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태평(이하 ‘천태’로 줄임); 반갑습니다. 인터뷰 시작하죠.
좋은 얘기부터 할까요, 나쁜 얘기부터 할까요?
미야자키 하야오(이하 ‘미하’로 줄임); 예의가 없는 편이시네!
초대했으면 당연히 좋은 얘기를 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천태; (속으로) 농담 삼아한 얘긴데... 꼬장꼬장한 노인네로군!
미하; 너무 심하게 욕하진 마시고. 다 듣고 있으니까.
천태; 아! 속마음을 들으신단 말인가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죠?
치히로; 판타지잖아요! 판타지 월드에서는 뭐든지 가능해요.
하쿠; 그렇지. 강의 신인 내가 용의 모습이 되고, 사람이 되고, 사랑도 하게 되는 것처럼.
미하; 뭐든지 가능하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경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죠.
좋은 얘기 나쁜 얘기 말을 했지만, 사실 좋고 나쁜 것은 없어요. 아니, 알아듣기 쉽게 좋고 나쁜 것이 함께 한다고 말해두죠. 어떤 것도 순수하게 100% 일 수는 없단 말이에요. 서로 섞여서 영향을 주는 거지.
천태; 유바바와 제니바처럼 말이죠?
미하; 보기보다 똑똑한데? 금방 알아듣는군요!
영화니까 두 캐릭터를 그렇게 나눠서 표현했을 뿐이지. 사실 우리 속에는 그 두 가지 캐릭터가 적당히 혼재해 있어요. 때에 따라서 적당히 발현이 되는 거고.
천태; 말씀 듣고 보니, 인물 구도가 확실히 구분되네요! 유바바 제니바뿐만 아니라, 센과 치히로도 그렇지 않나요?
현실의 치히로는 감상적이고 겁도 많은 10살짜리 꼬마일 뿐입니다. 그런데 판타지 월드에서의 치히로는, 이름이 센으로 바뀌죠, 놀라울 정도로 씩씩하고 과감하게 문제를 돌파해 나갑니다. 정말 동전의 양면처럼 확연히 구분되죠. 마치 다른 사람 같아요.
치히로; 그럴 리가요! 저는 저예요. 치히로건 센이건, 이름만 다를 뿐이지 똑같아요. 다 제 모습이죠.
천태; 그렇지만, 일반적 드라마의 관점에서 보면 튀는 게 사실이거든요. 보통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 혹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성장해 나가는 게 일반적이니까...
미하; (버럭) 우리 영화는 성장 영화가 아니라니까! 내가 지금 60이 넘었는데, ‘너 성장했냐?’라고 물어보면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을 뿐이에요. 자신을 컨트롤하는 게 조금 나아졌을까? 성장은 무슨 개뿔! 나는 성장과 연애가 있으면 좋은 영화라는 흔해빠진 생각을 뒤집고 싶었어요.
천태; 성장과 연애가 나쁘다는 건가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무식한 인간을 혼내줘야 하나, 차분히 가르쳐줘야 하나 고민하며 쳐다본다.
성질을 죽이고 차분하게)
미하; 성장과 연애를 강조하는 것은 현혹시키는 겁니다. 지금은 좋지 않지만 성장과 연애를 통해 좋아질 수 있다고 속이는 거죠. 얼핏 좋은 의도 같지만, 사실은 아주 불량한 프로파간다예요. 인간은 성장을 통해 점차 좋아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우린 이미 좋은 존재예요. 물론 나쁜 면도 함께 가지고 있지요.
치히로; 감독님한테 물어본 적이 있어요. 제가 너무 용감한 것 같다고.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너는 원래 용감했어. 다만 그게 발휘될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고. 나는 젊은이들이 세상에 나갔을 때, ‘원래부터 자신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자신도 모르던 힘을 발휘하기를 바란다’고.
하쿠; 그렇게 보면 나는 치히로와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일 수 있어요. 그래서 보자마자 서로 끌리고, 서로 도와주고, 함께 살아가죠.
천태; 결론적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영화라는 건가요?
미하; 격려라는 말도 적합지 않아요. 우리는 젊다, 어리다는 말을 ‘미숙하다’ ‘약하다’는 말과 동의어로 (묵시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대하기도 하고요.
