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하태평 Apr 26. 2019

동생에게 5;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가기 싫다고 투덜대면서 여행을 갔는데, 잘 지내고 있는지?

중학교 동창들 다섯이서 태국으로 간다고 했지. 40년 넘게 절친으로 지냈지만 함께 여행하는 건 처음이라고 했어. 너는 워낙에 여행에 취미도 없고 일도 많아 가기 싫다고 했지만 친구들의 강권에 못 이겨 결국 떠나고 말았지. 집 텃밭에 할 일이 많다고, 하필 농사꾼이 제일 바쁠 때 스케줄 잡았다고 여전히 투덜대면서. 


“고사리 두릅 따야 되는데...”


사랑하는 동생아.

고사리 두릅 네가 안 따도 돼. 그거 안 하려고 여행 가는 거야. 여행을 그저 ‘한가한 사람들의 팔자 좋은 짓’이라거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식의 보너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여행은 그것 이외에 훨씬 가치 있는 것들을 우리에게 줘.


여행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떠난다’는 거야. 떠난다는 것은 ‘여기’를 전제로 하고 있지. 나의 터전, 나의 집, 나의 생활, 나의 일과, 내가 할 일, 나의 패턴을 벗어나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거야. 고사리 두릅을 다 따고 남는 시간에 가는 게 아니라, 하던 일을 정지하고 그냥 떠나는 게 진짜 여행이라는 말이지. ‘나의 세계’라는 굴레를 벗어버리고 열린 시간 열린 공간에 나를 던지는 것, 그게 여행이야.


이러한 ‘나의 일상과의 의식적 단절’이 중요한 이유는 그 과정을 통해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야.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고, 우리가 정해진 생활 속에 안정하다 보면 고착된 상태가 되기 쉬워. 어떤 틀이 생기는 거지. 그게 심해지면 나와 세상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세상은 나와 상관없는 다른 것이 되어 버려. 많은 사람들이 ‘블랙홀이 어떻다고? 그건 나하고 아무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지.


여행은 의식적으로 그런 단절을 해소하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어. 사실 여행 가봐야 결국은 똑같지. 어딜 가나 그 사람들도 똑같이 먹고 놀고 일하고 자고 하는 일상의 연속이잖아. 나는 여행이 중요한 이유는 그걸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태국 방콕 혹은 파타야의 사람들과 내가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체험은 동질감과 연대의식을 만들어내지. 내가 확장되는 거야. ‘나와 가족’이라는 좁은 틀에서 ‘나-한국인-태국인-세계인-우주인’으로 넓어지는 거지. 


시간이 지나고 여행의 흥분이 진정되면서 생생하던 느낌은 사라져 가고 있어.

꿈이었던 것처럼 아스라이 멀어지는 감흥과 달리 생각은 점점 구체적이고 뚜렷하게 정리되는데, 그중 첫 번째가 뭔지 아니? 이번 유럽 여행을 통해 아빠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 그건 바로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이야.


이걸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일단,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말을 ‘나는 우물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밖에 나가보니 훨씬 넓은 세상이 있더라’는 의미로 생각하지는 말아줘. 우리나라가 좁다는 식의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심리적, 정신적 의미가 훨씬 크니까.


대한민국 서울에 사는 이 아무개라는 평면적 인식에서(어쩌면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 대한 자각도 별로 없었을 듯...) 전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포함하고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연대되어 있는 입체적 자아로서의 나임을 실감하게 됐어.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영화를 보면 박제된 공룡이 살아나잖아? 그것처럼 죽어있던 역사가 살아있는 현실로 아빠한테 경험이 된 거지.


모나리자라는 그림이 옛날 르네상스 시대의 다빈치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 지금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감상하는 현재의 그림이 된 거야. ‘루브르에 가면 있대’라는 우물 안 개구리 입장이 아니라 ‘루브르에 가면 있어’라는 범지구적인 공간 개념이 형성된 거야. 아빠 자신을 이 지구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거지.


여행이 끝나고 아빠는 다시 우물 안 개구리로 돌아왔어. 

하지만 아빠는 더 이상 옛날과 똑같은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야. 전에는 우물을 내 세상의 전부로 알고 살았지만(밖에 이런저런 세상이 있대,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대...) 이제는 아니야.

여전히 우물 속이 내 생활의 터전이고 우물 안이 내 영역이지만, 더 이상 넓은 바깥을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나는 지금 이 우물 속에서, 세계인들과 함께, 지구라는 아름다운 행성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주인공인 거야.


루이 14세는 ‘내가 곧 국가다!’라고 했다는데, 아빠는 ‘내가 곧 지구다!’까지는 아니어도 이렇게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 ‘나는 지구의 개구리다!’라고...

   --‘딸에게 쓰는 편지 18; 앙코르와트, 파르테논, 이과수 폭포’ 중에서


나만의 특수한 경험일까? 나는 지금도 로마의 유적지 ‘포로 로마노’에서 실감한 것이 생생해.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제국의 중심가였다고 해. 지금은 대부분 무너지고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지. 한쪽 끝에는 그 유명한 콜로세움이 있고.

더운 여름이라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옛날 로마제국이었던 때가 되살아나는 거야. 그냥 남의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과거가 떠오르는 것처럼 실감되면서 나의 삶 속으로 들어왔어. 나와 로마가 공간에서 뿐 아니라 시간에서도 하나가 된 거지. 내 안에 로마의 과거와 현재가, 지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온 우주가 함께 있음에 감사!


여행은 궁극적으로 나와 남의 경계를 허물고, 여기와 저기의 구분이 사라지고 우리와 세상은 모두 하나라는 깨달음을 줘. 여기까지가 인간의 길이야. 그 한계성과 유한함을 느끼고 절대적 존재를 찾아가다 보면 신의 존재를 실감할 수도 있겠지. 나는 신이 있다고 믿지만 로마를 실감했듯이 신의 존재를 실감하지는 못하는데, 그때가 오기를 기도하고 있어. 

너는 믿음이 깊으니까 그런 체험도 훨씬 쉬울 거야. 하나님이 언제 어디서나, 나와 우리와 세상 모두와 함께 한다는 체험. ‘I Am That I Am.’이라는 말의 확실한 실감...


사랑하는 동생.

아마 여행과 음식은 요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일 거야. 방송이나 인터넷에는 여기에 대한 각종 볼거리들이 넘쳐나지. 문제는 단순한 물리적 호기심에 매몰되기 쉽다는 거야. 그러다 보면 쳇바퀴 돌 듯 새로운 곳 새로운 음식을 찾아다녀야 하지. 바람둥이가 새로운 짝을 찾아 이 사람 저 사람 헤매듯 끝이 없어. 이번 여행을 끝내고, 혹시 너도 ‘와! 여행 진짜 재밌다. 또 갈 거야.’하고 흥분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 또 어때? 또 가면 되지. 그러다 보며 때가 올 거야. 여행하기 싫은 마음이 사라지고, 여행을 가도 좋고 고사리 두릅을 따도 좋은 그런 때가 오겠지. 여기 있으나 거기 있으나 늘 함께 하는, 나와 세상의 일체감 속에서 사는 그런 때가 오겠지. 오직 기쁨과 감사와 환희만이 가득한 그런 때가.


아참! 내가 ‘아마 둘째 날 밤쯤에는 서로 싸우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어떻게 되나 궁금하네? 싸우는 것도 여행의 과정이니까, 잘 싸우고 잘 수습하기를 바랄게.

  -- 하룻강아지 세상에 보낸 것처럼 걱정이 되는 오빠가.


매거진의 이전글 딸에게 쓰는 편지 37; 너의 전성기는 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