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존재, 나의 세상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말인지도 모를 만큼 널리 퍼진 말이자 주로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독려할 때 필수처럼 들어가는 말이 있다.
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야.
그런데 과연 하나뿐인 존재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의미가 무엇이기에 위로와 독려를 하는데에 최적화되어 자리를 잡았을까?
책 <어린왕자의 눈>에도 이러한 부분에 대한 글이 담겨있다. 아니 정확히는 먼저 <어린 왕자>에서 하나뿐인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꽤나 큰 이슈였기에 <어린왕자의 눈>에서도 그 부분에 대한 서술을 하고 있다.
잠시 책의 내용을 먼저 언급하자면, 어린 왕자가 장미를 두고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은 어린 왕자에게 있어 일생일대의 충격적인 사건이자 내용 중 가장 극적인 내용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처음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에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가 되는지 잘 알지 못했었다. 적어도 인간으로 태어나 지구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겐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허나 이 책의 저자는 이 대목이 없었다면 여우의 등장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서술한다. 이 책이 장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까지 너무나 우습게도 나는 장미는 제쳐두고 여우만을 맹목적으로 좋아했다. 하여 장미가 없었으면 여우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이 대목은 나에겐 가히 충격이었다.
'단 하나뿐인 존재' 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정말로 유일무이한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의 의미와 상대적으로 나에게 있어 하나뿐인 존재라는 의미.
전자의 경우를 생각하자면 뭐가 있을까 싶을 만큼 쉽사리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라면 모든 것을 대입할 수 있을 만큼 그 존재는 다양해진다.
어린 왕자에게 있어 장미는 전자의 의미였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후자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법을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하나뿐인 장미는 세상 유일한 존재였지만 지구에 와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동안 어린 왕자가 알았고 생각했던 유일한 것이자 모든 것이 흔들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정립한 세상이 무너진 어린 왕자에게 하나뿐인 존재에 대한 후자의 개념을 알려주기 위해 여우가 등장한다.
사실 '하나뿐인 존재'라는 것에 대해 전자와 후자의 개념을 구분하지 않더라도 이 부분은 누구에게나 정말 중요한 문제이고 일생이 걸릴 수 있는 문제다. 여우의 말을 빌리면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쓰고 길들여짐으로써 저마다의 관계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관계엔 부모와 자식, 친구, 연인, 반려동물, 반려식물 하물며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작가와 독자 등 내가 마음을 쓰고 시간을 쓰는 모든 존재가 포함될 것이다.
어린 왕자에게 있어 장미는 단순 반려식물 개념이 아닌 친구이자 연인이었다. 어린 왕자의 입장에선 내가 사랑하는 존재와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오천명이나 나타난 셈일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실로 엄청난 대혼란이다.
존재와 관계, 그리고 그 속에 하나뿐인 존재라는 의미는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우리네 삶에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게끔 매체부터 주변 사람들까지 너무나 다양하게 겪으며 산다.
문득 생각나는 한 예를 들자면, 아이에게 있어 엄마나 아빠는 세상 하나뿐인 존재이다. 그러나 만약 사고든 사건이든 어떠한 일로 인해 새로운 부모가 나타났을 때, 원래의 부모를 곁에서 보내고 새엄마 혹은 새아빠를 맞이하는 것은 아이에게 있어 인생 최대의 위기 순간이 될 것이다.
'단 하나뿐인 존재'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어린 왕자의 관점에서 그 존재가 오직 하나였어야 한다면 사람도 이미 전 세계 인구에 비추어 유일한 존재가 아닐 테지만 우리는 개개인을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라고 말한다.
상대적이지만 더 강력한 길들여짐과 관계라는 여우의 관점이 대입되는 것이다.
나에게도 어린 왕자의 장미 같은 존재가 있다. 베리라는 이름을 가진 까만 코 회색 고양이 러시안블루다.
허나 인스타그램만 봐도 그냥 검색만 해도 세상엔 수많은 러시안블루가 있고 까만 코 회색 고양이가 있다.
누군가들이 키우면서 귀엽고 예쁘다고, 혹은 왜 이러는 거냐고 올라오는 고양이들의 비슷한 표정, 행동거지들을 보고 있다 보면 베리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들도 없지 않다. 무늬를 가진 아이들은 무늬의 모양이나 위치라도 다르다지만, 러시안블루는 그런 것도 없이 온통 회색이라 유난히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베리가 수많은 러시안블루 중 하나일지라도 내가 세심하게 돌봐주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를 형성했기에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혹여나 이러한 존재가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 누군가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에 대한 애착이 과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겐 애착관계가 형성된 무엇이 없는 걸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존재에 대한 애착이 아니어도, 누구나 자신이 살아오던 삶에 대한 하나뿐인 세상이 있다.
그리고 때때로 슬럼프라는 단어로 묶여 '이 일을 내가 계속하는 게 맞나?', '내가 여전히 이걸 좋아하는 건가?' 하는 등의 생각을 하곤 한다.
하나뿐인 존재가 흔들린다는 것은 곧, 그동안 알아오고 보아 오고 존재하고 생각해오던, 그것이 전부일 것이라 믿었던 나의 세상이 흔들린다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이 흔들리는 것은, 내가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쓰며 길들인 관계가 뒤흔들리는 것이다. 어린 왕자가 인생의 위기를 맞이하고 충격을 받은 '그때' 여우가 등장해 하나뿐인 존재라는 것에 대해 집착을 내려놓는 것을 어린 왕자에게 알려준다.
글의 말머리에 적었던 "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야"라는 말 역시 상대적인 개념이다. 누군가에겐 하나뿐인 딸/아들이고 하나뿐인 친구이며 하나뿐인 연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뿐인 세상이다.
그 말을 건네던 사람들은, 때때로 힘들어도 곧 괜찮아질 것이니 무너지지 말고 굳건하게 나아가라는 하나뿐인 세상을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건네던 말이지 않을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위기에 놓일 땐 책이나 영화, 인생선배, 친구, 부모님 등의 존재가 자기만의 사막여우가 되어준다.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 하나뿐인 세상이 흔들리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며 그것을 이겨낼 방법을 또 찾아나간다.
그래서 그렇게 흔하디 흔한 말이지만 가장 강력한 한마디가 늘 전해진다.
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