천태; 이 말씀이 그런 뜻이군요!
이제까지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느낌을 만들어 왔습니다만, 그런 주인공과 달리 ‘이런 거구나!’ 하는 여자애입니다. 세상에 나간다는, 세상에 나가서 자신의 안에 잠자고 있던 힘이 뿜어져 나온다는 영화를 만들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젊은 친구들이 그렇게 살기를 바란다는 바람과, 아마 그 아이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어도 그런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미야자키 하야오. 니혼 TV ‘스튜디오 지브리 이야기’(2011년) 방송 인터뷰에서)
--- <나무 위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파트에서 인용
치히로; 이런 거구나! 딱이네요!
천태; 젊은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그와 반대로,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증오도 상당한데요...
영화가 시작하고 바로, 엄마 아빠를 돼지로 만들어버리잖아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본 영화 중에서, 가장 과격한 도입부의 하나가 아니었나 싶어요.
하쿠; 80년대의 브랜드 돼지 놈들!(미야자키 하야오의 말)
천태; 폐허가 된 놀이공원도 그렇고, 80년대 거품경제를 노골적으로 비판합니다.
하쿠; 현대의 산업화, 나아가서 자본주의 자체를 불신하시는 것 같아요. 자연환경의 파괴도 아주 싫어하시고.
천태; 아무리 그래도 엄마 아빠를 돼지로 만들어 버리는 건 좀...
미하; 난 돼지로 만든 적 없는데?
천태; 아니, 아빠가 음식을 발견하고 먹잖아요? 주인 허락을 안 받았다고 치히로가 걱정을 하자, ‘괜찮아. 카드도 있고 지갑도 있어.’라고 말하면서 허겁지겁 먹죠...
미하; 카드도 있고 지갑도 있는데, 정작 중요한 건 없지.
천태; ...?
치히로; 예의. 감독님은 예의를 중요시해요.
미하; 내가 돼지로 만든 게 아니라, 그들은 원래 돼지야!
**** (모든 돼지들에게 해명함. 여기서 ‘돼지’는 ‘탐욕스럽고 예의가 없음’이라는 말의 상징적 표현이며, 실제 돼지 여러분을 비난할 뜻은 0도 없음.)
천태; 아까 이름 얘기를 하다 말았는데, 판타지 월드에서는 이름이 간소화됩니다. 치히로는 센으로, 하쿠도 원래 이름은...
하쿠;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
천태; 치히로가 코하쿠를 기억해내고 찾은 이름이죠.
미하; 이름은 양날의 검같은 거예요. 쓰기에 편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 이름에 갇혀서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천태; 말하자면 센은 치히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얻게되는 사회적 이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하; 그렇죠! 센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사회적 계약을 맺었죠. 하지만, 그 이름이 곧 나인 것은 아니죠. 내가 감독의 직책을 갖고 있지만 내 사회적 이름의 하나일 뿐이에요. 회사원이다, 팀장이다, 엄마다 아빠다... 그런 이름 때문에 나의 진짜 이름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천태; 영화에서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이라면, 역시 하쿠가 이름을 찾는 순간 아니겠습니까? 치히로를 등에 태우고 날다가, 이름을 찾게 된 순간 몸의 비늘이 떨어져 나가죠! 타다닥!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그 시청각적 효과가 정말 극적 효과와 딱 맞아떨어졌어요. 애내메이션에서는 처음 느끼는 감동이었습니다!
미하; 저런! 애니메이션 영화의 즐거움을 몰랐다니... 불행한 삶을 사셨군요!
하쿠; 아까 치히로가 ‘센이건 치히로건, 저는 저예요.’라고 했잖아요? 그걸 아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이름을 찾는 게 중요한 이유도, 단순히 제 이름이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였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 아니죠.
천태; 그것 때문에 마법이 풀린 건가요?
하쿠; 아니죠. 마법은 이미 풀려 있었죠. 치히로가 벌레를 밟아 죽였잖아요?
천태; 그런데 계속 용의 모습으로 있었던 이유는...?
