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사람은 아름다운 노래도 삐딱하게 듣습니다.
식사 시간마다 노래를 듣지요. DJ는 여편이고, 노래는 그의 핸드폰 플레이 리스트에서 나옵니다. 가요부터 클래식, 팝까지 동서고금 장르불문으로 노래가 들려집니다. 아이유의 최신곡까지, 트로트만 빼고 다 들어본 것 같네요.
그때그때 DJ의 기분따라 나오는 노래가 다른데, 근래에 자주 들리는 노래가 악뮤(AKMU)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입니다.
아...
애절합니다. 이별의 아픔을 노래했다고 하는데, 절절한 사랑의 가사가 수현의 천사 같은 목소리에 얹혀져서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이건 분명히 무언가에 대한 대답인데?
뭐라고 했던 거지?‘
악뮤는 대부분 오빠인 찬혁이 작사 작곡을 하고, 동생 수현이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노래도 오빠 찬혁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일 겁니다.
일부러 몇 발자국 물러나
내가 없이 혼자 걷는 널 바라본다
옆자리 허전한 너의 풍경
흑백 거리 가운데 넌 뒤돌아본다
그때 알게 되었어
난 널 떠날 수 없단 걸
우리 사이에 그 어떤 힘든 일도
이별보단 버틸 수 있는 것들이었죠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중략)
사랑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포기하고
찢어질 것같이 아파할 수 없어 난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아름다운 노랩니다.
사랑의 상처가 영혼의 깊은 곳에 울림을 만들고, 그 울림이 노래로 되살아납니다.
근데, 이 노래는 무슨 말에 대한 대답일까요?
삐딱한 마음은 간절한 사랑도 그 틈새를 엿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문득 그 말이 생각났습니다.
사랑하던 상대가 헤어지자고 말하면서 했을 게 분명한 그 말...
“네가 그렇게 날 사랑한다면,
우리 이별까지도 사랑해줘.“
아......
잔인한 말입니다.
사실 이별 자체는 잔인할 게 없습니다. 회자정리... 그냥 당연한 자연사지요.
문제는 어떻게 헤어지느냐 하는 겁니다.
차라리 그냥, 간단하게,
“난 네가 싫어졌어. 헤어지자.”
그러면 안 될까요?
헤어지는 것 자체가 형벌인데, 거기에다가 그럴듯하게 덧칠된 유치찬란한 언어로 때린 자리 또 때립니다. 이별까지 사랑해 달라니요? 이별도 나의 일부이니, 나처럼 생각하고 사랑해달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이별이 내 사랑의 일부입니까? 이별은 사랑이 없어짐을 뜻하는 건데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기 언어를 접하고, 이 사람은 화도 못 냅니다.
순종하는 소나 양처럼,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고 중얼거릴 뿐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시 잘 해보자’라고 매달리거나 ‘절대 못 헤어져!’라며 떼를 쓸 텐데,
이 사람은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잔인한 회초리를 묵묵히 견디고
분노의 씨앗을 감싸 안고 마음을 불태웁니다.
그리고...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됩니다.
기름은 다시 불꽃을 일으켜서 아름다운 노래로 태어납니다.
저 같은 보통 사람이면 증오심 가득해서 돌아섰을 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면서...
삐딱한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어떻게 노래의 사연까지 사랑하겠습니까,
그저 노래를 사랑하는 거지요.
좋은 것을 좋은대로 즐기지 못한다고 여편은 구박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삐딱한 운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