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하태평 Nov 14. 2018

영화 <쇼생크 탈출> 주역 3인과의 인터뷰


-<쇼생크 탈출>(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1994년. 미국)


- 이 인터뷰는 가상의 공간에서 진행된 가상의 인터뷰입니다.-


참석자;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주연 팀 로빈스, 모건 프리먼, 그리고 나.



영화의 백미 모차르트의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에 대해


; 바쁘신데 이렇게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프랭크; (팀 로빈스를 보며) 우린 안 바빠. 여기 모건이나 좀 바쁠까. 여러모로...

모건; 이 사람, 쓸데없는 소리! 나도 덕분에 한가해.

; 어쨌든 이렇게 모이니 좋네요. 이렇게 셋만 모인건 거의 작품 끝나도 처음 아닌가?

프랭크; 평생 처음이야. 작품 할 때도 우리만 모인 적은 없지.

; 시간이 없으니...

프랭크; 시간 많다니까?

; 첫 번째 질문 들어갑니다. 현재 <쇼생크 탈출>이 IMDb를 비롯한 랭킹 사이트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데... 심지어 <대부>와 <다크 나이트>를 물리치고. 솔직히 이건 아무도 예상 못한 거 아닌가요? 

; 개봉 때는 거의 찬밥이었지. <포레스트 검프> <펄프 픽션> <라이온 킹> 등 화제작이 많았거든. 

프랭크; 케이블 TV에서 재방송을 많이 한 덕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그렇게 말하면 나는 섭하지. 뭐, 재방송을 <쇼생크>만 하나? 작품이 좋으니까 사람들이 알아봐 준거지. ‘반짝이는 것이 다 금은 아니다.’ 몰라? 반짝이는 작품들이 많았지만, 뭐가 진짜 금인지 대중들이 판단을 해 준 거야!

모건; 인정! 그러니 흥분하지는 말라고. I hope... 주제가 좋았어!

; 결과론인지 모르지만, <쇼생크 탈출>은 모범적인 웰 메이드 영화로 보입니다. 시나리오, 연기, 연출, 촬영, 음악, 주제의식, 전체적인 하모니...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어요.

프랭크; 완벽한 게 아니고?

; 솔직히 영화적으로 뛰어난 성취는 아니잖아요? 타율은 좋지만 홈런이 없다고 할까?  다시 말해서, 감동적이긴 하나 깊은 울림을 주지는 않는다...

프랭크; 편협한 사람이구만!

; 미식가라고 해 줍시다. 로버트 알트만 좋아하죠? (팀이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플레이어> <숏텃> 등의 작품에 출연했으므로 하는 농담.)

모건; 이봐, 젊은이들! 개인적 취향은 존중하자고. 내가 이번에 인터뷰 오면서 영화를 다시 봤는데, 스토리가 정말 끝내주더라고! 스토리를 끌어가는 솜씨가 일품이야. 한 순간도 처지는 시간이 없어. 아무리 명작이라고 해도 늘어진다 싶은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그게 없더라고.

; 그런 맞아요. 적절하게 내레이션과 편집을 통해서 흐름을 조절했죠.

; 구성이 좋았어. 주인공을 두 명으로 해서 간 것도 그렇고, 가끔 전지적 시점으로 주인공들을 벗어나는 것도 분위기를 환기시키는데 도움이 됐지.

프랭크; 내가 시나리오는 확실히 일가견이 있지!

모건; 인정! 시나리오 좋았어. 원작보다 나아. 설마 이 말 듣고 스티븐 킹이 화내지는 않겠지?

프랭크; 그건 스티브도 동의할걸? 심지어 영화의 백미인 모차르트 ‘편지 이중창’ 장면은 소설에 없어. 전적으로 내가 만든 거라고.

; 그 장면은 정말 대단했어요! 영화의 격조를 일순간 서너 단계 올려버렸죠.

; 갑자기 아부 모드로...