하쿠; 그러니까요! 하쿠는 자신이 용의 모습으로 마법에 걸려있었는데, 그게 자신의 본모습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가 치히로가 원래 이름을 일깨워주자, ‘나는 나다’라는 자각이 일어나게 됩니다.
천태; 떨어져 나가는 비늘은 말하자면 고정관념, 혹은 정해진 이름이라는 딱지 같은 거군요!
하쿠; 그렇죠!
천태; 그럼 하쿠는 더 이상 용의 모습이 되지 않겠군요?
하쿠; 아뇨. 그건 제 선택이죠. 용이 되건 사람이 되건 제가 주체적으로 선택한다는 게 달라진 점인 거구요.
천태; 그럼 치히로도 센과 치히로 중에서 주체적으로 선택 가능한가요? 마지막에 보면 처음과 똑같이 겁쟁이 소녀로 돌아간 것 같던데.
치히로; 우린 하나죠. 내 안에 너 있다...
미하; 머리끈은 그걸 잊지 않게 해주는 하나의 장치죠. 센과 치히로가, 판타지와 현실이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라는 걸 잊지 말라는 장치.
천태; 센과 치히로가 하나라는 얘기는 계속 해왔지만, 판타지와 현실이 하나라고 하니까 또 낯설어지는데요? 그 얘기를 계속하기 앞서서, 이름 얘기를 마무리하죠. 이름 얘기를 하는데 가오나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쿠; 종횡무진하는...
치히로; 귀여워요.
천태; 무섭지 않나요? 게다가, 아직 한 말씀도 안 하고 있어요.
치히로; (가오나시를 보고 웃으며)얘기해. 괜찮아.
가오나시; 아... 아...
천태; 가오나시는 원래 말을 못 하나요? 우리 중 누구를 잡아먹어야 말을 하려나?
미하;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지요.
천태; 말을 안 해요?
미하; 정확히 말하면 안 한다기보다 ‘없다’고 해야겠지요. 사실, 가오나시는 나도 뭐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캐릭터예요. 창작을 하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옵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데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가오나시 캐릭터가 그런 경우입니다.
천태; 그런 비논리성이 오히려 캐릭터를 풍성하게 했어요!
미하;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지만, 만들 때는 많이 망설이게 됩니다. 전체적인 조화를 흐트러트리는 역할을 하게 되니까요. 판타지 세계가 제맘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도 나름의 질서가 있어요. 그런데, 가오나시는 그런 질서의 밖에 위치하는 캐릭터거든요.
천태; 오물 신도 그런 경우 아닌가요? 오물 신의 등장도 충격적이었는데...
미하; 아니죠! 오물 신은 극의 흐름 안에서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하죠. 가오나시와 반대로, 극적 흐름에 충실한 캐릭터가 오물 신입니다.
하쿠; 나의 나빠진 미래인 셈이죠?
천태; 그러네요! 하쿠는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스스로 마법의 굴레를 쓰게 되었고...
하쿠; 치히로가 여러 사람 살렸죠!
치히로; 여러 사람? 자긴 사람이 아니잖아!
하쿠; 그런가? 그럼 세상을 구원했다고 할까? 더 근사하게.
천태; 자, 잡담은 나중에 따로 하시고...
미하; 뭔가 전체적인 틀을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 싶었어요. 시스템을 벗어나 있으면서도 시스템을 반영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다가 가오나시 캐릭터를 떠올렸지요!
천태; 가오나시... 얼굴이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얼굴은 이름과 같은 의미입니까?
미하;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이름이 핵심적인 주제어인데, 가오나시는 그 이름이 없는 캐릭터인 거죠. 그러니 말도 못 합니다. 이름이 없는 자가 어떻게 말을 하겠습니까? 이름이 없다는 것, 얼굴이 없다는 것은 존재가 없다는 뜻이니까요.
천태; 우와! 존재가 없다는 뜻의 존재를 만들어내셨군요! 아이러니의 끝판왕인걸요!
미하; 온천장은 자본주의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모두 일을 해야 살아갈 수 있죠. 온천장에 쉬러 오는 귀신들도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쉬러 올 자격이 있는 겁니다.
