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먼저 떠난 이를 추모하는 방식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1997)

by 플레이

본 글은 영화를 해설하는 과정에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관람 후 읽으시길 권장드립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는 관객들을 만나기 이전부터 심판대에 오른다. ‘있을법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실제 이야기’에 근거하여 만든 것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화 기반’이라는 문구가 각종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장식됨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영화사에서 마케팅을 위해 포스터나 보도자료에 해당 문구를 활용하며 이를 적극 내세우기도 한다. 때때로 이런 현상을 볼 때면 조금 씁쓸하다. 이 영화가 역사적 사건을 왜곡하지는 않았는지, 혹은 얼마나 사실에 고증을 했는지에 대한 연출적인 결과는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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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개봉한 <타이타닉>역시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이다. 실제 타이타닉호는 1912년 영국 사우샘프턴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중, 항해 6일째인 4월 15일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했다. 건조 당시 ‘불침선’이라는 수식어로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출항했지만 무려 1,500명이 넘는 승객들의 목숨을 앗아가 결국 '사상 최대의 해난사고'로 기록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러한 실화를 기반으로 <타이타닉>(1997)을 제작했고 이 영화는 1998년 제70회 아카데미 시상식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어 작품, 감독, 주제가, 작곡, 미술, 촬영, 편집상 등 총 11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물론 <타이타닉>(1997)이 폭스의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상업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것과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캐스팅, 그리고 <터미네이터>(1984, 1991) 시리즈와 <에이리언 2>(1986) 등의 작품으로 이미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었던 제임스 카메론이 감독을 맡았다는 점을 미루어 봤을 때, 이 영화에 흥행이 뒤따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지만 개봉 후 22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도록 ‘잘 만든 실화 기반의 영화’라는 꼬리표로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는 데에는 카메론의 남다른 연출력이 돋보이는 ‘명백한 이유’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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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판에서 티켓을 구해 타이타닉호에 올라탄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뱅이지만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화가이다. 반면 막강한 재력을 가진 약혼자와 함께 1등실에 오른 로즈(케이트 윈슬렛)는 원치 않는 결혼과 자신을 억압하는 상류층의 허례허식에 질려 결국 자살 시도를 할 만큼 삶의 무의미함을 느낀다. 이렇게 태생부터가 다른 두 인물이 타이타닉이라는 배 위에서 만나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언뜻 보기엔 영화의 주된 이야기로 보이지만, 사실 잭과 로즈의 러브스토리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거드는 일종의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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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인공의 이야기에서 잠시 눈을 돌려보자. 영화에서 하나의 이미지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보통 앞쪽을 전경(Foreground), 뒤쪽을 배경(Background)이라고 말하는데, 감독은 전경과 배경이라는 이 요소를 영화의 초반부터 노골적으로 흘려보낸다. 극 중 나이 든 로즈는 테라스에서 한가롭게 도자기를 만들다 말고 집 안에서 들려오는 TV 소리에 집중해 천천히 시선을 돌린다. 이때 카메라는 로즈라는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배경엔 TV가 정보를 제공하며 교묘하게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로즈가 탐사정(探査艇)에 오르고 과거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전경과 배경을 활용하는 연출적 방식은 더욱 잦아진다. 로즈가 승선하는 씬에서는 배에 오르기 전 병균 검사를 받는 3등실 승객들과 큰 기대에 찬 하층민 부녀 등을 비춰준다. 잭이 승선 후 객실을 찾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엑스트라들을 잭의 등 뒤로 비춰주는데, 역시나 잠시 스쳐가는 정도의 분량에서 그치지 않고 카메라는 종종 초점을 주연배우에게서 벗어나 엑스트라에게 맞춘다. 뿐만 아니라 감독은 캐릭터의 감정변화를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만 보여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배경에 있는 인물의 행동을 비춰줌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주인공의 감정변화를 관객이 유추하게끔 만든다.


로즈의 엄마가 결혼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녀가 테이블 너머로 어린 여자아이를 바라보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이다. 로즈와 이 여자아이는 어떠한 인적관계도 없지만 아이가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고, 조신하게 무릎 위에 냅킨을 올리는 행동을 보여준다. 실제로 로즈는 이 배경 캐릭터의 행동을 보고 감정변화를 겪으며 결국 잭에게로 마음을 굳히게 된다.