; 아니. 정말로 영화사에 남을 훌륭한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모건; 피가로의 결혼.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

; 그 장면 자체로 아름답기도 하지만, 영화 전체를 흔드는 강력한 지진 같은 효과가 있었어요. 쇼생크 교도소의 일상을 순식간에 정지시키고, 일견 평범하게 흘러가던 감옥 스토리의 이면을 보게 하잖아요. 화산이 폭발해서 시뻘건 마그마가 흘러내리듯, 죽어있던 일상의 아래 갇혀있던 소중한 가치가 드러난 거죠.

모건; (그 장면의 내레이션을 읊조린다)


난 지금도 그 이탈리아 여자들이 뭐라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실은 알고 싶지 않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얘기였다는 것만 생각난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의 감옥에 날아 들어와 그 담벼락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 목소리는 이 회색 공간에서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아주 짧은 한 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프랭크; 히야! 굉장허네! 영화의 핵심이 다 들어있군!

; 가장 선명하고 효과적으로 주제를 드러냈어요. 정말 최고의 코어 씬(Core Scene) 중 하나예요.

모건; 인정! 그런데, (팀을 보며) 나도 궁금한 게 있어. 그 장면 후반부에, 소장이 음악을 끄라고 소리 지르잖아?

; 안 끄죠.

모건; 오히려 볼륨을 더 올려. 엄청난 후환이 있을게 뻔한데도 말이야. 왜 그랬지?

; 좋은 질문예요. 앤디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 앞에서는 타협이 없는 사람이죠. 얼핏 보기에는 조용한 사람 같지만, 사실은 불굴의 투지를 가진 영웅적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프랭크; 그렇지! 앤디는 히어로야. 마블 히어로가 아니라, 진짜 현실의 히어로. 앤디가 쇼생크를 탈출하는 장면에서 그런 느낌을 받기를 바랐어. 의지의 승리랄까?

; 특히 마지막에 앤디가 빗속에서 만세를 부르는 장면은 정말로, (프랭크를 흉내내며)굉장혀!

프랭크; 닫힌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열린 세계로! 더러움을 비로 씻어내고 밝은 자유의 세계를 시작하는 거지.



앤디와 레드두 메인 캐릭터에 대해


사실 앤디는 평범한 은행원이었잖아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영웅이 됐을까요?

프랭크; 원래 영웅이었지. 다만 평범하게 살 때는 그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야. 난세에 영웅 난다고 하잖아? 고난이 닥치면, 비로소 영웅의 면모가 드러나게 되지. 방사선 거미에 물리지 않는 한, 평범한 사람이 영웅이 되는 일은 없어. 영웅은 태어나는 거야.

모건; 인정! 앤디는 영웅적 캐릭터였고, 레드는 우리 보통 사람들을 대표하는 인물이지. 너무 앤디만 주목하지 말아 줘. 대중이 없으면 영웅도 없어. 솔직히 레드가 앤디를 돋보이게 만든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잖아?

프랭크: 그럼! 모건 형이 레드 역을 잘 소화해준 덕이 커.

원작에서는 백인이죠? 그런데 굳이 모건 프리먼을 캐스팅한 이유가 뭔가요?

프랭크; 직감이지! 예술가는 감이 중요하거든. 반드시 모건이어야 한다는 확신 같은 게 있었어.

; 사실... 어떻게 보면 레드가 <쇼생크>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만합니다.  물론 앤디와 그의 탈출 이야기가 드라마의 핵심이기는 하지만, 그와 하모니를 이루면서 레드의 변화과정이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하죠. 한쪽에 앤디의 영웅적 캐릭터가, 그 반대편에 세속의 보통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다면, 레드는 그 가운데에서,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에서 영웅으로 변화해가는 인물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화한다는 점에서 레드는 소위 ‘입체적 인물(round character)’이고, 평면적 인물(flat character)인 앤디보다 더 주인공다운 인물이죠. 

; 날카로운 지적이고, 맞는 얘기예요.

프랭크; 보기보다 똑똑하네!

