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성 Feb 12. 2016

꿈이라는 굴레

줏대없기로는 어렸을 때부터 유별난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라는 건 어마무시하게 바뀌곤 했다. 할아버지가 점지해주신 의사부터 (할아버지는 역시 선견지명이 있으셨다.) 소방관에서 만화가가 되고 싶기도 했고 중학교 때는 프로그래머를 꿈꾸곤 했다. 대단한 포부나 미래를 고민하기보단 그 때 그 때의 관심사에 따라 바꼈다. 어떻게보면 공부말고는 답이 없던 학창시절의 소소한 일탈 정도였다. 좋아하는 만화나 게임을 죽도록 즐기고 지금까지의 공부와는 약간 거리가 있어보이는 직업을 꿈꿨다. 나름 이 획일화한 대한민국의 교육세태에 대한 소심한 반항이었다. 이 역시 그리 오래가진 못했지만.


무난하게 경제학과에 왔고 3학년이 됐다. 선배들은 하나둘씩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었다. 걱정이 없는 건지 그냥 개념이 없는 건지 이 때도 생각은 단순했다. '글쓰기를 좋아한다, 고로 기자가 괜찮겠네' 고민은 짧았고 결단은 빨랐다. 참 이럴 땐 쓸데없이. 기자를 선택하고 3년의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정말 간절했던 때도 있었고 될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가득찼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끝에 가서는 단점만 보였다. 기자의 단점도 단점이지만 이 직업을 채우기에 스스로 부족한 점이 많아보였다. 결국 자신감 부족, 핑계 비스무리한 그런 거다.


언론시험을 접고 바로 기업 원서를 써제꼈다. 운이 좋게도 뽑아준 회사가 있어 벌써 이년 차다. 그렇게 꿈은 흘러 흘러 샐러리맨 또는 직장인이라는 직함이 생긴 것이다. 신입사원 때 영업단 임원분이 하셨던 말이 기억이 난다. 여기있는 사람 중에 꿈이 직장인인 누가 있겠냐는 말이었다. 어떤 사유에서건 꿈을 이루지 못해 이곳에 온거라는 말이 쓰렸다. 슬프지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리 저 말이 가슴에 남았는지 모르겠다. 정말 직장인들의 꿈은 이제 정말 '꿈'으로만 남는 것일까.


얼마 전 회사생활이 지겹다 생각할 쯤 집에서 괜히 툴툴대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넌 뭐가 하고싶니?"라는 물음을 던지셨다. 선뜻 답이 안나왔다. "뭐 그냥 하고싶은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지내는 거지" 라면서 얼버무리고 말았다. 여전히 꿈은 불명확하고 확신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뭘 잘하는지도 아직 모르겠지만 '장래희망'의 굴레에서는 벗어나고 싶다. (어렸을 적 저 '장래희망'란을 적는 게 큰 고통이던 때도 있었다.) 수필가도 작가도 아니 그냥 끄적이는 사람도 좋다. '착하게 살자'는 좌우명 하나도 지키기 힘든 삶인데 언제까지 꿈과 장래희망마저 동일한 잣대로 봐야하는 것일까. 어린 아이들에게 공무원이 장래희망이자 꿈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 시대가 정말 '꿈의 굴레'에 갇혀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느닷없이 꿈 얘기를 하게 된 이유는 사실 수지 X 백현이 부른 노래 'Dream' 때문이다. 귀가 간지러울 정도로 달달한 이 노래를 듣다가 두 사람의 음색에 기분이 좋아져 꿈에 대해 한번 끄적여 보고싶었다. 전혀 다른 꿈에 대한 얘기긴 하지만 말이다. 가끔은 수지와 백현의 음색처럼 가벼워 질 수 있는 주제가 바로 꿈일텐데 우린 참 무겁고 진중하게만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글도 묵직하고 의미심장하게만 담으려다보면 오히려 자주 막히기 마련이다. 우리 인생의 꿈도 마찬가지다. 꿈에 대해 너무 무겁게만 생각하다 갈 길을 잃어버린게 비단 한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제는 장래희망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한껏 숨을 고르고 조금씩 만들어 갈 수 있는 꿈이 우리 가슴 속엔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눈 감고 내딛은 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