대부분의 영화는 주인공을 카메라의 앞쪽(전경)에 위치시킨다. 그리고 관객은 앞에 있는 주요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주인공의 눈으로 이야기를 좇아간다.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를 볼 때, 자동적으로 앞에 있는 인물에 집중함에 따라 배경에 있는 인물들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시 말해 무의식적으로 전경에 있는 캐릭터에 집중하지, 그 뒤에 위치한 배경 캐릭터들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카메라는 주인공의 뒤에 어떤 인물들이 존재하는지, 그 인물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종종 보여준다. 이런 연출은 관객이 자연스럽게 무시하게 되는 배경과 배경 인물들을 결코 무시하지 못하게끔 만든다. 그래서 영화의 배경에 있는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임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게 된 관객들은 로즈와 잭뿐만 아니라 배에 타고 있는 많은 배경 인물들에 대해 각각 어떠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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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출이 차곡차곡 모여 영화의 후반부에 도달하면, 관객들은 가라앉는 배 위의 배경인물들을 잠시 비춰주기만 해도 감정의 홍수가 폭발해버린다. 배에서 떠나지도 못하고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며 잠재우는 한 어머니의 모습과, 이제 떠나자며 이별을 고한 후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는 악단의 쓸쓸함을 느끼며 흐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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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서 말하길 전경과 배경은 보다 추상적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게슈탈트의 이론 Art and Psychology 참조) 관찰자의 주의를 끄는 대상을 전경으로, 주의를 끄는 대상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상들을 배경이라 하는데, 이는 집중의 초점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전경과 배경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의 영화를 봐도 각각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캐릭터를 바라볼 때 관객이 캐릭터의 대사에 집중한다면 그것이 전경이 되고, 상대적으로 덜 집중하게 되는 캐릭터들의 행동은 배경이 되는 것이다. 때문에 제임스 카메론의 연출은 더욱 빛을 발한다. 영화의 중간중간 관객이 잭과 로즈의 러브라인에 과도하고 몰입할 때쯤 되면, 탐사대원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전경과 배경에 대한 선을 분명하게 긋는다. 나이 든 로즈의 이야기를 듣기 전, 탐사대원은 로즈에게 타이타닉호의 침몰 원인을 무미건조하게 설명할 만큼 아무런 감정이 없었지만 로즈의 이야기가 끝난 후 눈물을 흘린다. 이야기를 듣기 전과 후의 태도가 명백하게 달라진 것이다.


탐사대장 또한 마찬가지다. 영화 초반 “하지만 내 관심을 끄는 건 그 배 안에 있는 물건들이다.”라는 대사를 통해 그의 욕망을 노골적으로 느낄 수 있듯이, 로즈가 탐사정에 오르기 전까지 탐사대장의 주의를 끄는 것(전경)은 타이타닉호와 함께 가라앉은 다이아몬드, 즉 ‘돈’에 대한 것이었다. 심지어는 자신을 ‘보물 사냥꾼’이라 칭할 만큼 그에게 있어서 타이타닉호 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조금은 덜 중요한 배경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나이 든 로즈의 이야기를 통해 이들은 심리적인 전경과 배경이 바뀌게 되면서 타이타닉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갖게 된다. “타이타닉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잊고 있었다, 그 안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라는 탐사대장의 대사로 이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이 든 로즈의 이야기를 듣는 캐릭터들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닮아있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실제 타이타닉호 침몰 사건에 대해 때로는 분노를 느끼기도, 때로는 슬픔을 느끼기도 한다. 제임스 카메론이 연출한 전경과 배경이 단순히 영화기술적인 측면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나아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관객들이 실제 사건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끔 만든 것이다. 이렇듯 그의 탁월한 연출력은, 어쩌면 영화를 통해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그만의 남다른 방식이 아니었을까.




★★★★★ (5.0)

필자는 얼마 전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방영한(2018.03) 다큐멘터리 <타이타닉, 그 후 20년>에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밝힌 영화 제작 비하인드를 들으며 그가 망자를 대하는 태도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려는 다른 영화인들과 많이 다름에 더욱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한 번쯤은 이 영화를 다시 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친다.



<씨네 21> 이다혜 기자님의 글쓰기 마스터 클래스 '쓰않보않' 수업 중 최종 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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