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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Mar 12. 2019

딸에게 쓰는 편지 35; 주인으로 살기의 어려움에 대해


사랑하는 딸!

새내기 대학생으로서의 생활은 재미있니? 밤늦게 오자마자 쓰러지는 때도 있는 걸 보면 마냥 즐겁기만 한 건 아닌듯한데, 그 정도 육체적 피곤함이야 오히려 달콤한 고통 아니야? 달콤한 초콜릿이 가진 약간의 쌉쌀함 같은.

재수생활 내내 하루 종일 앉아만 있다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려니 힘들기도 할 거야.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고. 네 말대로 등산을 해야 하는 학교이다 보니 체력이 달린다고 투덜거려도 비난할 수는 없네? 어쨌든 좋아! 때는 봄이고 너는 대학 신입생이니 신나게 달려보자고!


대학 생활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대개는 두루뭉술 대답하던 네가 똑 부러진 대답을 한 게 ‘전도를 많이 한다’는 거였어. 학교 안에서 전도를 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고 했지. 그것도 아주 집요하고 끈질기다고. 그 사람들 나름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던 것 같고...


네가 받아온 전도지를 토대로 검색해보니 신흥 기독교 종파의 사람들이야. 아빠가 아는 건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모르몬교, 여호와의 증인 뭐 그런 정돈데, 그 종파는 안식교에서 파생된 독자 종교라고 하더라고. 당연히 이단 논란이 있고.


‘그 종교가 이단이니 멀리해라’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야. 사실 모든 신흥 종교는 이단 시비를 받기 마련이니까. 모든 진보나 전위는 기성체제의 배척과 공격을 받으며 성장하는 거니까. 그 종교를 믿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이단이라고 배척하는 사람은 또 그 사람들대로 이유가 있겠지. 그건 우리 문제가 아니니까 굳이 따지고 들 필요가 없다고 봐.


우리 문제, 정확히 말하면 너의 문제를 얘기해 보자. 너는 그 사람들이 귀찮았겠지. 관심이 없다고 말해도 그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따라오며 말을 걸었어. 너는 수업을 들으러 바삐 가야 하는데, 그 사람들은 그런 네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 보였지. 하루 이틀, 한두 번도 아니고 너로서도 짜증 나는 일이야. 오죽하면 네가 “염주를 구해서 차고 다닐까?” 하고 농담했겠어? 그만큼 그 사람들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겠지?


네 말을 듣고 아빠는 ‘네가 거절을 정확하게 하지 않아서 그렇다. 단호하고 확실하게 거절 의사를 표시해라’라고 말했지만 너는 수긍하지 않았어. 그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는 거지. ‘네가 겉으로는 거부하지만 속에서는 계속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단절을 해야 떨어진다’고 아빠가 말해도 너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어. 거기다가 성폭행의 경우까지 함께 곁들여서 얘기했으니 너의 반발이 커진 것도 당연지사. 너를 비난하는 것처럼 들렸다면 미안. 사과할게. 아빠는 네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게 아냐. 이제는 너도 어른이니까 같은 성인으로서 정확한 얘기를 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확한 계산을.


이건 옳고 그름이나 논리가 아니라 순수하게 물리의 문제야. 세상일을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고, 철저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따지는 거지. 누가 내게 무리한 부탁을 한다고 하자. 그 사람이 부탁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어. 강제로 못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 사람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니까, 범죄가 아닌 한 부당한 처사지. 내가 그 사람을 피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계속 쫓아오고 말고는 그 사람의 뜻이야. 내가 결정할 수 없어. 그러면 그럴 때, 나는 원하지 않는데 그 사람이 계속 쫓아올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앞에서 ‘마음속에서 단절을 해야 끊어진다’고 한 말을 취소할게. 내 마음을 내가 모르는데, 어떻게 단절을 해? 일단 우리가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만 얘기하자. 보이는 것, 구체적인 행동은 가장 물리적인 거니까 확실히 알겠지?

