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인물의 관계만 중요했던 뻔한 한국영화
본 글은 영화를 해설하는 과정에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관람 후 읽으시길 권장드립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영화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국뽕과 감정 과잉. 특히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반드시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킨다. 서사는 부족하고,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에서 천천히 쌓아야 할 감정은 눈 깜짝할 새에 불어나 신파 같은 음악과 함께 스크린에 넘쳐흐른다. 한석규와 최민식이라는 두 배우의 조합만으로 이번엔 조금 다르겠지 했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세종대왕은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를 통틀어 숱하게 회자되어 온 인물이다. 훈민정음 창제의 업적과 더불어 애민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성군으로 기록되고 있으니 위인이라 칭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소재이고, 장영실 또한 조선왕조 500년 역사 중 위대한 과학자로 당대의 두 천재를 함께 보여준다는 것은 개봉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샀다. 게다가 '실록에 기록되지 않은 장영실의 실종에 상상력을 보탰다'는 시놉시스는 관객으로부터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더하다 못해 결국 예매를 하게끔 만든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간적인 관계에 너무 치중했던 탓일까. 영화는 시종일관 이도-영실의 '관계'만 조명하고 나머지 역사적 사건, 의상, 영상미, 음악까지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극 영화에 기대하는 그 어떤 것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영화의 제목이 '천문'인 만큼 기대했던 것이 바로 세종 재위 기간 내 장영실이 만든 천문의기와 자격루에 대한 비하인드다. 하지만 비중 있게 다뤄야 할 장면들은 금세 지나가고 영화의 완성도를 높일 장영실의 과학적 설명도 한두 줄에 불과할 만큼 짧다. 소재는 다르지만 같은 세종 때를 배경으로 한 영화 <신기전>(2008)은 발명의 과정을 주로 보여주었던 반면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는 두 인물이 천문학 발전에 힘을 쓰게 되는 계기마저 "오늘부터 저 별이 니 별이다."라는 브로맨스적 대사로 무마시킨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 중요한 매개로 등장하는 안여(安輿) 조차 장영실이 세종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이것이 어떠한 이유 때문에 만들어졌는지, 제작 과정 등의 서사는 생략하고 결국 이렇게 생긴 영화의 빈틈은 생뚱맞게도 훈민정음 창제라는 핑계로 매운다. (영화 초반 장영실이 안여 천장에 별자리를 그려 넣는 것 역시 배우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와 줌 인(Zoom-in) 기법으로 인물의 심정에 더 몰입하게끔 만드니 이거야 말로 빼박캔트 관계중심적이다. '천문'은 어디 가고 '훈민정음'인지... 개연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영화는 계속해서 이도-영실의 브로맨스적 요소를 대놓고 흘려보낸다. 그 사이에서 급 전개의 물살을 탄 영화는 결국 자주외교를 갈망하는 군주와 사대외교를 주장하는 신하들 간의 뻔한 대립을 보여주다 막을 내린다. 끝내 장영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미지수고 세종의 캐릭터는 그동안 봐왔던 다른 작품들에서 그려낸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때문에 그나마 연기력으로 이 영화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 여러 배우에게 감사할 정도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실록에서 영감을 받았을 뿐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다 하였으니 관객은 자연스레 이 영화가 보여줄 상상력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픽션인 점을 감안한다 해도 서사는 짧고, 중간중간 등장하는 웃음요소 조차 약할 정도의 허술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껏 많은 한국영화가 그랬듯 국뽕과 신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는데 잘 만든 웰메이드 사극이라니. 이거 포장이 너무 과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