; 영화 처음 앤디는 육체적으로 자유로운 듯하지만 사실은 갇혀있어요.  좁은 자동차 안에서 괴로워하고 있고, 아내의 불륜 때문에 괴로워하며 술과 살해 유혹에 속박당해 있죠. 그런 그에게는 희망이 없어요. 절망뿐이죠! 희망이 없기는 레드도 마찬가지예요. 비굴한 모습으로 가석방을 호소하지만 기각되고,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교도소의 생활을 즐겨요. 어떻게 보면 앤디보다 더 나쁜 상황이죠. 희망은커녕 절망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다가 앤디라는 영웅적 캐릭터를 만나서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됩니다.

모건; 그래서 나도 그 ‘변화’라는 점에 신경을 많이 썼어.

; 변화 얘기하니까, 난 그 장면이 볼 때마다 웃기더라고. 처음 옥상 사역 나가서 앤디가 해들리의 유산 문제에 참견할 때 말이야. 레드가 잔뜩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앤디를 만류하잖아? 솔직히 그건 좀 오바 아니야? 레드가 그 정도로 겁쟁이는 아니잖아?

프랭크; 그동안 보아왔던 레드를 생각하면 좀 깨는 느낌은 있지. 그렇지만 괜찮았어. 그래야 앤디의 도발이 더 돋보이니까.

모건; 말하자면 희생타지. 외야 플라이.

; 계산된 연기였다는 건가요?

모건; 당연히!



그 장면이 앤디의 입장에서는 승부수를 던지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어요. 레드를 비롯한 다른 죄수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과감한 용기를 보여주죠. 교도관 해들리에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얘기해요. 마치 자신이 이길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앤디의 용기는 어디서 온 거죠? 

프랭크; 아까 얘기했잖아. 원래부터 갖고 있었다고. 고난을 통해 그게 각성된 것뿐이지.

모건; 앤디에게는 희망이 있었지. 희망은 용기를 갖게 해.

; 앤디와 레드가 확실히 대비되는 지점이 거기였어!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를 틀은 벌로 독방에 갔다가 온 후에 앤디가 말하잖아? 독방이 괴롭지 않았냐는 물음에 음악과 희망이 있어서 괜찮았다고 말하지. 희망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라고.

모건(영화처럼) 희망이라고? 한 가지 얘기해 줄까?  희망은 위험한 거야. 희망은 사람을 미치게 할 수도 있어. 

프랭크; 저렇게 말하던 레드가 희망을 갖게 된 거야!  대중적으로는 당연히 앤디의 탈옥이 주요 관심사겠지만, 아까 자네가 얘기한 것처럼, 주제적 측면에서는 레드의 변화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

아까 뭐라고 했지? 희망은커녕 절망도 없는 생활이라고? 그랬던 레드가 브룩스로 대변되는 절망을 극복하고,

앤디의 희망을 받아들여서 자유의 구원을 얻게 되는 거지.

; 아참! 좀 전에 계산된 연기 얘기를 해서 생각났는데... 레드의 가석방 심사 장면이 세 번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 세 번의 연기 내용이 다 달라요. 물론 계산된 거죠?

프랭크; 그건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핵심의 문제야. 아까 자네가 말한 레드의 변화가 완벽하게 드러나니까.  평범한 사람인 레드가 앤디라는 영웅을 겪으면서,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선명하게 정리해주는 장면이지. 솔직히 나로서는 <쇼생크 탈출>에서 제일 자부심을 갖는 장면이야. 드라마적으로 아주 훌륭한 설정이거든.

; 같은 연기자로서 부럽기도 해. 앤디가 멋진 인물이기는 하지만 연기의 폭이 크지는 않잖아. 늘 일정한 진폭 안에서 연기해야 하니까 답답할 때도 있지. 그런데 레드는 그 장면에서 서로 다른 감정 표현이 가능해. 감독이 일부러 그러라고 판을 깔아준 거지.

프랭크; 모건은 그걸 모르는 거 같아. 고맙다는 말도 없더라고.

; 첫 번째 심사에서 레드는 아주 비굴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두 번째 심사에서는 당당하게 인터뷰에 응하죠. 일부러 대비되게, 첫 번째 심사와 똑같은 대사를 해요! 마치 착한 학생이 모범답안을 말하듯이.

; 아이러니가 있어. 당당한데 전혀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이 읽힌다고. 처음 심사에선 비굴하지만 나가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느껴지는데 말이야.

