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를 짓는 정희. 책을 읽다가 멀리 태인과 눈이 마주치자 한껏 웃어 보인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태인. 그 앞에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언 드림> 등의 책이 눈에 뜨인다. 다가와 일부러 애교를 보이는 정희.
정희;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간식...
잠시 정희를 보다가 과장하여 크게 부르는 태인.
태인; 희야! 우리 라면 먹자!
정희; 그래 부르지 마라니까! 누가 들으면 흉본다. 대통령씩이나 돼갖고 애들맨치로...
태인; 우리뿐이잖아. 그리고 지금은 대통령도 아니다. 우리 라면 먹자. 좀 끓여도.
정희; ...파송송?
태인; 계란탁!
보글보글 끓는 라면. 그 위에 파송송 계란탁!
태인이 정희의 뒤에서 살포시 껴안는다.(DIS)
심각한 표정의 태인. 정희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집중하고 있다.
두 사람의 알까기. 마지막 한 알씩 남아있는 상황...
태인의 회심의 일타가 빗나가고 정희가 승리한다. 낙담하는 태인과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정희. (DIS)
편한 자세로 누워 삼행시 짓기 놀이를 하는 태인과 정희. (DIS)
(또 다른 놀이. ‘쌀 보리’나 ‘참참참’ 같은 간단한 동작놀이로...)
태인과 저승사자가 각각 뿅망치를 들고 참참참 놀이를 한다. 긴장한 표정으로 집중하고 있는 손석희 일행.
태인과 저승사자의 알까기 게임이 팽팽하게 진행되고 있다. 태인의 일타가 성공하고, 저승사자를 제외한 모두가 환호성을 지른다.
각자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는 사람들. 삼행시가 빠른 속도로 자막 처리되어 지나간다.
탄핵을 반대하는 여러 자막들.
탄핵반대 촛불시위의 풍경이 짧게 스케치되어 보여진다.
청와대 뒷산에서 바라본 광화문 일대 전경. 구체적인 촛불시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뒷산 쉼터에 나란히 앉아 광화문 일대를 내려다보고 있는 태인과 정희.
정희; 오늘도 많이 왔나배... 우리편... 한사람 한사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태인; 그래! 고맙고... 고마운데... 내는 그래서 더 무섭다.
정희; 민심이 무섭긴 무섭지. 그래도 민심이 우리편인게 얼마나 다행이야? 안그래요?
태인; 저 사람들이 왜 날 살려줄까...? 오늘 날 구해주고, 도대체 내일 어떤 요구를 할까? 나는 저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해낼 수 있을까? ... 그런 생각하면 무서워.
정희; 무서워?
태인; 응. 무서워. 겁나.
정희; 당신... 인제 늙었네! 오기 짱짱하던 사람이 무섭다 그러고.
태인; 나 망하고 다치는건 괜찮은데... 뭐랄까, 내가 운전하던 차가 편안한 승용차인줄 알았는데 손님 꽉 찬 폭주기관차인걸 알았을 때? 그런 느낌?
정희; 오마나! 우리 남편... 불쌍해서 어떡해? 내가 어떡하면 돼? 어떻게 해주까?
정희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린다.
정희; 뭐 먹고싶은 거 없어요? 아님... 어디 바람 좀 쐬러 갈까? 몰래. 우리 둘이만. ...안되나?
태인; 안되지.
정희; 안돼? 그럼 뭐하지? 가만 있어봐...
어쩔 줄 몰라 하는 정희,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마구 쏟아진다.
정희; 당신... 그러면 안돼. 무서워하면 안돼... 뭐가 무서워? 내가 있잖아! 내가 지켜줄게. 당신 옆에 내가 있잖아? 근데 뭐가 무서워?
태인; (허전하게 웃으며)이 사람... 갑자기 왜 울고 그래? 그냥 해본 소리야. 나 괜찮아.
정희; 당신... 말해봐라. 나 믿나?
