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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Nov 08. 2018

환갑축하! 58년 개띠의 남자에게


어릴 적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60년 넘게 지속된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어요. 30, 기껏해야 40정도가 상상 가능한 제일 먼 나이였지요.     


정말로 서른 넘어서도 새로운 것들이 있던가요? 나를 흥분시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들이 40 넘어도 생기던가요?

하루 24시간, 한달 30일, 일년 365일... 그 수많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고 60년을 사셨나요? 살다보면 30이 가고 40이 오나요? 50살, 60살도 저절로 되던가요?


빨리 가던가요, 아니면 지루해서 어쩔줄 몰랐나요?

행복했나요? 아니면 의무감과 체념 속에서 부패해 갔나요?

60이면 ‘이순(耳順)’이라는데, 그렇게 되던가요? 정말로 무슨 말이든 알아듣고, 무슨 말을 들어도 화가 안나나요?     


당신의 일생을 살펴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라났지요.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시골에 태어나 어릴 적 서울에 올라와 정착했고, 중고등학교 평준화 시대를 지나, 그럭저럭 대학 가고 사회에 나왔지요.

베이비붐 세대이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제발전의 시대를 살았기에 어떻게 보면 기회와 풍요의 세대였다고 말할 수 있어요.     


밖에서 보기엔 무난한 삶이었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괴로워했었나요?

당신은 항상 말하곤 했어요.     


‘달콤한 꿈’이라는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건 문학에서나 사용되는 수사에 불과하다고...     


어릴 적부터 당신은 늘 불쾌하고 우울하고 상처받는 꿈에 시달려왔고, 제어할 수 없는 울분과, 세상에 대한 적대감에 괴로워하며 살았죠.

‘기다려라. 우리들의 시대가 온다.’고 하던 최인호의 말을 의지해 견디더니 어떤가요?

당신의 시대가 왔나요? 30을 넘기고, 무사히 40도 넘겨 현재에 이른 걸 보면, 그 기다림이 성공한 것도 같군요.  

   

쉽지는 않았다고요?

알고 있습니다. 특히 우울증을 겪을 때의 괴로움은 심각했지요.

청소년기의 자살충동이 약간 감정적이고 실체 없는 것이었다면, 40대에 겪은 당신의 우울증은 정말 낭떠러지 앞에 선 긴박함이 있었어요.     


영혼의 무게가 21그램이라는데, 당신은 그것도 무거워, 힘에 겨워 헐떡거렸지요. 숨 한번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 힘들어 했잖아요? 

무얼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말 살아있는 것 자체에 기진맥진했었지요.

그 순간, ‘아, 이젠 도저히 힘겨워 못 견디겠다’는 그 한 순간을 넘기고 이제 당신은 우울의 시대와 이별한 거예요.     


영화는 당신 우울증의 원인이었지요.

고등학교 1학년, 15살 이후 당신 삶의 목적은 영화감독이었어요. 그러나 당신은 영화감독이 되는데 실패했고,

삶의 목적을 상실한 당신은 블랙홀처럼 우울증 속으로 빨려들어 갔어요.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영화는 당신이 세상을 살 수 있게 해준 원동력 아니었던가요?

어린 시절 내내 당신을 괴롭히던 나쁜 생각들이 영화를 통해서 해소되고 정화되고 극복되지 않았던가요?


80년대 중반, 젊은 당신의 시나리오는 분노의 욕설과 죽음으로 도배되어 있었어요. 요즘이야 영화에서 욕이 나오는 게 일상이 되었지만, 그 때만해도 영화에서 욕을 쓰는 것은 금기사항이었잖아요?

모든 금기와 상황을 무시하고, 당신은 시나리오 속에 자신의 내면을 투사시켰어요.

일상생활에서 한 마디도 욕을 못하는 당신과, 입만 열면 예측불가하게 욕을 내뱉던 당신 영화 속의 주인공...

과연 어느 것이 당신의 진면목이었나요? 