천태; 오물 신이 들어왔을 때 유바바가 하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다들 더럽고 냄새나서 피하는데, ‘손님 모욕하지 말라’고... 나름 자본주의자로서 손님에 대한 존경심이 있습니다.
치히로; 그러면서 오물 묻은 돈은 자기가 안 받고 나더러 받으라고 하죠.
천태; 그런 자본주의 온천장에서 가오나시는 어떤 의미인가요?
미하; 그게... 좀 길게 얘기해도 될까요?
천태; 얼마든지! 어차피 감독님 얘기 듣자고 만든 자리니까요.
미하; 아까 말했듯이, 나도 잘 모릅니다. 예술적 직감으로 만들었으니까요. 하지만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있죠. 온천장이 자본주의의 축소판이니까, 그 자본주의의 그늘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그늘에 어떤 희망의 빛이 스며드는 걸 보여주고 싶다...
천태; 그늘이라... 실제로 가오나시는 그늘 같습니다. 그림자 같기도 하고요.
미하; 노골적으로 말하면 가오나시는 자본주의적 소외의 상징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의 주인공이고 생산의 주역인데, 정작 삶의 풍요로부터 소외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온천장에 오는 손님들은 잠깐의 위안이라도 얻죠. 그 대가로 돈을 지불하기는 하지만 말이에요. 그러나 훨씬 많은 사람들은 그런 위안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럴 자격이 없다고, 다시 말해서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립니다.
천태; 온천장의 종업원들, 민달팽이와 개구리들처럼 말이죠?
미하; 아... 가오나시는 좀 달라요. 민달팽이와 개구리는 자본주의에 매몰된 사람들이죠. 그러나 가오나시는 돈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무언가 바람직한 삶을 원하지만 체제의 틀 안에서 자기 삶을 잃어버린 거지요. 그렇게 가오나시처럼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었습니다.
천태; 그러네요. 종업원들은 가오나시가 주는 황금에 환장을 하는데, 정작 가오나시는 오직 치히로만을 원합니다. 그래서 치히로가 성매매에 종사한다는 해석이 있기도 합니다...
미하; 아닙니다! 가오나시가 원하는 것은 치히로가 아니라 관심, 즉 사랑입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아! 감독이... 이런 얘기를 내 입으로 하면 안 되는데...
천태; 그건 저도 압니다. 가오나시는 자기에게 호의를 베푼 치히로에게 감사하죠.
미하; 가오나시는 돈이 없어서 온천장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치히로가 관심을 가지고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천태; 그 대목이 이상했습니다. 가오나시는 황금을 마음대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온천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거죠? 많은 무리들 틈에 끼어서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요.
미하; 가오나시는 노동을 하지 않거든요!
천태; 노동을 하지 않는다구요? 놀고먹는다는 소린가요?
미하; 자본주의적, 인간소외적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이게 약간 이율배반적인 얘기라...
가오나시는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노동에 소외된 사람들의 대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걸 거부하는 사람들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천태; 납득이 되기는 합니다. 치히로의 사랑을 갈구하며 폭주하던 가오나시가, 나중에 제니바의 집에서 소박한 생활에 정착하잖아요.
미하; 아까 내가 가오나시는 그늘이라고 말했더니 당신이 그림자라고 보탰잖아요? 그림자... 좋은 표현이에요!
가오나시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욕망을 투사해서 반영하죠. 온천장에 사람들이 황금을 원하니까 황금을 복사해내는 것처럼.
천태; 그렇습니다. 치히로가 약수용 팻말이 필요 없다고 하자 가오나시의 몸이 사라져 버리죠!
하쿠; 유바바가 나쁜 기운의 귀신이 들어왔다는 게 그런 뜻이군요! 유바바는 자본주의의 상징적인 인물인데, 가오나시는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인물이니 말이에요.
치히로; (큰일 날 소리라는 듯) 가오나시는 부정하는 인물이 아니야. 소외된 인물이지.
미하; (흐뭇한 표정으로 치히로를 보며) 치히로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가오나시를 소외에서 벗어나 건전한 노동에 귀의하게 해 주고, 오물 신의 치료해주고, 하쿠를 구원해주고, 부모님을 다시 인간으로 환생시켜주고...
천태; 거의 성인(聖人)급인데요?
