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무, 일상 단편
작년 11월부터 계속 된 생각은 시시하다는 것. 모든 게 시시하다. 꼭 전도서의 말씀처럼 헛되고 헛되고 모든 헛된 거 같다. 재미가 없어졌달까? 이제 겨우 서른으로 항해 가는 마음을 벌써 다 늙은 느낌이다. 청년의 껍데기 속에 500살 노인이 들어있는 느낌쓰. 피로 사회에 걸맞게 얼굴엔 고단함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사람들 틈에서 강남행 지옥철을 탄 것도 전생같이 너무 오래전 이야기 같다. 매순간 디깅하는 마음으로 살지만, 많은 것들이 휘발되는 느낌을 아시려나? 퍽 우울해 보인다고 해도 상관없다. 생리중이어서 그렇다는 변명거리가 하나 있으니.
일에 대해 계속 생각해 보게 된다. 어느 새 만나는 사람들(친구와 가족을 포함해서)과 일상을 나눌 때면 일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사실 이야기의 대부분인 거 같기도 하다. 하루 8-10시간 정도 한 공간에 머무는 우리에겐 일상(日常)이 아니라 '일(work)상일지도 모르겠다. 기똥찬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으면서 맘에 들지 않는 이야기는 샘솟는 우물마냥 해도해도 끊임없는지..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매일을 까먹는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말연초를 보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처럼 조금 더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지만, 여전히 기억해버린 사람이 되곤 한다. 하하.
부정의 생각이 언어가 되어 입 밖으로 토해지는 순간, 그걸 듣는 내 귀와 상대의 표정을 보는 내 눈 모두 오염되는 느낌이다. 좋지 않는 이야기가 재생산될 수록 스스로에게도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여실히 느낀다. 가끔은 정말 아차싶을 떄도, 여러가지 말들을 꾹꾹 참기도 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작년 이맘때 어느선가 주워들었던 토마스 데커의 말이 생각난다. 정직한 노동엔 아름다운 얼굴이 있다는데 일을 하다 모니터 옆에 놓인 동그란 거울 속 내 얼굴을 잔뜩 찌푸려서 있다. 좋아하는 과자를 사주지 않아 엄마한테 썽을 내던 7살 때 모습처럼.
가장 친하다고 생각한 동료가 퇴사를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마음이 상당치 좋지 않았다. 그의 어려움을 여러차례 전해 들었지만 잘 헤아리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이별에 대한 아쉬움, 그동안 잘 쌓아온 관계에 대한 허탈함 등 다양복잡한 감정이 한동안 나를 사로 잡았다. 그러다 문득 "아쉽고 슬프지만, 그래도 기꺼이 기쁘게"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항상 떠나는 사람의 위치에 있다가 최근 몇 개월 사이 남겨진 사람이 되어 살아가려니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내 뒷 모습을 보면서 남겨진 사람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여전히 대체로 친절하고 싶다는 소중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 여전히 미움과 애정이 함께 묻어나오는 이 곳을, 내일을, 매일을 잘 살아내고 싶다. 일과 일 사이에 사람이 있음을 잊어버리지 말자. 같이 시간을 자주 보내서 다행이다, 한 직장 안에서 이만큼 친해질 수 있어서 좋고 감사하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글로 마무리!
인간관계라는 게 꼭 버스를 타고 내리는 거 같아.
어떤 이와는 10분 같은 50년을 보내고,
또 다른 누구와는 다섯 정류장만 같이 가고.
때로는 옆자리에 가족과 친구들이 앉아 있을 때도 있지만,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어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도 있어.
각자 다른 정류장에서 타고 내리며 서로의 목적지를 찾아 나서는 게 참 신기해.
그래서 그 찰나의 만났다 헤어짐을 귀히 여길 줄 알고 웃으면서
안부와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