    

당신은 서운해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당신의 직업, 당신의 영화에 대해 감사합니다.

영화가 당신에게 세속적인 성공을 주지는 않았지만, 당신을 인간적으로 성숙하게 하고 세상과 화해하는 시간을 만들어줬잖아요?    

 

일이, 직업이 중요한 이유는 그게 돈을 버는 수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투사하고,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당신은 세상을 살아갈 동력을 일찌감치 잃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 않나요?     


또, 가족들에게 감사합니다.

직업이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라면, 가족은 세상으로 나가는 문이라고 할 거예요.

당신의 가족들은 적당하게 그 문을 열고 닫으며 당신이 포기하지 않게 지켜주었어요.

가족이 없었다면 당신은 닫힌 방 안에서 꼼짝도 안했을테고, 그렇게 고립되어 죽어갔을 테지요.     


그래요. 나는 당신이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젠 더 이상 악몽에 시달리지 않잖아요?

정말로, 말 그대로 달콤한 꿈을 꾸면서 세상의 말들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잖아요?

비로소 세상을 믿고 소통하려고 노력하잖아요?

비록 영화감독의 꿈은 포기했지만, ‘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세상에 접속하는 중이잖아요?     


인터넷 세상은 장벽이 없으니까, 아무도 반겨주지 않지만, 또 아무도 가로막지 않는 열린 공간이니까,

행운을 빌게요.

당신 말대로 작은 골목식당이니까, 편하게 당신만의 가게를 만들어가기를 바래요.     


앞으로 10년, 당신은 작가로서, 글쓰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려고 합니다.

판타지 소설을 준비 중이라 들었어요.

“잘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라고 말하지 못하는 걸 용서하세요. 하지만 진심으로 응원할게요.     


당신의 일에 감사하면서 정작 당신 자신에 대해서는 감사를 못했네요!     

불구덩이같은 청춘을 견디고, 출처를 알 수 없는 자기혐오를 딛고,

당신은 마침표 없는 문장처럼 부지런히 살아왔어요.

커다란 사회적 성취는 없었지만, 당신의 60년이 우리 사회의 현재를 만들었어요.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오늘은 당신의 생일. 58년 개띠니까, 바로 환갑날이죠!

솔직한 심정이 궁금해요. 기쁜가요? 아니면 슬픈가요, 후회되나요?

나이 먹는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당신도 그런가요?   

  

전에 당신이 그런 말을 한 기억이 나네요. 마음대로 시간을 선택할 수 있다면, 고등학교 3학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해도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나는 그 말이 좋았어요. 당신이 더 이상 세상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렸어요.

똑같은 결과라 해도, 당신 마음에서 일어나던 그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허무와 부끄러움과 열등감 등은 없을 테니까. 세상을 향해 적개심을 갖고 살지는 않을 테니까. 이제는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내겐 들렸어요.

만나는 눈빛마다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부르는 목소리마다 마음을 다해 응답하겠다는 다짐으로 들렸어요.   

  

그리하여,

당신을 보고 나는 나이 든다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당신이 50 넘어서 나쁜 꿈을 꾸지 않게 되었던 것처럼, 이제 환갑이 되어 겨우 세상과 화해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처럼, 어쩌면 나이듦이란 ‘기회’ 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늘이, 신이 나에게 부여해준 그야말로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

천년에 한 번 만나는 그 절호의 기회를 많은 여러분들도 잘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당신과, 당신 가족과, 당신과 함께 긴 세월을 함께한 58년 개띠 동료들과, 그 밖의 여러 다른 띠 동물 가족 모두에게

적어도 오늘 하루 무조건, 무작정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근심 걱정 나에게 맡겨 놓으시고 맘 편히 즐기는 하루 보내세요!

오늘은 당신의 환갑, 60년만에 찾아온 특별한 생일날이니까요.    

 

                             --- 당신의 태어남부터 함께 해온 당신의 영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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