프랭크; 가석방 심사가 형식적이라는 걸 알고 거기에 최대한 맞춰주는 거지. 착한 학생처럼.

; 그런데 마지막 세 번째 심사에서는 가석방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요.

모건; 중요한 건, 그게 앤디라는 인물에게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래야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는 거지.

; 브룩스 시퀀스도 그런 의미에서 좋았어요. 사실 문맥에서 보면 튀는 시퀀스잖아요? 브룩스는 조연인데,  영화가 갑자기 조연을 따라서 쇼생크 감옥 밖으로 나간단 말이에요.

프랭크; 브룩스 시퀀스는 레드와 연결선 상에서 봐야 돼. 영화는 앤디라는 영웅의 축과, 레드를 비롯한 보통 사람의 축이 서로 조응하면서 진행되지. 앤디가 탈옥을 하기 전에, 브룩스를 통해 보통사람들의 심리를 극대화시켜 보여줘야 했지. 그래야 앤디의 영웅적 행위, 탈옥이 더욱 돋보이고, 브룩스의 뒤를 잇는 레드가 어떤 선택을 할지 긴장감이 생기니까.

; 그 의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 근데, 마지막 인터뷰할 때 말이야. 레드는 왜 그런 거야?  당연히 가석방이 안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모건; 자네라면 어땠을 것 같아?

; 그러니까! 긴가민가 하더라고. 어차피 가석방이 안될 거라고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르게 생각하면 가석방을 받아내기 위한 고도의 계략인 것 같기도 하고...  감독은 어느 쪽이지?

프랭크; 난 모건 쪽이지. 전적으로 연기자의 판단을 신뢰하잖아.

; 자넨 어떻게 생각해?

; 전 후자예요.

; 후자? 의도적인 거다?

; 그렇죠. 본인이 원하든 아니든, 레드는 앤디의 탈옥에 각성이 된 상태니까요. 브룩스의 경우처럼 두렵기는 하지만, 자유에의 갈망에 감염돼 버렸거든요!

; 자, 그럼 실제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연기했나요? 모건?

모건; 나도 전체적인 흐름상으로는 그 말이 맞다고 봐. 의도적이지는 않아도, 나가고 싶다는 내적 욕망에 자극받은 건 사실이지. 하지만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안 심리를 떨쳐내지 못한 것도 사실이야. 바깥 사회에 대한 불안감과, 당연히 가석방은 기각될 거라는 패배주의 심리가 공존하지. 그래서 나는 판단을 보류하고 연기한 거야. 앞의 두 번 심사에서 나름 계산으로 대답했다면, 마지막에는 그 계산이 없는 거지.

프랭크; 나가려는 생각도, 나가지 않으려는 생각도 없었다? 

모건; 다 있지. 있지만, 그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얘기지.

프랭크; 그래서 그렇게 당당해 보였나? 계산이 없어서?

; 이해가 돼. 생각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제한시키지 않으니까.

; 그게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해방감을 느끼게 했군요! 앤디가 탈옥이라는 영웅적 행위를 통해 해방감과 자유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면, 레드는 내적 굴종이라는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거죠. 나는 개인적으로 레드가 자신의 과거와 화해한 대목이 특히 감동적이었어요.

모건; (연기하듯) 옛날의 나를 돌아보지. 젊은 바보 녀석이 끔찍한 죄를 저지른 거야. 그놈에게 말하고 싶어. 정신 차리라고 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지. 젊은 녀석은 오래전 없어지고 이 늙은 놈만 남았어.

자넨 부적격 도장이나 찍고 내 시간 그만 뺏어.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상관 안 해...

; 상관 안 해... 시나리오에 정확한 심리 묘사가 있었네!

프랭크; 시나리오 잘 썼다니까!



영화의 구체적 요소들에 대하여


시간이 없으니까, 간단하게 주제를 정리해 볼까요?

모건; I hope...

; 자유.

프랭크; 제목이 모든 걸 포함해. 쇼생크...

; 아! 한국어 제목은 ‘쇼생크 탈출’인 거 모르시죠?

프랭크; 탈출? Redemption을 그렇게 바꿨나?