하쿠; 신이네요! 인간 신.
천태; 갓 치히로.
하쿠; 세느님...
미하; 맞습니다. 우리 모두 신적인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해요. 제니바가 한 얘기를 따라 하면, 우리의 영성, 우리의 신성은 결코 잊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천태; 아...! 그건 일본의 민간신앙 문제와 연관되어 길어질 것 같으니 일단 멈추고요, 정리하면서 가오나시 얘기를 마지막으로 들어보죠.
가오나시; 아... 사... 아...
천태; 뭐라는 거죠?
치히로; 사랑한대요. 여러분 모두.
천태; 푸하하! 그런 뜬금없는 말을... 가마 할아범도 뜬금없이 사랑 얘기를 했잖아요? 치히로가 하쿠를 살리기 위해 마녀를 찾아가려 하자, 린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죠. 그때 가마 할아범이 ‘보고도 몰라? 사랑이야.’라고 말하죠. 갑작스러운 대사라 ‘오바한다’고 생각했었어요. 무슨 신파 멜로드라마도 아니고...
미하; 나로선 가벼운 조크라고 생각한 건데... 당신은 필요 없이 무거운 사람이군요. 실망입니다!
천태; 아까 신 얘기를 하다가 멈췄는데, 이 작품은 신에 대해서 대단히 일본적입니다. 신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일본적인 색채가 대단히 강한데요?
미하; 그렇습니다. 예술가로서, 80년대 이후 암울한 일본의 현실에 대해서 뭔가 발언을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젊은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었습니다.
천태; 현재에 대한 비판이 다소 복고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군요. 제니바의 집이 이상향적으로 표현되고, 소로우의 월든을 생각나게 합니다.
미하;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요. 일종의 극적 대비죠.
천태; 죄송한 말씀이지만 일본적인 것의 강조가 의도치 않게 트러블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습니다. 유바바의 집 천정 묘사에서 욱일기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미하; 태양이 노란색이니 분명 다르죠! 브라질 풍이랄까...
천태; 그 방은 유바바의 아이 보의 방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 자본주의의 미래인 거죠. 과거 욱일기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어요. 밖에 나가길 두려워하던 보가 제니바의 집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 건강해진 것도 그렇고...
미하; 그 점은 동의합니다. 미래는 청년들의 것이니까요.
천태; 그렇게 일본적인 작품이 세계적으로 히트를 한 비결이 뭘까요? 뭐, 가장 일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그런 상투적인 말씀 말고요.
미하; 솔직히 말하면 모르겠어요. 흥행은 사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 정도면 잘 되겠다 싶은데 안 되는 경우도 많고... 사실 <센과 치히로>가 크게 성공해서 나도 조금 당황했어요. 굉장히 일본적이고, 솔직하고, 사회비판적인 얘기인데 반응이 좋았잖아요? ‘야! 그러면 보편적인 소재를 한번 만들어야겠다. 그러면 정말 역사적인 대박을 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천태; 그래서 만드신 게 <하울의 움직이는 성>?
미하; (웃는다) 하하하! 그런데 이건 또 기대했던 만큼 아닌 거예요.
천태; 그래도 성공작 아닌가요?
미하; 사람 욕심이. <센과 치히로>만큼은 아니었죠.
천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정말 대단합니다. 흥행뿐만 아니라 작품성에 있어서도 여전히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어요. 미디어의 평가가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만,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중 4위에 뽑혔고요, IMDb 역대 영화 250에서 랭킹 27위입니다. 지브리는 물론, 애니메이션 영화 중에서는 최고 순위지요.
미하; 다 치히로 덕입니다. 치히로가 잘해줬어요.
치히로; 하쿠 덕이예요. 하쿠가 도와줬잖아요.
하쿠; 가오나시가 영화에 박력을 더했어요.
가오나시; 아... 사...
천태; (치히로에게) 뭐라는 거예요? 또 사랑한다는 말인가요?
치히로; 관객 여러분에게 감사한대요.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고요.
