태인. 그의 뒤로 후줄근한 차림의 먼 동네 아이들이 등교하고 있다. 읍내 아이들과 먼 동네 아이들이 확연히 대비된다. 친구들이 태인에게 들어가자고 잡아끈다. 들어가며 다시 돌아보는 태인.


- 급하게 달려 들어오는 청년. 태인을 부르며 마당으로 들어선다. 방문이 열리고 낮잠을 자던 태인이 얼굴을 내민다. 신문을 흔들며 태인이 고시에 합격했음을 알리는 청년. 태인이 신문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어린 경수를 업은 정희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껴 운다. 마당 한가운데서 저승사자가 쳐다보고 있다. 희열에 들뜬 태인의 얼굴.


- 청문회장에서 대기업 회장을 상대로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태인.

전직 대통령 청문회장에서 항의하며 명패를 집어던지는 태인. 저승사자가 태인이 던진 명패를 받아 들고 크게 웃는다.


- 대통령 취임식장. 태인이 정희와 나란히 단상에 오른다.

당당하게 걸으려고 노력하지만 자꾸 어깨가 흔들리는 태인. 두려운 마음으로 둘러보니 사방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 놀라 멈추는 태인. 무의식적으로 정희 앞에 나서서 보호한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신사(저승사자)가 다가오더니 두루마리를 펴고 크게 외친다.


저승사자; 대통령 권태인에게 묻습니다. 그대는 세상을 바꾸었습니까?


망설이다가 주저하며 대답하는 태인.


태인; 아닙니다...

저승사자; 그러면, 영화를 누렸습니까?


반사적으로 정희를 쳐다보는 태인. 정희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태인; 아뇨. 못 누렸습니다.

저승사자;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그대는 세상과 화해했습니까?

태인; 화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싶었습니다. 화해하려고 했는데...


저승사자가 태인의 말을 막으며 크게 선언한다.


저승사자; 대통령으로서 세상을 바꾸지 못하고, 가장으로서 집안의 영화를 누리지 못하고, 개인으로서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였으므로...


겁에 질린 태인이 정희의 손을 꼭 잡는다.

눈물을 흘리며 멀어지는 정희.


저승사자; 인간 권태인을 파면한다!


넓은 대통령 취임식장에 홀로 덩그러니 남겨져있는 태인.



34. 국회 본회의장 /낮


국회의장이 본회의 개회를 선언한다.


의장; 제2차 본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단상을 중심으로 회의장 안이 소란스럽다.


의장; 의원 여러분 만약에 계속해서 난동을 피우시면 퇴장을 명하겠습니다... 다시 경고합니다.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지 않도록 하기 바랍니다.제1안, 대통령 권태인 탄핵소추 안을 상정합니다. 제안 설명은 유인물로 대체합니다. 무기명 투표를 하겠습니다.


고함을 쳐대는 여당 의원들.

국회 사무처 직원이 의원들 이름을 호명한다.

소란이 계속되자 의장이 다시 마이크를 든다.


의장; 의장으로서 할 얘기는 아닙니다만... 왜 이런 일을 자초합니까? 자업자득입니다.

의원들; 쿠데타 투표 중지하라! 무효다! 쿠데타 투표 주모자를 반란죄로 처단하자!


회의장 맨 뒤 일반인 참관석에서 물끄러미 이 광경을 바라보는 태인.

뭔지 모를 미소가 입가에 인다.


의장; 투표를 종료하겠습니다.명패함을 먼저 열겠습니다.명패 수는 195명입니다.

다음은 투표함을 열겠습니다.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총투표수 195표 중 가 193표 부 2표로 대통령 권태인의 탄핵소추 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난장판이 되는 회의장 안. 이것저것 의장석으로 날아온다.

사무처 직원들이 의장을 막아서고 진행을 계속하는 의장.


의장; 대한민국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전진해야 합니다. 산회를 선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쓸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태인.

‘비’의 노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시작된다.


노래(가사) 울고 있는 나의 모습 바보 같은 나의 모습

환하게 비추는 태양이 싫어 태양이 싫어

누군가 날 알아보며 왜 우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해줄 수가 없는 게 너무 싫었어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 아무리 달려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고

너를 너무 잊고 싶었어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애를 써도 넌 내 안에 있어


본회의장 안의 아수라장. 감옥에 갇힌 것처럼 참관인석 유리벽 너머로 그 광경을 보고 있는 태인.

태인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앉아서 문재인(앞에서 동료 변호사로 나온 기철과 동일인물이다)이 노래를 한다.


노래(가사) 아직도 너의 그 미소 나를 만졌던 그 두 손

그리워하는 게 너무 싫었어 너무 싫었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웃고 얘길 나누면서

잊어보려 했지만 또 다시 눈물이 흘렀어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 아무리 달려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고

너를 너무 잊고 싶었어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애를 써도 넌 내 안에 있어



35. 광화문 광장 /낮


작열하는 태양 아래 재인이 몸부림치듯 춤을 추며 노래한다.


노래(가사) 모두 다 내가 잊은 줄 알아 하지만 난 미칠 것 같아~

너무 잊고 싶은데 지우고 싶은데 그게 안 돼~~~~


가끔 사람들이 지나가지만 아무도 노래하는 가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땀을 흘리며 노래를 계속하는 재인.


노래(가사)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피하고 싶었어~

(아무리 달려봐도)~~ (태양은 계속 내 위에 있고)~~

(너를 너무 잊고 싶었어)~잊고 싶었어~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애를 써도 넌 내 안에 있어)~내 안에 있어~



36. 태인의 사저 근처 공터 /아침


태인을 비롯한 일행이 노래 부르는 근처를 지나간다.

이제는 노란 풍선이 제법 물줄기처럼 출렁거린다. 그와 상관없이 노래를 계속하는 재인.


노래(가사) (태양을 피하고 싶었어)

(아무리 달려봐도 태양은 계속)~계속 계속 있고~난~

(내 위에 있고)

(너를 너무 잊고 싶었어 아무리 애를 써도) 애를 써도~

(아무리 애를)~써도 넌 내 안에 있어~


태인이 걸음을 멈추고 노래하는 재인을 쳐다본다.

태인의 바로 앞에 다가와 노래의 마지막 랩을 뱉어내는 재인.


노래(가사) (Rap) 너무 깊이 박혀 뺄 수 없는 가시같이

너무 깊이 다쳐 나을 수 없는 상처 같이

너라는 사람 도무지 지워지질 않지

헤어져도 같이 살아가는 것 같지

눈물로 너를 다 흘려서 지워

버릴 수만 있다면야 끝없이 울어

내 눈물 강을 이뤄 흐를 정도로 많이 울어서라도

너를 잊고 제대로 살고 싶어~제대로 살고 싶어~

제대로 살고 싶어~~


노래를 마치고 거친 숨을 내쉬는 재인.

태인이 땀에 젖은 재인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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