; 구체적이어서 좋기는 한데, 스포일러 아냐?

모건; 스포일러도 문제지만, 전혀 다른 뜻인데. 

프랭크; ‘구원’이라는 뜻이지. 지금 말한 여러 단어들이 모두 포함된다고 생각해. 희망이라든가, 자유, 탈출...

모건; 자유와 구원은 한쌍의 단어야. 영화 속에서 자유란 육체적인 속박이 없는, 더 구체적으로는 감옥을 벗어난 상태를 뜻하지. 반면 구원은 정신적인 속박에서 해방됨을 의미해. 즉 자유는 육체적인 구원이고, 구원은 정신적인 자유인 거지. 그리고 두 주인공을 그 상태로 이끌어가는 게  바로 Hope, 희망이고.

; 탈출은 구체적이고 단순한데, 구원이라고 하면 약간 종교적인 느낌도 있어.

; 사실,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프랭크; 조롱이라기보다는 Redemption, 구원! 우리는 모든 종류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희망과 아름다움을 누릴 권리가 있어.

모건; 조롱이라고 해도 좋지만, 감독이 싫어하니 그럴듯하게 풍자라고 하자고. 제도권 사회와 기성 종교에 대한 풍자가 중요한 서브 테마의 하나지. 소장실 벽 액자에 노골적으로, ‘심판의 날이 곧 오리라’고 쓰여 있잖아.

; 소장이 ‘구원이 그 안에 있다’면서 성경을 앤디에게 돌려주는 건 또 어떻고요?  앤디는 그 성경에 암석 망치를 숨겨두고.



팀; 나중에 앤디가 탈출한 후, 성경을 펼쳤더니, 하필 출애굽기(EXODUS)야! 재밌더라고.

모건; 통쾌하지. 풍자는 쏘는 맛인데, 톡 쏘는 맛이 있어!

; 교도소라는 불합리한 공간을 배경으로 기독교를 다룬 방식이 좋았어요.

프랭크; 또 없어? 그거 말고도 많은데...?

; 소도구 활용을 잘했죠. 밧줄도 효과적이었고.

모건; 그렇지! 브룩스 자살 때 밧줄을 보여주고, 마치 앤디도 자살할 것처럼...

; (레드 흉내) 그 밤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이었다... 내가 하니까 분위기가 안 나네. 역시 내레이션은 목소리 좋은 모건이 해야 돼.

; 공간 대비도 좋았어요. 어둠과 밝음,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 처음 영화가 시작하면 차 안에 있는 앤디를 보여주죠. 때는 밤이고, 밖이지만 앤디는 차 안에 갇혀 있어요. 그리고 재판이 끝난 후 앤디는 감옥에 갇히는 몸이 되고, 어쩌다 야외에 노역을 나가긴 했지만 자유로운 것은 아니에요. 브룩스 시퀀스로 자유로운 바깥 세계가 사실은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강조한 다음 비 오는 밤의 탈출을 보여줍니다. 

; 강한 대비 효과가 있었어!

; 빗속에서 속죄와 구원을 완성한 다음 앤디는 진정한 자유의 세계, 밝고 넓고 빛나는 세상에 정착해요.

지후아타네호! 

모건; 따뜻한 망각의 땅(a warm place with no memory)!

; 이처럼 공간(실내, 실외, 야외, 닫힌공간, 열린 공간)과 시간(밤, 낮, 날씨의 변화)을 적절히 변화시켜서 작품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장치로 사용합니다.

영화가 일관성이 있네. 역시 좋은 영화야. 1위를 할 만해.

; 익숙히 알고 있는 것들을 비트는 데서 오는 쾌감도 있어요. 아까 얘기한 성경 구절도 그렇고, 소설책도...

모건; 몬테 크리스토 백작! 알렉산드르...

; 덤 애스! 멍청한 엉덩이. 전형적인 아재 개그였어.

모건; 그걸 또 ‘교육’으로 분류하잖아. 탈옥 얘기라고. 조크지.

