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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Apr 01. 2021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삐딱한 사람은 아름다운 노래도 삐딱하게 듣습니다.    


식사 시간마다 노래를 듣지요. DJ는 여편이고, 노래는 그의 핸드폰 플레이 리스트에서 나옵니다. 가요부터 클래식, 팝까지 동서고금 장르불문으로 노래가 들려집니다. 아이유의 최신곡까지, 트로트만 빼고 다 들어본 것 같네요.     


그때그때 DJ의 기분따라 나오는 노래가 다른데, 근래에 자주 들리는 노래가 악뮤(AKMU)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입니다.     


아...     


애절합니다. 이별의 아픔을 노래했다고 하는데, 절절한 사랑의 가사가 수현의 천사 같은 목소리에 얹혀져서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이건 분명히 무언가에 대한 대답인데?

뭐라고 했던 거지?‘     


악뮤는 대부분 오빠인 찬혁이 작사 작곡을 하고, 동생 수현이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노래도 오빠 찬혁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일 겁니다.   


  

일부러 몇 발자국 물러나

내가 없이 혼자 걷는 널 바라본다


옆자리 허전한 너의 풍경

흑백 거리 가운데 넌 뒤돌아본다     


그때 알게 되었어

난 널 떠날 수 없단 걸     


우리 사이에 그 어떤 힘든 일도

이별보단 버틸 수 있는 것들이었죠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중략)     


사랑이라는 이유로 서로를 포기하고

찢어질 것같이 아파할 수 없어 난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아름다운 노랩니다.

사랑의 상처가 영혼의 깊은 곳에 울림을 만들고, 그 울림이 노래로 되살아납니다.     


근데, 이 노래는 무슨 말에 대한 대답일까요?     

삐딱한 마음은 간절한 사랑도 그 틈새를 엿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다 문득 그 말이 생각났습니다.

사랑하던 상대가 헤어지자고 말하면서 했을 게 분명한 그 말...     


“네가 그렇게 날 사랑한다면,

우리 이별까지도 사랑해줘.“     


아......     

잔인한 말입니다.     


사실 이별 자체는 잔인할 게 없습니다. 회자정리... 그냥 당연한 자연사지요.

문제는 어떻게 헤어지느냐 하는 겁니다.     


차라리 그냥, 간단하게,      

“난 네가 싫어졌어. 헤어지자.”     

그러면 안 될까요?    

 

헤어지는 것 자체가 형벌인데, 거기에다가 그럴듯하게 덧칠된 유치찬란한 언어로 때린 자리 또 때립니다. 이별까지 사랑해 달라니요? 이별도 나의 일부이니, 나처럼 생각하고 사랑해달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이별이 내 사랑의 일부입니까? 이별은 사랑이 없어짐을 뜻하는 건데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기 언어를 접하고, 이 사람은 화도 못 냅니다.

순종하는 소나 양처럼,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고 중얼거릴 뿐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시 잘 해보자’라고 매달리거나 ‘절대 못 헤어져!’라며 떼를 쓸 텐데,

이 사람은 그 말을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잔인한 회초리를 묵묵히 견디고

분노의 씨앗을 감싸 안고 마음을 불태웁니다.


그리고...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됩니다.

기름은 다시 불꽃을 일으켜서 아름다운 노래로 태어납니다.

저 같은 보통 사람이면 증오심 가득해서 돌아섰을 일로 예술작품을 만들어 냅니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면서...     


삐딱한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어떻게 노래의 사연까지 사랑하겠습니까,

그저 노래를 사랑하는 거지요.     


좋은 것을 좋은대로 즐기지 못한다고 여편은 구박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삐딱한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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