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하태평 Jan 25. 2019

최고일 때 해체한다고? 그건 니 생각이고.

'장기하와 얼굴들'의 해체에 부쳐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 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이번 건 니가 절대로 믿고 싶지가 않을 거다 
그것만은 사실이 아니길 엄청 바랄 거다 하지만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하루하루 즐거웁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신난다 좋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나는 사는 게 재밌다
매일매일 하루하루 아주 그냥
  

몇 년 전 우리 세 식구가 <장기하와 얼굴들노래에 한동안 빠졌던 적이 있었는데요위 가사는 ‘별일 없이 산다라는 곡의 전문입니다
장기하는 주류 음악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싸구려 커피’로 이름을 알린 후 꾸준히 활동하는 개성 있는 가수입니다서울대 출신에국민 여동생 아이유와의 연애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제가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마지막의 아주 그냥’ 때문입니다그 앞의 가사들이 재미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일류가 되려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의 음악이 (가사 내용처럼일반적인 상식에 저항한다고 했을 때아주 그냥이 없어도 무난히 장기하스러운 노래로 들립니다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노래를 마무리했을 거라고 생각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장기하는 그게 싫습니다뭔가 만족스럽지 않습니다그렇게 끝내고 싶지 않습니다뭔가 미련이 남고 후회스럽습니다그래서 기분대로 덧붙입니다아무 이유 없이, ‘아주 그냥’!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내 맘이 시키는 대로 살기로 합니다그런 장기하의 선택을 지지합니다.
  
편지에 가훈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요여러분은 어떤 가훈을 갖고 계십니까
저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아주 그냥!’ 

           ---(<딸에게 쓰는 편지 25;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아주 그냥> 중에서)


10년쯤 전,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적이 있다. 게으른 탓에 일부러 노래를 찾아 듣지는 않으므로 한동안 잊고 지냈다.

그런데 작년 말에 갑자기 여기저기 장기하가 TV에 나왔다. 정규 5집 음반을 냈으며, 그걸 마지막으로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을 해체한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옛날 즐겨 듣던 노래와 그때 썼던 편지가 생각이 났다. 그룹 해체라... 별일 없이 사는 줄 알았더니 별일이 생긴 셈이다.


세상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아침 점심 저녁이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사람의 세상살이에도 우여곡절 굴곡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좋은 일도, 때로는 나쁜 일도 생긴다. 그게 사는 것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평범한 샐러리맨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뛰어난 스포츠맨이나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오르막이 있다가 내리막도 있다. 문제는 우리의 마음. 좋은 것은 갖고 나쁜 것은 버리고 싶은 우리의 마음 때문에, 그 욕심 때문에 탈이 난다.


물론 그룹의 해체가 꼭 나쁜 일일 수는 없다. 별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만남과 어울림이 당연했듯이, 헤어짐 또한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 있다.

그런데 장기하가 해체의 이유로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린다. 그냥 방송용 변명이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 말에 굳이 토를 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연말에, 그리고 지금까지 '장기하와 얼굴들'의 새 앨범 <그건 니 생각이고>를 들으면서 더욱 얘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왜냐고? 좋아하니까. 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를 좋아한다.


여편이 뜬금없이 질문을 한다. "혁오가 좋아, 장기하가 좋아?"

내가 혁오 밴드의 <TOMBOY>를 좋아하는 걸 아니까 하는 질문이다. 결과는 3:0! 우리 식구 모두 장기하를 좋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의문의 1패를 당한 혁오밴드, 죄송!)


물론 이것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기호의 차이다. 어쩌면 음악적으로는 혁오 밴드가 장기하와 얼굴들보다 뛰어날지도 모른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악이 조잡하고 단순한 변두리 음악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다. 나의 친구 하나는 우연히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를 듣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저게 무슨 노래냐'면서 불쾌해했다.(<싸구려 커피>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중에서 그나마 '노래 같은 노래'인데도!)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이 길이 내 길인 줄 아는 게 아니라
그냥 길이 그냥 거기 있으니까 가는 거야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 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내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니가 나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걔네가 너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면 니가 걔네로 살아 봤냐 아니잖아
아니잖아 아니잖아 어? 어? 
아니잖아 어? 어?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저러쿵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미주알고주알
친절히 설명을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해도
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

그건 니 생각이고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마는
그건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이 길이 내 길인지 니 길인지 길이기는 길인지 지름길인지 돌아 돌아 돌아 돌아 돌아가는 길인지는

나도 몰라 몰라 몰라 몰라 몰라 너도 몰라 결국에는 아무도 몰라

그대의 머리 위로 뛰어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너처럼 아무것도 몰라

그냥 니 갈 길 가
이 사람 저 사람
이러쿵저러쿵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뭐라 해도 
상관 말고

그냥 니 갈 길 가
미주알고주알
친절히 설명을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조곤 해도
못 알아들으면 이렇게 말해버려

그건 니 생각이고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마는
그건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그거는 어디까지나 니 생각이고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아니 
그건 니 생각이고
알았어 알았어 뭔 말인지 알겠지마는
그건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니 생각이고  

     --<그건 니 생각이고> 가사 전문


어쩌면 이건, 우열의 문제가 아니듯이, 기호의 문제도 아닐지 모르겠다. 그것보다는 '가치판단'의 문제라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나는 혁오 밴드의 노래보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혁오 밴드는 '원 오브 뎀(One of Them)이고, 장기하와 얼굴들은 '더원(The One)이다. 이런 내용의, 이런 가사의 노래를, 이런 발성으로, 이런 느낌으로 노래하는 가수는 장기하밖에 없다. 장기하만이 이렇게 노래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개성 있는 시도를 지지한다.


그런데 '장기하와 얼굴들'을 해체한다고 한다. 아니, 해체했다! 장기하는 말했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음반이 나왔다. 더 이상 좋은 것을 만들 수 없다. 최고일 때 해체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뭐 대강 이런 뜻의 이야기였다.


장기하 씨! 이게 최고의 음반이라고? 그건 니 생각이고!  이번 음반에 담긴 노래들과 <싸구려 커피>나 <달이 차오른다, 가자> 등의 예전 노래와 뭐가 다른가? 평범한 애청자인 내 귀로는 별 차이를 모르겠다. 당신의 전문적 안목으로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줬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듣기로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장기하와 얼굴들' 음악이다. 장기하의, 장기하에 의한, 장기하식 노래다.


부탁하건대 장기하 씨, 욕심부리지 말기 바란다. 너무 잘하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당신 식의 당신 노래를 하면 된다. 솔직히 그동안 뭐 특별히 뛰어난 성취를 보인 바도 없지 않은가? 우리가 당신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음악적으로 뛰어나서가 아니라 장기하스러워서, 흔히 볼 수 없는 솔직함의 음악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당신의 음악을 할 것으로 믿는다. 이제껏 해오던 대로 비슷한 노래를 부를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되지만은 않는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보라. 그때도 서태지가 모든 것을 했지만, 그룹을 해체하고 서태지만 남은 후 어떻게 됐는가? 본인은 '나는 여전히 계속 음악을 했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지금의 서태지는 옛날의 서태지가 아니다. <장기하와 얼굴들>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아이들' 없는 서태지가 자연스럽게 사라졌듯이, '얼굴들' 버린 장기하도 중심부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항상 당신의 음악을 응원함을 기억하시길~~!


이전 20화 딸에게 쓰는 편지 59; 양희은을 찬양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