반복의 효과죠. 웃음은 반복에서 온다... 책 분류를 앞에서 몇 번 하잖아요. 그게 없었다면 교육으로 분류해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을 거예요. 영화는 그런 반복 효과를 정교하게 사용하고 있어요. 밧줄도 그렇고, 탈출 얘기도 그렇고, 새를 통해서 자유를 연상시키는 것도 그렇고.

; 난 이번에 다시 보면서, 중간에 벽에 구멍이 뚫리는 장면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 도서실 만드느라 벽을 허는 거였는데, 나중에 앤디가 탈출한 구멍 보이는 쇼트와 똑같더라고.

모건미리 한번 보여주는 거지. 이렇게 탈출할 겁니다...



; 저도 ‘벌써 탈출하나?’ 하고 놀랐어요. 사소한 듯 보이지만, 그런 정교함이 관객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는 아주 크죠.

; 그렇지! 그런 게 쌓여서 큰 결과를 만들어 낸 거야. 랭킹 1위, 괜히 되는 게 아니라니까.

; 다시 보니, 영화 속의 모든 요소가 정말 꼼꼼하게 극적 요소로 사용되고 있더라고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을 만합니다.

모건; 인정!



앤디의 탈출에 대하여

 

; 어쨌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영화사의 명장면 중 하나인 빗 속 샤워신을 빼놓을 순 없죠? 마지막으로, 앤디의 탈출에 대해서 얘기해 보죠.  아까 감독님도 얘기했지만, 더러움을 비로 씻어내고 정화되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 극적인 대비가 가장 잘 된 장면이지.  어둠과 밝음,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 더러움과 깨끗함...

모건; 앤디가 옷을 벗었을 때의 극단적인 부감 쇼트도 좋은 선택이었어. 하늘로부터 완전한 세례를 받는 것 같은...


; 그래요! 제목의 구원(Redemption)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장면이죠.

; 탈출도 맞는 말이고. 쇼생크 탈출... 그것도 괜찮은 제목이야.

;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 제목은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입니다. ‘리타 헤이워드’를 뺀 이유는 뭔가요? 실제로 영화에서도 여배우의 사진이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말이죠.

; 너무 길어서. 제대로 하면, <리타 헤이워드, 마릴린 먼로, 라켈 웰치와 쇼생크 탈출>이어야 되잖아?

모건그거, 재미도 없는 아재 개그를...

; 인정! 

프랭크; 너무 문학적이기도 하고, 주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그렇고 해서. 마케팅적으로는 옛날 배우 이름을 제목에 넣는 게 좋지 않다는 의견이 있었어.

; 그렇긴 해. 사실 인기라는 게 구름 같은 거거든. 한 순간에 사라지니까.

그래도, 영화에서 ‘희망’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잖아요? 그 희망을 구체적으로 상징해서 보여주는 게 바로 여배우의 사진인데... 더군다나 원작의 부제가 ‘Hope Springs Eternal(영원히 솟아나는 희망)’이에요! 여배우는 계속 바뀌지만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구요.

모건; 이봐, 젊은이! 여배우 이름 좀 뺐다고 너무 흥분하지 말라고. 자네 말대로 이름 뺐다고 여배우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아.

오히려 계속해서 새로 태어나지. 김혜수, 송혜교, 천우희, 아이유...

모건; 그건, 사심 있는 리스트 아닌가?

프랭크; 아이유 괜찮아. <나의 아저씨> 보니까 잘하더라고.

한가하긴 한가하신가 봐. 한국 드라마도 보시고.

프랭크; 한류잖아. 나 BTS 노래도 들어.

모건; 박찬욱 영화도 괜찮아. 나름 우아하고, 유머도 풍부하고.

; 잡담은 그만 하시죠! 저는 영화에서 여배우의 사용이 가장 돋보였어요.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 노래 장면을 열외로 하면 제일 훌륭한 사용으로 보입니다. 아까 얘기한 것처럼 여배우는 희망을 상징하잖아요?

모건; 어떤 면에서 죄수들에게는 유일한 즐거움, 유일한 희망이지.

; 그러나 그 즐거움과 희망을 사용하는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영화 <길다>를 보면서 죄수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영화 전체에서 죄수들이 제일 즐거워하는 시간인데, 앤디는 그 자리에 없죠.