일단, 나의 생각을 가장 강력한 말로 표시해. ‘나는 더 이상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다. 만약 또 나에게 접근하면 그땐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 뭐, 그런 식으로. 그래도 계속 쫓아오면? 그땐 또 그때의 선택이 있겠지. 실제로 경찰에 신고를 하거나, 아니면 부딪쳐서 싸우거나.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히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네 말대로 불교 믿는 척 염주를 하거나, 다른 길로 피해 다니거나 하는 등 나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하게 되는 거지. 그러면 안돼. 왜냐? 나는 내 인생의 주인이니까. 주인이란 나의 의지로 내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이니까.


지난번에 쓴 ‘딸에게 쓰는 편지 33-축 합격. 이젠 네 세상이다!’에서 했던 얘기를 되살려보자.


... 홀가분한 마음에 수다가 길어질 것 같으니 짧게 한 마디만 할게. 그 동안은 정해진, 주어진 틀에서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네가 주인공이 되어 살아야 한다는 것. 네 스스로 인생을 계획하고, 목적을 세우고, 구체적으로 행동해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이 세상의 주인은 너고, 모든 것은 너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 '이 세상은 내 세상'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이제 겨우 스무 살, 막 대학 합격 통지를 받은 새내기 대학생에게 '이 세상은 네 세상이다'라고 말하는 게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아빠도 용기를 낼게. 용기를 내어 더 강조해서 말할게, 이 세상은 네 세상이고, 이 세상의 주인은 너라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에 너만이 유일한 존재이고(부처가 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의 모든 것은 너의 뜻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물론 믿어지지 않을 거야. 아빠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될 거야. '나는 지구 상 80억 가까운 호모 사피엔스 중 하나에 불과하고,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은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아빠는 그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너는 80억 인류의 중심에 있고, 네가 없으면 인류는 물론 이 우주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거야. 너라는 개체가 눈을 뜨면서 이 세상도 생겨났고, 네가 죽으면 이 세상도 소멸한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그러므로 너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주관자이자 책임자이며, 네 생각 네 행동이 세상의 운동에 결정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세상의 모든 것은 각자의 계획에 따라 배치되어 있어. 엄마 아빠가 너와 가까이 있는 것은 네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야. 아빠가 뉴욕을 좋아하고 이과수 폭포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렇게 멀리 두는 것은 (구체적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거야. 세상 모든 일은 각자가 그렇게 되기를 원해서 일어나는 거야.

    --‘딸에게 쓰는 편지 33-축 합격. 이젠 네 세상이다!’ 중에서


지금 내 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믿어지지 않아도, 내가 바라던 일이 아니라도 부정하고 싶어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인과법이니까. 될 대로 된 거니까. 현실을 인정하고, 일어난 현실과 내가 원하는 것과의 대차를 살펴서 간격을 좁혀가야 한다. 그게 인생살이의 과정이다. 그 대차를 좁혀서 결국 나와 세상이, 내가 원하는 것과 실제가 하나가 되는 것, 그게 우리가 궁극적으로 이뤄야 할 인간의 길이다.


사랑하는 딸!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기를. 불화를, 실패를 겁내서 하고자 하는 바를 포기하지 말기를. 너는 이제 너의 삶을 시작하는 시기이고, 그러한 싸움과 불화와 실패를 통해 성장할 거야. 그게 너를 알아가는 과정이니까. 너와 세상 사이의 간극을 줄여가는 필요조건이니까.


<매트릭스>라는 영화, 본 적 있나? 그 영화를 보면 마지막에 깨달음을 얻은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함)가 총알을 멈추게 하는 장면이 있어.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네오가 빌런인 스미스 요원이 발사한 총알을 보고 “그만!”이라고 말해. 급박한 상황이지만, 차분한 어조로 단호하게 말하자 날아오던 총알이 멈춰버리지.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와진 거야.


내일도 학교에 가겠지? 학교에서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거든 네오처럼 너도 조용히 말해줘. “그만!”

그리고 너의 길을 가. 네오는 슈퍼맨처럼 하늘로 올라가던데, 너는 어디로 가려나? 그게 어디 건, 그곳이 너의 시간 너의 공간이 되기를 아빠는 바랄게

 --- 네가 세상의 주인공임을 잊지 말기를 바라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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