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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Oct 25. 2018

딸에게 쓰는 편지 ㉙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 이 편지는?


  ***  사실 ‘딸에게 쓰는 편지’ ⓵ ~ ㉘ 까지의 글은 제가 출간한 책 <너는 될 애>(2017년. 희망소리)에 실린 글을 그대로 옮겨 실은 것이고, <민물장어의 꿈>은 2019년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년을 기념하여 영화 제작을 하려고 제가 썼던 오리지널 시나리오입니다. 과거의 흔적이지요.


인터넷 글쓰기로 새로운 땅에 이사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처음에는 적잖이 당황스럽더군요. 느낌이 전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영화’와 ‘TV 드라마’의 차이 같다고나 할까요? 영화는 일단 극장에 들어서면 (특별한 경우 아니면) 끝까지 보게 되지만, TV 드라마는 관심도가 떨어지면 바로 채널이 돌아가지요. 단행본 글과 인터넷 글도 그런 정도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판타지 소설을 쓰려고 인터넷 글세상에 들어왔는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감을 잡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때까지 ‘편지글’과 ‘영화 글’을 틈틈이 올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화 글도 뭔가 인터넷 글 식의 문법이 필요하다 싶은데, 어쨌든 적응하려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편지 속 딸이 이번에 수능 시험을 봅니다. 재수생이지요.

책이 나온 것은 작년이지만, 실제로 편지를 쓴 것은 딸이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었습니다. 편지 머리에 있는 ‘이 편지는’ 부분은 아이가 사춘기를 겪고 난 후에 쓴 후일담이구요.


아빠인 저나 딸인 재수생 아이나 새로운 환경에 새 출발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처지입니다.

인생이라는 달리기를 우리 아이가 잘 해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도 행복한 오늘과 내일이기를 기도하겠습니다. ***



딸아! 아빠 이제 빈털터리 됐어! 그동안, 가지고 있던 것 다 쓰고 재고가 하나도 없어.

가게를 오픈해 놓고 물건 없다고 하품만 하고 있을 순 없고 이를 어쩐다?


사건의 발단은 정확히 두 달 전. 아빠가 책을 내려고 썼던 글이 출판사에서 거절당하면서 시작됐지.

잠시 충격을 받았던 아빠는 중요한 결정을 내렸어.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인터넷 세상에 들어가기로 한 거지. ‘블로거’로서, 인터넷 글쓰기를 하겠다고 결심한 거야.


그리고 그동안 써온 글들을 하나둘 올리기 시작했지. 그렇게 두 달 만에 밑천이 떨어진 거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그게 아니었어. 오히려 시작은 야심만만하였으나 그 끝은 텅 빈 창고뿐이야.


아빠가 판타지 소설 쓰겠다고 한 거 기억하지?

판타지 소설 써서, 한 회 조회수 십만백만 넘기는 화제작을 쓰고 말리라...


그런 각오로 블로그를 오픈하고, 판타지 소설 구상하면서 그동안 써둔 글들을 간간이 올렸어.

조회수 십만백만?

오 노!! 만, 천, 백도 안되더라. 두 달이 된 현재 하루 평균 조회수 3,40 정도...


처음엔 참담하고 창피했어. 십만백만 독자는 불가능한 꿈이라는 걸 실감했지.

그러면서 차츰 드는 생각이 뭐였는지 아니?


조그만 골목 식당이 있다고 치자.

유명한 맛집이 아니니까 당연히 손님이 많지 않지. 단골은 물론 없고, 어쩌다 발길 닿는 대로 들어오는 뜨내기손님이 있을 뿐.


그렇게 들어온 손님에 대해서 식당 주인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

다행이다, 이제 겨우 매상을 올리게 됐구나 좋아할까? 이렇게 뜨내기손님 한둘 받아서 언제 돈 버나 짜증낼까?


“감사합니다! 제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즐겁고 행복하시기를! “


인터넷 책세상의 이름 없는 골목식당 주인인 아빠의 생각이야.

5천만 대한민국 국민 중에 겨우 몇십 명이 아빠의 블로그를 찾아오고,아마 그중에 몇 명만이 아빠의 글을 읽겠지.

옛날의 아빠였다면 ‘이런 비효율적인 짓 그만하자’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아냐. ‘십만백만의 독자가 내 글을 읽고 감동하리라!’가 아니라, ‘한 명의 독자라도, 그 사람이 행복해할 글을 쓰리라!’

이게 지금의 아빠 생각이야.


그런 마음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해.

그동안 너한테 썼던 편지 올리며 두 달을 지내왔으니, 새로운 출발도 너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 싶었어. 말하자면, 정식으로 개업인사를 하는 셈이지.


사랑하는 딸!

네가 요즘 마음고생이 많은 것 같은데, 아빠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해.

이제 재수생활의 막바지, 수능이 며칠 남지 않았잖아?


시험 잘 보라는 말은 안 할게. 힘내라고도 말하지 않을게.

하지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다. 아빠는 시험의 결과가 어떻든지 너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네 편이라는 것!


수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대학입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야.

이제 너는 스무 살, 막 성인이 됐잖아? 그동안 의무교육의 굴레 안에서 규격화된 생활을 해왔다면, 이제부터는 진정한 네 삶이 시작되는 거야. 비로소 네가 주체적으로 네 인생을 설계하고 꾸려나가는 때가 된 거지.


그동안의 생활에 대해서는 “내가 언제 태어나겠다고 했어요?” “내가 언제 국영수 배우겠다고 했어요?” 이런저런 핑계와 변명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아니야.

이제부터는 네가 계획하는 미래가 너의 현재가 되고, 네가 행동하는 현재가 그대로 너의 과거가 될 거야. 변명의 여지가 없는 거지.


사랑하는 딸!

아빠가 블로그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과 네가 대학에서 스무 살을 시작하는 것은 전혀 다르지.

하지만 각자가 자신의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같지 않니? 아빠가 인터넷 책세상의 작은 골목에서 이름 없는 가게를 여는 것처럼, 너도 지구라는 행성에서 너만의 우주, 너만의 질서를 만들어 가야 해.


십만백만 독자가 아니면 어때?

골목식당의 주인이 맛있게 먹는 손님을 보며 기뻐하듯이, 한 명 독자라도 아빠의 글에 즐거워했으면 좋겠어. 아빠는 그 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온 나라가 미친 듯 오르는 아파트 가격을 말하고,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이 행복의 보증수표인 듯 말하는 그런 시대지만, 아빠는 네가 그런 시류에 휩쓸려 너를 잃어버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매춘(賣春)’이라는 말이 있지? 말 그대로 ‘봄을 판다’는 뜻이야.

너는 스무 살이고, 이제 막 네 인생의 봄이 시작된 거지. 너무 극단적으로 말하는 감이 있지만, 아빠는 네가 너의 봄을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때문에, 먹고살기 위해서 네 인생을 팔지 말고 자신감 있게 네가 원하는 삶을 설계하고 꾸려나가기를 바래.


모든 사람의 결말은 하나야. 똑같아. 살아있는 모든 것의 유일한 진리는 ‘죽는다’는 거야.

어차피 죽어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그리고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거 아냐?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딸.

며칠 남지 않은 수능시험,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맘 편하게 치러. 걱정한다고 성적 잘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아빠와 함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자. 너는 인생의 2막을, 아빠는 인생의 3막을 시작하는 축하를~~!!!


                            --- 수능을 앞둔 딸이 안쓰러운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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