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6
18.
한기가 돈다. 창문엔 손자국이 남았고 손바닥마다 습기가 맺혀서 울고 있다. 꽤나 을씨년스럽다. 냉기와 별개로 따듯한 하루를 보내었다. 흉금에 둔 날붙이가 무뎌지는 경험을 하고 가슴안의 상처가 보드라운 거즈로 덧대어지는 경험을 했다. 그리고 나는 내심 그것만큼 세상이 보드라운 순간으로 가득 찰 수 있다면 가슴앓이를 하는 순간은 없겠구나 싶었다.
개구리 손바닥 같은 얼룩은 분명 내가 창을 열면서 은연중에 남긴 것이다. 그것은 내부로부터 외부를 향해 난 것이다. 내면의 득시글거리는 것들을 내보내기 위해 약간의 틈을 두고 연기처럼 뱉어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외부로부터 그것을 느낀다. 그것들이 내 방의 일부로 깃들기 위해 손톱을 긁은 자국처럼 느낀다. 하지만 결코 아니다.
차가운 공기가 흐르다 머물면 근처의 새들은 어디로 갈까. 문득 궁금해진다. 저렇게 큰 구름들을 들어 올려서 굴리는 바람이라면 붕새(鵬)라도, 알바트로스라도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유난히 따듯한 겨울날을 보내었다. 잠기운에 취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연결 짓다가 그만두었다. 얼어붙는 분종. 따듯한 온실. 그리고 그 외로 무엇인가가 있다. 단단한 견갑을 지닌 딱정벌레 같은 인간들이 있다. 그 소외된 사람들은 토굴 속에 맺힌 작은 고드름처럼 단단히 매달려있다.
19.
비극은 종종 그 자체로 주어진다. 어떠한 계기도 없이 그저 길을 걷다 주운 분실물처럼 그저 주어졌다가 아로새겨진다. 저마다의 비극을 자랑하는 장에 몸을 섞는다면 그것은 희극이 된다. 온실 속의 인간이 구태여 밖을 직면해야 한다면 온실이 부서지는 순간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는 그것을 현실이라 말할 것이다. 그 조소 앞에서 그는 철저하게 무너질 수도 있다. 비극보다도 말 한마디가.
앞의 모든 것들에 암막을 치고 적는다. 그 무엇도 알 수 없다. 그러니 희구를 하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고. 손바닥에 쥘 수 없는 것들을 쥐려하기보다는 그저 비극이라 여겨지는 현실을 거머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