; 영화 중간에 들어와서 레드에게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를 부탁하지.

프랭크; 그 포스터로 벽의 구멍을 가리니까, 그게 앤디에게는 희망이고 구원인 거고.

; 중요한 것은 앤디는 여배우를 자신의 희망, 자신의 탈출을 위해 사용한다는 거예요. 다른 죄수들은 단지 즉흥적 즐거움으로 소모할 뿐이죠.



모건; 그게 영웅과 보통사람의 차이인가?

; 뭐랄까, <쇼생크 탈출>에서는 뜬금없이 예술에 대한 믿음? 그런 게 읽혀요.  쇼생크의 모든 사람을 동작 그만 시키면서 모차르트의 노래를 듣게 만들고, 소설 몽테 크리스트 백작을 ‘교육’ 책으로 분류하고, 소모되는 것 같은 여배우의 이미지가 사실은 그 안에 탈출 통로를 감싸 안고 있고...

; 듣고 보니 일관성이 있군! (감독에게) 정말 그런 의도가 있었어요?

프랭크; (나를 가리키며)이 친구... 굉장허네!

모건; 아이참! 재미없다니까!

; 그런데 궁금한 게, 이때 이미 앤디는 탈출을 계획했던 건가요?

; 그건 아니라고 봐야지.

모건; 탈출까지는 몰라도, 벽을 파기 시작한 건 분명해. 그 용도가 아니라면 그렇게 큰 사진이 필요하진 않으니까. 더군다나 그건 확실하게 위반행위라고.

; 그래서 교도소 간부들의 신뢰를 얻으려고 했군!

모건; 지붕 보수작업에서 해들리에게 접근한 것도 의도적이었다는 얘기야. 이미 계획이 서 있었던 거지.

; 오! 소름! 무서운 사람이네!

프랭크; 대충 마무리할 시점이 된 것 같으니까, 한마디 할게. 탈옥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언제냐는 중요하지 않아. 그건 전체를 놓고 연대기를 논할 때, 다시 말해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나 중요한 문제야. 앤디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 지금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지. 각각의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그런 행동이 나오는 거야. 분명히, 앤디가 리타 헤이워드의 사진을 필요로 한 이유는 벽의 구멍을 가리기 위해서지. 즉, 벽에 구멍을 뚫겠다고 생각을 한 거지.



; 그건 다시 말해서, 탈출을 하겠다는 얘기 아닌가요?

프랭크그건 결과론이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야. 지금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니까?

자, 앤디가 했던 행동을 복기해 보자고. 쇼생크 감옥에 온 앤디가 처음 한 구체적인 행동은 암석 망치를 구하는 거였어. 레드가 죄수들 중에 영향력 있는 인물인 걸 파악하고 접근하지. 암석 망치는 뭐지?

; 돌을 다듬는... 앤디의 취미였죠.

프랭크; 앤디는 교도소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한 거지. 자신이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고 한 거야. 그 정도의 취미생활은 할 수 있겠다 생각했고, 레드하고 친해야 교도소 생활이 편할 거라고 생각했고, 교도관과 교도소장의 신뢰를 얻어야 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지.

그러니까! 다 계획적이었다는 거 아니냐고?

프랭크; (답답하다는 듯) 자꾸 얘기가 겉도니, 여기서 한나 아렌트의 말로 마무리를 하자고.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에 대해서 말하지. 그가 그토록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던 것은 그가 특별히 악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다만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라고. 우리가 나쁜 행동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생각하는 것’ 뿐이라고... 마찬가지로, 감옥에서도 생각을 하지 않으면 살아있다고 할 수 없는 거지.

모건; I hope...!

; A simple choice,,. Get busy living or get busy dying. (선택은 하나밖에 없다.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거나, 희망도 없이 열심히 죽어가거나)...

프랭크; 그렇지! 그게 바로 그런 뜻이야. 앤디는 자신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할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한 것뿐이야. 그 결과가 쇼생크 탈출이라는 형태로 드러난 것이고.



당신에게 <쇼생크 탈출>이란?