태인; 새삼스럽게... 믿고 말고도 엄따. 당신은 내 전부다.
정희; 그래 건성으로 말하지 말고. 자... 나 봐봐라.
정희가 두 손으로 태인의 머리를 잡고 마주 본다.
정희; 인자, 진짜로 말해봐라. 당신은... 당신은 내를 우째 생각합니까?
태인; 천번은 말했구마는... 당신은 내 전부다. 내 우주고, 하늘이고, 바람이고, 별이고, 시다! 내 운명이다!
정희; 잘 듣고 명심합니다? 당신 운명이 하는 명령이니, 잘 들으세요. 세상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지구가 터져서 박살이 나도 나는 당신 옆에 있을 거야. 당신 늙어서 꼬부랑 할배가 될 때까지 당신 지킬 거야. 알았지?
태인; 고맙다. 그리 말해주니 맘이 놓이네...
정희; 죽을 때까지... 당신 죽는 것까지 내 눈뜨고 다 볼거야. 내가 가라고 할 때까지 가면 안 된다고.
태인; 알았습니다!
정희; 무서워하지 마요. 약해지지 말라고. 당신 약한 모습 보면, 내가 무섭다고...
태인; 그래! 힘내자. 국민들이 저렇게 응원하는데, 잘 해보자!
태인이 시청 쪽을 쳐다본다. 그 시선을 따라 이동하는 카메라.
어두운 하늘에 커다란 촛불 한 개가 천천히 떠오른다.
TV 프로그램 화면.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권태인 정부의 우왕좌왕 정책에 대해 파헤치고 있다.
대체로 조롱하는 분위기. ‘좌측 깜빡이 키고 우회전’ 등 정책을 비판하는 매스컴.
이라크 파병, 4대 개혁입법 파행, 행정수도 위헌 판결, 대연정 발언 논란, 남북 정상회담, 한미 FTA 타결 등 임기 중 사건들이 스케치된다. 계속 떨어지는 대통령 지지도...
모래뿐인 사막을 홀로 헤매는 태인.
언덕을 오르는 태인. 조금 뒤에 저승사자가 따라오고, 그 밖에 그를 따라오는 무리가 제법 많다.
걸음을 멈추고 약간 가쁜 숨을 내쉬는 태인, 저승사자에게 한마디 한다.
태인; 우리... 그만하지요? 오늘 말고... 다음에... 예, 그만합시다!
저승사자; 좀 쉬셔도 됩니다만... (냉정하게)돌아갈순 없습니다. 규칙이 그러니까요.
태인; 그렇지요? 내 역사도... 실패한 역사도 역사는 역사니까, 물릴수 없는게 맞지요. 근데 저 사람들...
저승사자; 역사. 저 분들이 바로 선생님의 역사입니다. 실패하지 않으셨어요!
태인이 사람들에게 소리 지른다.
태인;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고맙고요... 이젠 돌아들 가세요. (저승사자를 보며)우리끼리 가도 됩니다. 아니, 그게 아니지요. 여러분은 못 가요! 우리만 가야되는 길이예요.
사람들 중에 손석희가 뭐라고 말을 한다. 그 모습 위에 자막.
자막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태인; 하지만 이제 여러분은 나를 포기해야 합니다. 버리셔야 합니다.
크게 뭐라고 소리 지르는 이호철. 그 모습 위에 자막.
자막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을,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의 꿈을 어떻게 포기합니까?
태인; 그렇기 때문에! 그래서 여러분은 더욱 저를 버려야 합니다. (더욱 크게)여러분! 저는 바보입니다.
바보처럼 세상과 맞서고, 바보처럼 싸우다가, 바보처럼 졌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뭐라고 소리 지른다. 그 모습 위에 자막.
자막 그래서 우리는 더욱 당신을 사랑합니다. 바보인 당신을 사랑합니다.