미하; 기분이 좋은 것은, 평가를 잘 받아서 보다는, 관객들이 우리가 전하려는 얘기를 받아들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에요. 아까, 가오나시는 수많은 보통사람을 대변한다고 말했잖아요? 처음에 존재도 없고, 정처도 없고, 대접받지 못하던 가오나시가 폭주의 과정을 거쳐서 결국 안정을 하게 됩니다.
천태; 제니바의 집에서 가오나시는 처음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배웁니다. 먹고 마시고 노동을 하고... 외부의 욕망을 복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행위하지요. 그렇게 만든 머리띠를 치히로가 선물로 받고...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었어요.
미하; 바로 그겁니다! 가오나시가 외부의 욕망을 투사해 행동하는 걸 멈추고 자신의 의지로 살게 된 것처럼, 우리 모두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노동하고 생활해 가기를 바라는 거지요. 내가 내 삶의 주인공임을 잊는 순간, 우리는 즉시 세계로부터 분리되고 소외되고 맙니다. 돼지가 되는 거지요.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요!
천태; 이름을 잊지 말라!
미하;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기 이름의 의미를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천태; 그런데, 옥의 티라고 할까요? 약간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얘기해 봅니다. 그냥 지나가는 얘기로 들어보세요. 처음에 아빠가 자동차를 세웠을 때 도로는 비교적 깨끗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그곳을 빠져나갈 때 도로를 보면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거든요? 치히로가 모험을 겪은 동안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아요. 갑자기 없어졌다고 하고, 이삿짐 트럭이 와 있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죠. ... 어느 쪽이 진짜인가요?
미하; 천하태평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천태; 저는 엄마 말을 믿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치히로가 겪은 모험담은 말 그대로 판타지인 거죠. 잠깐 동안의 내적 체험?
미하; 혹시 ‘호접몽’ 얘기를 아시나요?
천태; 물론입니다. 장자... 나비꿈을 꾸었는데,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미하; 천하태평 선생은 내가 나비라고 생각합니까, 나비가 나라고 생각합니까?
천태; (약간 당황) 그게... 결국은 같은 얘기 아닌가요? 굳이 정하라면 내가 나비라고 해야겠지요. 나비가 주인공일 수는 없으니까.
미하; 그렇게 정돈된 논리로는 판타지 세계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현실과 판타지를 서로 다른 세계라고 정하면 넘나들기가 어려워져요. 그런 생각 속에는 판타지는 비현실이라는 생각이 깔려있거든요. 비현실이란 가짜라는 뜻인데, 그러면 치히로의 머리띠는 어떻게 된 걸까요? 그것도 가짠가요?
천태; (당황스러워서) 가짜라기보다... 저는 다만 시간상의 오류가 있는 것 같다는...
미하; 시간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공간을 현실과 비현실로 나누는 것처럼, 시간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서 이야기하죠. 그러나 그게 정말일까요? 정말 현실과 비현실, 판타지가 따로 있고,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이 다른 걸까요?
천태; (수세를 벗어나기 위해 애써 반격해본다) 그럼, 의도적인 혼란이었다는 건가요?
미하; 아까 머리끈 얘기를 하면서, 그게 잊지 않게 해주는 장치라고 말했죠? 센과 치히로가, 판타지와 현실이 분리되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라는 걸 잊지 말라는 장치라고.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같은 얘기예요! 내가 나비이고, 나비가 나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센과 치히로가 하나이고, 판타지와 현실이 같이 있는 겁니다.
천태; 과거 현재 미래도 동시에 존재한다...?
미하; 사실 그런 건 없습니다. 굳이 있다면 현재, 지금 이 순간의 현상만 있을 뿐이죠!
천태; (답답해진다)아... 이거... 말하자면 <인터스텔라> 같은 건가요?
치히로; (수습하려고 끼어든다) 저기... 엄마 아빠가 기다리셔서, 가봐야겠어요.
천태; (살았구나 싶어서 안도의 한숨.) 아! 그래요. 마지막 질문하고 끝내죠. 각자 영화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 하나씩만 얘기해 주시죠. 치히로부터...
치히로; 저는 아무래도 하쿠하고 있었던 일이 생각이 많이 나요. 아무래도 운명적인 만남이랄까, 그런 게 있으니까.
천태; 그중에서도 하나만.
