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처럼 태생이 삐딱한 사람들은 누가 특별한 대접을 받는 걸 보면 속이 뒤틀리지. 좋게 보면 ‘평등주의’가 충만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은 ‘남 잘되는 꼴 못 보는 심리’라고 보는게 맞을 거야.
‘나도 저 사람만큼 잘났다고!’ 하는 마음이 있는 거지. 그러나 막상 나 자신을 그렇게 대하거나 칭찬을 하면 못 견뎌 하는데, 일종의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봐야지.
어젯밤 SBS에서 <레전드 12>라는 음악 프로그램을 방송했어. 레전드급의 가수 12명이 나온다는 말인데, 그 중에서도 특별한 대접을 받는 가수가 나와. 한참 방송을 하는 중간에 특별한 등장을 통해 소개를 하는, 말하자면 ‘레전드 중의 레전드’였던 거지.
그는 양희은이었어. 아빠의 성향대로라면 ‘뭐야? 왜 저 사람을 특별 취급해?’라고 불평해야 맞지. 그런데 아빠는 전혀 그런 마음이 안 들고, 오히려 그런 깍듯한 대접에 내 마음을 더했어. 그 공손한 예의에 내 마음을 보태서 양희은을 맞이했던 거야.
그렇게 양희은의 노래를 좋아하느냐고?
물론 좋아하지. 김민기 양희은 송창식 이장희... 아빠의 사춘기 시절을 함께한, 말하자면 함께 큰 동네 형들 같은 느낌이니까.
전에도 얘기한 적 있지만, 좋아한 걸로 치면 이장희가 최고지. 아빠는 이장희를 열정적으로, 그의 모든 것을 좋아했어. 노래, 목소리, 말투, 웃음소리. 생김새까지. 이장희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아빠의 최애 인물이야.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렇다고 해서 이장희가 특별한 대접을 받는 걸 좋아하진 않지. 그렇게 훌륭한 가수도 아니고, 그렇게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도 않았으니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잖아?
아빠가 양희은을 추앙하고 찬양하는 마음을 갖게 된 계기가 있어. 가수로서보다 인간으로서의 태도 때문이야.
물론 양희은은 가수로서도 훌륭해.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옛날 가수들이 나와서 옛날 자신의 히트곡 부르는 걸 아주아주아주 싫어해. 노래라는 건 기분과 감정이 담겨야 되는데, 20대의 노래를 4,50대가 부르면 같은 감정이 날까? 나는 앵무새처럼 옛날을 복제하는 그런 가수들이 싫어.
양희은은 달라. 지금 자신의 감정과 생각으로 노래를 불러. 자기 나이에 맞게 새로운 노래를 꾸준히 발표도 하고. ‘뜻밖의 만남 프로젝트’라고 해서 윤종신, 이적, 악뮤, 성시경 등 후배 가수들과 새로운 노래도 해. ‘과거의 나’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현재의 가수로서 계속 활동을 한다는 말이야.
나이가 들면 모든 게 바뀌기 때문에 당연히 창법도 바뀌지. 아빠는 이장희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이장희가 다시 노래하는 건 절대 반대야. 늙은 목소리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부르는 건 상상만 해도 역겨워. 감정과 정서는 흉내로 되는 게 아니거든. 지금 자신의 감정으로 ‘모두 드리리’ 해야 되는데, 그게 되겠어? 모두 준다는 것은 젊음의 언어거든. 늙어서 그렇게 말하는 건 거짓말이거나 사기꾼이거나 미친 거라고 아빠는 생각해.
양희은은 창법이 바뀌었어. 전문가가 아니어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 양희은은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노래를 한다고 생각해. 뭐랄까, 옛날에는 곱게 설명하듯 꼼꼼하게 노래를 했지만 지금은 툭! 던지듯 발성을 한다는 느낌? 감정이나 생각을 정확히 묘사하기 보다는 그 핵심을 확! 한 번에 까보이는 식으로 노래를 해. 잔 설명이 없지만 핵심을 포함하고 있지.
얘기가 잠시 잠실로 빠졌는데(오랜만에 아재 개그 한 번 해봤어. 미안!) 다시 돌아와서, 아빠가 양희은을 찬양하게 된 계기.