태인; 압니다. 그 마음 저도 압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잘해볼라고 이래저래 했습니다. 그랬는데, 결국 저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졌습니다. 그러니 이제 저를 버리십시오! 여러분은 저를 버리고, 저를 딛고, 여러분의 길을 가십시오. 그게 저를 위하고 저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사람들을 뒤로 하고 서둘러서 앞장서는 태인. 저승사자가 그림자처럼 그의 곁을 따라간다.
황급히 태인의 곁으로 다가와 태인의 팔을 잡는 재인. 정중하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뭐라고 말을 한다.
자막 그 수렁에,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구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떠나지는 않겠습니다. 곁에,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약간의 흐느낌과 함께 노란 풍선이 물결친다.(긴 DIS)
자이툰 부대 주둔지. 하늘에 별이 가득 차서 곧 쏟아져 내릴 것 같다.
막사를 나와 홀로 하늘을 쳐다보는 태인. 한참 보다가 중얼거린다.
태인; 시골 하늘같은 게, 옛날생각 나네...
하늘의 별들이 저절로 움직이더니 정희 얼굴이 된다. 미소 짓는 태인.
그때, 그림자처럼 다가온 이라크 테러리스트들이 순식간에 태인을 납치한다.
악몽에 시달리다가 벌떡 몸을 일으키는 태인. 정희가 땀을 닦아주고 살포시 껴안는다.
정희의 품에 안겨 있다가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 태인.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테러리스트들. 결박을 당한 태인이 복면을 한 테러리스트들에 둘러싸여 있다.
태인을 심문하는 ‘알카에다’의 2인자 알 자르카위. 각자 자기의 언어로 말한다.
자르카위가 얘기한 화면에는 자막이 제공된다. 거만한 자세로 태인에게 협박을 하는 자르카위.
자르카위(자막) 이건 협상이 아니다. 당장 군대를 철수시켜라. 아니면 죽는다.
태인이 심드렁한 태도로 자르카위를 보더니 한마디 한다.
태인; 나를 죽이는건 당신들 맘이지만, 이렇게 묶어놓고는 내 대답을 듣지 못할 겁니다.
내 얘길 듣고싶다면 나를 풀어주시오! 그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 아닙니까?
자르카위; ...
잠시 태인을 보던 자르카위가 풀어주라고 고개짓을 한다.
자르카위(자막) 우리에게 예의따윈 없다. 예의는 인간들의 것, 우린 신의 전쟁을 하고 있다.
태인; 우린 전쟁을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재건을 도우러 왔어요!
자르카위(자막)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 당장 너희 군대를 철수시켜라.
태인 그럴 수 없습니다.
자르카위(자막) 뭐라고? 너는 대한민국 대통령 아닌가? 네가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태인;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일은 내가 결정하지만, 큰일은 내가 못해요. 이해하세요. 대한민국은 작은 나라입니다.
자르카위(자막) 저항하라. 힘은 인간의 논리다. 바르지 않다. 신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태인; 물론 싸울땐 싸우기도 하지요. 동네에 못된 형이 있는데, 그렇다고 맨날 싸우고 살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때로는 맘에 안들어도 착한 척도 해야되고, 이번에는 져주는게 좋겠다 싶으면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기도 해야지요. 두 개를 잃어도, 세 개를 얻으면 남는 겁니다.
자르카위(자막) 철수하지 않으면 너는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네 목을 신께 바칠 것이다.
태인; ...
태인이 잠시 굳은 표정이 된다. 얼른 감정을 수습하고는,
태인; 역사를 되돌릴 순 없지요.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자르카위(자막) 왜 살 수 있는 선택을 안하나?
태인; 때로는 죽는 길인줄 알면서도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피하지 않겠습니다.
자르카위(자막) 바보... 너는 바보다!
물끄러미 태인을 바라보던 자르카위가 일어나며 선언한다.
자르카위(자막) 전 이라크 인민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한다. 바보 권태인을 파면한다!