치히로; 굳이 고르라면 저는 하쿠한테 강의 신이 준 경단을 먹이던 장면으로 할게요.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하쿠의 입에 억지로 경단을 넣어주잖아요? 날카로운 이빨 깊숙이 팔을 집어넣어서 먹이고, 뱉어내지 못하게 입을 막아버리죠.
천태; 온 힘을 다해서 용의 입을 다물게 했죠! 애절한 느낌이었달까?
치히로; 그 당시에는 어떻게든 하쿠를 살려야겠다는 마음뿐이었지만, 영화 장면을 다시 보니 색다른 감정이 떠오르더라고요. 아! 엄마가 나를 낳을 때 이런 절실함이었겠구나!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엄마가 아이를 낳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났어요.
천태; 그 장면에서 엄마의 심정을? 그만큼 절실했다는 건데... 이해가 될 듯 말 듯하네요. 다음 하쿠...
하쿠; 역시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 제가 이름을 찾던 순간이지요!
천태;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하쿠; 그 다음이요. 비늘이 떨어져 나가고 사람의 모습이 되죠. 그리고 치히로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이름을 말합니다. 내 진짜 이름은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라고.
천태; 아!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비늘이 떨어져 나가는 건 치히로가 코하쿠라는 강 이름을 말해줬을 때잖아요? 아직 이름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쿠; 아니죠. 치히로 말에 저는 이미 제 이름을 떠올린 거죠. 치히로에게 말을 한 시점이 나중이었을 뿐이고.
천태; 아, 그렇군요! 치히로도 역시 잊었던 옛날 기억을 떠올립니다.
하쿠; 그렇게 치히로하고 둘이 손잡고 하늘을 내려오는 그 때! 저는 그 때 뭐랄까... 일체감 같은걸 느꼈어요. 잃었던 내 과거의 기억을 되찾아서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치히로와 하나가 된 기분이 더 좋았어요. 하나의 세계가 완성된 느낌이랄까? 부족함이 없는 완전함? 이제는 어떤 고난이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 하여튼 뭐 그런...
천태; 이해가 됩니다. 그걸 사랑이라고 이해해도 괜찮겠죠? 공감이 가요.
미하; 그렇습니다! 사랑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하지요. 어쩌면 인생이란 게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어요. 사람이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 사‘람’의 ‘ㅁ’ 받침이 사‘랑’의 ‘ㅇ’ 받침으로 원만해지는 거죠.
천태; 한글도 알고 계시고! 대단하십니다. 마지막으로 감독님.
미하; 난 오물 신 장면을 좋아해요. 표현이 잘 됐어.
천태; 현대 사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두드러집니다. 오물 신의 속에서 각종 쓰레기들이 쏟아져 나오잖아요? 보면서, 이야! 우리 자연이 저렇게 몸살을 앓고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미하; 그런 의미적 차원보다도, 나는 오물 신의 치유 과정이 좋아요. 아까 치히로가 하쿠를 구할 때 얘기를 했는데, 오물 신을 구할 때도 역시 비슷한 상황이죠. 일반 사람 같으면 포기할 법한 상황인데도, 치히로는 용감하게 박힌 가시를 뽑아냅니다. 물론 다른 모든 사람이 함께 했지만요.
천태; 그러고 보면 나름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과정이야 어찌 됐건, 모두가 힘을 합쳐 오염된 환경을 치유한다는 거잖아요?
미하; 나는 특히 오물 신이 정화되고 껄껄 웃는 탈 장면을 제일 좋아합니다. 혹시 일본적 이미지라고 트집 잡을지 모르지만... 한국에도 그런 모양의 탈이 있지 않나요?
천태; 비슷하긴 합니다. 약간 하회탈 같기도 하고.
미하; 어쨌든 그 장면이 나는 마음에 들어요. 드라마와 상관없이 뭐랄까, 제도권 사회에 대한 어떤 긍정심? 희망? 나에게도 그런 게 있구나 싶기도 해서 더 좋아요.
천태; 그렇군요! 사실 영화를 얼핏 보면 감독님이 세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처음에 아빠가 미친 듯이 과속해서 아우디 자동차를 몰 때부터 그렇지요. 가오나시가 욕망의 폭주를 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런 가운데 유난히 희망적인 상황이 바로 오물 신 장면이네요!