광화문 촛불시위 할 때였어. 양희은이 시위 행사 중간 노래를 하러 나왔지. 노래를 세 곡인가 불렀는데, 솔직히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생각 안 나. 뭐, <상록수> <아침이슬> 그런 노래하지 않았을까?
아빠가 분명히 기억하는 건 노래가 아니라 양희은의 태도야. 노래가 아니라 그 상황, 촛불시위라는 상황을 대하는 태도. 아빠는 양희은의 그 태도에 감동한 거고.
조용한 어둠 속에서 양희은이 등장했지.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 환호 속에서 양희은은 세 곡의 노래를 불렀어. 아빠가 놀란 것은 그 노래를 하기 전, 노래를 하는 중간, 노래가 끝나고, 양희은은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야.
그 동안에도 많은 가수들이 나왔고, 그들은 여러 가지 격려의 말이나 기타 등등의 말을 쏟아내었지. 원래 시위란 말의 축제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건 아주 당연한 일이야. 오히려 말을 하지 않은 양희은이 이상한 경우지. 응원을 하러, 격려를 하러 나왔는데 아무 응원의 말, 격려의 말을 하지 않은 거야. ‘그냥 노래만’ 한 거지. 딱 노래 세 곡만.
그 자리에서 양희은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본인의 언급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어. 다만 아빠는 그날 현장에서 그 모습을 보고 느낀 것을 말할 뿐이야.
노래 시작하고 노래 중간 잠시 머물고 노래 끝나고 물러날 때까지 양희은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그렇게 무대를 내려가는 모습을 모면서 아빠는 ‘대단하다!’고 감탄을 했어.
50만이라고도 하고, 100만이 넘는다고도 하는 촛불 앞에 선다는 건 엄청난 일이야. 그 많은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다는 건 기절할 만큼 좋은 일이지. 그 순간 나는 세상의 중심이 되고 만인의 주인이 되는 거야. 뭔가,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순간이란 거지. 그래야 ‘내가 주인공이다!’라고 도장을 찍는 거니까. ‘이건 내 시간’이라고 확인을 하는 거니까.
그런데 양희은은 그 확인을 포기한 거야. 자기가 이 시간의 주인공임을 포기한 거지. ‘이 시위의 주인공은 여러분 100만 대중이고 저는 그저 여러분에게 조그만 위로를 드릴 뿐입니다.’라는 겸손한 태도. ‘드릴 수 있는 게 노래밖에 없어서 죄송합니다.’라는 소박한 자세. ‘그나마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노래를 드립니다’라는 헌신의 마음..
그 시간 이후 아빠는 양희은이라는 사람을 존경하게 되었어.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고 노래를 열심히 찾아듣지도 않았지. ‘넌 이름이 뭐니?’ ‘그래,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자주 쓴다는 우스개를 들어서 알고 있는 정도?
그러나 그날 밤 양희은이 보여준 태도는 아빠의 마음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 마음에서 승복을 한 거야. 잘 알려진 사람 중에서 ‘저 사람 존경할 만하다’고 하는 이가 김민기 정도였는데 양희은이 추가가 된 거지. 아빠는 양희은을 존경해.
사랑하는 딸!
알고 있지? ‘양희은은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하려고 이 편지를 쓰는 건 아니라는 것.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람에게는 ‘예의’라는 게 중요하다는 거야. 예의는 품격을 만들고 품격은 세상을 활기차게 돌아가게 해. 세상이라는 기계장치에 기름 같은 거라고나 할까?
어젯밤 <레전드 12>에서 양희은이 대우받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날 양희은이 100만 촛불 군중을 대하는 예의가 떠올랐어. 가끔 아빠가 너한테 ‘예의가 지나치다’고 하던 것 기억나니?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고 하잖아.
예의란, 그날 양희은의 경우에서 보듯이, 자신과 남을 똑같이 존중하는 것에서 나와. 더도 덜도 아닌 평등한 관계가 예의의 출발점인 거지. 아빠는 네가 예의 바른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래.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쭈욱--!
-- 딸이 좀 더 자신에 대한 예의에 신경 쓰길 바라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