복면을 하고 총을 든 테러리스트들 세 명이 병풍처럼 서 있고, 그 앞에 태인이 포박당한 채 무릎 꿇고 앉아있다.
정면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태인.
태인; 여러분!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하십시오. 비겁하지는 않았으나 힘이 없었습니다. 부디... 부디 힘있는 사람이 되십시오. 강한 나라가 되십시오. 나는 실패했습니다. 욕해도 좋습니다. 돌을 던져도 좋습니다.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마십시오. 역사는 물릴 수 없는 것입니다. 전진하십시오. 사람 사는 세상,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향해 전진하십시오! 나를 밟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불태워졌습니다. 재가 될 것입니다. 나를 태워서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은 살아야 합니다. 사람사는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태인이 울부짖으며 절규한다. 신음처럼 시작되는 노래 방탄소년단의 <전하지 못한 진심>.
노래(가사) 외로움이 가득히
피어있는 이 garden
가시투성이
이 모래성에 난 날 매었어
너의 이름은 뭔지
갈 곳이 있긴 한지
Oh could you tell me
이 정원에 숨어든 널 봤어
And I know
너의 온긴 모두 다 진짜란 걸
푸른 꽃을 꺾는 손
잡고 싶지만
커트되어 자르카위가 가세하여 네명이 태인 뒤에 서 있다. 종이를 들고 읽어 내려가는 자르카위.
자르카위 (자막) 한국정부와 한국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우리는 한국군이 이 땅에서 철수하기를 원한다. 더 이상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의 머리를 보낼 것이다. 한국군은 이라크 국민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주받을 미국을 돕기 위해 왔다.
계속 들려오는 노래.
노래(가사) 내 운명인 걸
Don't smile on me
Light on me
너에게 다가설 수 없으니까
내겐 불러줄 이름이 없어
You know that I can't
Show you ME
Give you ME
초라한 모습 보여줄 순 없어
또 가면을 쓰고 널 만나러 가
But I still want you
자르카위 옆에 서있는 테러리스트가 차고 있던 대검을 꺼낸다. 그 모습을 피해 하늘로 팬업하는 카메라.
노래(가사) 외로움의 정원에 핀
너를 닮은 꽃
주고 싶었지
바보 같은 가면을 벗고서
방탄소년단이 사막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지민, 정국, 진, 뷔가 노래를 부르고 나머지 멤버들은 뒤에서 조용히 춤을 춘다.
노래(가사) But I know
영원히 그럴 수는 없는 걸
숨어야만 하는 걸
추한 나니까
잠을 자다가 번쩍 눈을 뜨는 정희. 옆자리에 태인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간다.
쏟아지는 비. 달려 나온 정희가 주위를 둘러본다.
멀리 산언덕에 태인 일행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소리도 못 지르고 뛰어가는 정희.
노란 비옷을 입고 춤추며 노래하는 BTS.
노래(가사) 난 두려운 걸
초라해
I’m so afraid
결국엔 너도 날 또 떠나버릴까
또 가면을 쓰고 널 만나러 가
할 수 있는 건
정원에
이 세상에
예쁜 너를 닮은 꽃을 피운 다음
니가 아는 나로 숨쉬는 것
But I still want you
I still want you
산 중턱에 서서 뛰어 올라오는 정희를 쳐다보는 태인. 그 주위로 저승사자와 손석희 일행들이 둘러서 있다.
달려온 정희가 울부짖으며 태인의 가슴을 주먹으로 꽝꽝 친다. 들려오는 노랫소리.
노래(가사) 어쩌면 그때
조금만
이만큼만
용길 내서 너의 앞에 섰더라면
지금 모든 건 달라졌을까
난 울고 있어
사라진
무너진
홀로 남겨진 이 모래성에서
부서진 가면을 바라보면서
And I still want you
But I still want you
But I still want you
And I still want you
빗속. 노란 풍선과 비옷의 물결... 하늘도 울고 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