미하; 또, 거기서부터 선순환이 이루어지잖아요? 그렇게 받은 경단으로 가오나시와 하쿠가 치유되고...
천태; 그것도 약간 의외성이 있습니다. 원래 치히로는 부모님을 위해 경단을 쓰려고 했잖아요? 그런데 막상 필요한 상황이 되자 망설임 없이 경단을 써버립니다! 결과적으로 부모님을 구해내기는 합니다만... 생각이 안 났던 건가요? 아니면 경단 아니어도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나요?
치히로; 그 당시는 다른 생각이 없었죠. 오직 지금 이 순간만 있으니까, 현재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는 거죠.
미하; 치히로가 그렇게 현재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엄마 아빠도 구할 수 있었던 거죠.
천태; 그 대목도 여러 얘기가 많습니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계약서를 이행해야 하고, 수많은 돼지들 중에서 엄마 아빠를 구별해 내야 하는 게 치히로의 과제죠. 독일 동화에 나오는 ‘까마귀 알아맞히기 테스트’를 차용한 거라는 말도 있고요.
미하; 사실 아이가 부모님을 구하는 이야기의 전통은 오래된 것입니다. 그 바탕에는 역사는 기성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의 것이라는 무언의 확신이 있지요.
천태; 영화 속에 확실한 구분이 있습니다. 성인이고 다수인 기성세대는 탐욕스러운데, 어리고, 여성이고, 소수인 주변 인물들은 바르고 강하고 잘 극복해냅니다. 소수자와 어린이, 국외자에 대한 강한 애정이 느껴져요.
치히로; 전에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치히로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자격은 ‘잡아먹히지 않는 힘’에 있다고요. 저는 그 말을 믿었죠. 유바바의 마법에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어요.
천태; 그렇지만 자신감이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 돼지들 중에 엄마 아빠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았죠?
치히로; (마땅한 대답을 못 찾고) 그냥...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엄마 아빠는 이런 돼지가 아니야... 이런 모습일 리가 없어!
미하; 그렇지! 바로 이게 정확한 대답입니다! 자신감이란 맹목적인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이런 명확한 자기 확신을 바탕으로 합니다. ‘나는 무엇이다’ ‘나는 누구다’ 하는 자기 정체성은 미혹이나 마법의 주문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죠. 치히로는 판타지 여행을 경험하면서 ‘센과 치히로’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생깁니다. 모든 것은 결국 내가 받아들임으로써 생기는 결과예요. 치히로는 아빠와 엄마가 –물론 나는 돼지 같은 사람들로 그려내기는 했습니다만- 돼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믿었고, 그 결과 유바바의 속임수 마법이 풀리게 된 거지요.
천태; 치히로가 그 게임의 룰에 엮였다면 결과는 또 달라졌겠군요!
미하; 그렇죠! 고약한 심보의 감독이었다면, 치히로는 고아가 됐을지도 모르지요.
천태; 영화 속 상황이기는 하지만, 아슬아슬 조마조마합니다!
미하; 실제로 우리 삶 자체가 그렇지 않습니까? 운이 좋아서 그렇지, 우리는 사실 한 치 앞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세상은 쓰나미처럼, 온갖 욕망의 파도를 만들어 우리를 덮치죠. 유튜브 속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지 않습니까? 자기 이름, 자기 정체성을 지키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천태; 치히로는 그 어려운 걸 해냈습니다!
미하; 처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게 10살 된 친구의 딸 때문이었는데, 그 아이에게 힘이 되고 싶었습니다. ‘네가 하고자 하는 게 있으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주고 싶었지요.
천태; 친구분 딸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10살 아이들에게 힘이 될 겁니다. 분명히!
치히로; 그리고 한때 10살이었던 모든 어른들에게도.
하쿠; 또 앞으로 10살이 될 모든 어린이들에게도.
가오나시; 아... 아... 아...
천태; (치히로에게, 웃으며) 뭐라고 하나요?
치히로; 이 나라와, 아름다운 행성 지구와, 광대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도!
천태; (어이없다) 아, 예...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