; 역사상 가장 유명한 두 캐릭터가 ‘고민하는 햄릿’과 ‘행동하는 돈키호테’인데요, 앤디는 이 두 가지를 결합한 ‘고민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종합형 캐릭터라고 할 만합니다. 말하자면 ‘완성형 캐릭터’인 거지요. 이건 제 주관적 느낌이지만, 너무 완벽하게 보여서 오히려 식상한 대목도 있어요.

; 질투하는 건 아니고?

; 어디서 그걸 느꼈냐면요, 앤디가 교도소장에게 ‘어떻게 그렇게 멍청하냐’고 대들었다가 징벌방에 가죠. 그리고 나와서 레드에게 죽은 아내 얘기를 해요. 자기 잘못이라고. 자기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좀 더 아내를 헤아리고, 대화하고, 사랑했어야 한다는 거죠.



모건; 문제없어 보이는데? 가장 인간적인 반성 아닌가?

; 그게 문제죠! 그동안 얘기했듯이, 앤디는 영웅형 캐릭터예요. 인간적인 거하고는 거리가 있죠. 그런데 그 영웅이 인간적인 면모까지 획득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 오히려 그래서 더 멋진 거 아닌가? 그 다음에 짠! 탈출에 성공하고...

; 그런 거 있잖아요?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능력도 있는데, 유머 있고 성격까지 좋아... 얄미운 거죠.

프랭크역시 편협한 사람이야!

;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니까.

모건; 아직 젊어서 그래. 결혼을 해보면 이해할 거야.

; 저, 결혼했습니다.

모건; 아... 그럼, 애를 키워봐야지. 그래야 어른이 된다고.

; 딸이 스무 살인걸요.

모건; 저런!... 그래도 희망을 가져봐. 언젠가 기회가 올 거야.

; 어쨌든! 저는 그 장면은 캐릭터의 일관성 면에서 반칙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비난하셔도, 제 의견을 바꿀 생각은 없으니 이 정도로 마무리하죠. 이제 마지막으로 한 말씀씩 하고 끝내도록 하죠. 진부하지만 흔히 하는 질문, 나에게 쇼생크 탈출이란?

; 나의 전성기에, 가장 화려하게 핀 꽃.

모건; 구원(Redemption)까지는 몰라도, 힘들 때 위안이 되는 영화인 건 분명해. 자극이 많고 거친 요즘 시대에,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힘이 있거든. 프랭크에게 고맙지.

프랭크; 내가 고맙죠. 모건은 <쇼생크 탈출>을 품위 있는 영화로 만들어줬어. 사실 젊을 때는 내가 능력이 있어서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그게 아닌 걸 알게 돼.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부터, 영화의 제작 과정, 개봉과 그 후의 방송환경 변화, 그리고 현재의 인터넷 베이스까지 생각해 보면, 나와 상관없는 어떤 힘이 이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처음에 이 친구가 말한 것처럼,  <쇼생크 탈출>이 <시민 케인>이나 <대부>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게 믿어져?

; 나와 상관없는 어떤 힘이라... 그 힘이 뭘까?

프랭크; 글쎄, 뭐라고 할까... 대중의 저력? 집단적인 무의식 같은 것?  내 작품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쇼생크 탈출>의 결과를 보고 있으면 대중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게 생겨나. 한편으로 약간 무섭기도 하고.

; 엘리트주의에 대한 반성인가요?

프랭크; 그런 것도 있지!

;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술이라는 게 사실 미식가 취향이 되기 쉬운데,  <쇼생크 탈출>은 평범한 대중음식이 얼마나 좋은 음식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고급 정식요리, 유명 셰프의 단품요리가 아니라, 재래시장 골목식당의 순댓국도 얼마든지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주신 주역 세 분과, 또 영화 제작에 함께 했던 다른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인류 역사의 주인공들이십니다!

갑작스러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이것으로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위 글 중에  고등학교 교재인 <고등학교 시나리오>(서울시 교육청. 2018년)의 내용이 일부 사용되었습니다. 제가 쓴 글이라 무심코 사용했는데, 만약 문제가 있다면 수정하여 인용 표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 끝 -

이전 06화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주역들과의 인터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