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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100년 100경』

(저자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돌베개)

by 플레이

대한제국 광무 11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묘동에 대한민국 최초의 상설 영화관이 세워졌다. 바다 건너 서구에서 들여온 '활동사진'을 구경하고자 극장은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고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1919년, 한 영화가 개봉했다. 신극좌 김도산 일행과 극장의 사장이었던 박승필이 제작한 이 영화는 계모에게서 갖은 힘듦과 부당한 처사로 모진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 '송산'이 복수를 한다는 내용으로 당시 일제강점기였던 우리의 삶과 매우 닮아있음에 국민들의 울분을 자아냈다. 한국영화사의 첫 시작인 <의리적 구토>와 '단성사'에 대한 이야기다.


100년이 지난 올해 5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100살을 맞이한 시점에서 이것은 그 무엇보다 값진 선물일 것이다. 국립 영화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는 등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보가 영화계 내에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한 권의 책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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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책이 내 손에 들어왔고, 두꺼운 양장 커버를 넘기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내용에 조금 놀랐다. 대개의 위원회 혹은 협회의 이사진 및 핵심 인물들을 상상하면 나이 많고,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권력으로 갖은 악행을 일삼는 중년(혹은 그 이상)의 모습이 그려지기 마련인데(영화를 너무 봤나...) 이장호 감독부터 배우 장미희, 안성기 그리고 영화계에서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아왔던 감독과 작가 등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평소 저 인사들의 행보를 따져봤을 때 단순히 얼굴마담으로 자리한 게 아닐 것이라고 감히 짐작된다. 이 책이 내게 차갑고 딱딱한 전공서적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은 이유도 위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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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책을 고를 때 겉표지에 쓰인 추천사를 믿지 않는다. 본래 서평이란 대부분이 인맥을 동원해 이루어지고 그의 대가로 현물이 오가는 경우도 여럿 보았기 때문. 그래서 제목을 보고 끌리는 책을 발견하면 무조건 목차를 먼저 확인해본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목차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애매한 책은 목차도 애매하다. 이 책을 꼭 사야겠다고 확신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이제껏 많은 책을 봐오며 이렇게 목차가 잘 정리된 책도 드물었다. 100년의 역사를 주요 사건별로 정리하고 부제를 달아 해당 연도에 화제가 된 인물의 이야기까지 간략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전공하며 공부하는 학도에겐 더없이 좋고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도 일반상식으로 익히기에 부족함이 없는 카테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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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성이 뛰어난 레이아웃은 내용이 살아 숨 쉰다는 느낌까지 들게 했다. (얼마 전 텀블벅에서 후원한 모 책의 레이아웃이 영 맘에 들지 않았던 터라 더욱 비교되었다.) 글자의 크기가 조금 작아서 오래 보면 눈이 아플게 뻔하기에 과감히 여백을 많이 남긴 것 같다. 선명한 사진 또한 만족스럽다. 글을 읽으며 사진을 함께 보니 마치 역사의 현장에 내가 서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원고의 배열과 사진의 위치, 그리고 알찬 내용까지. 편집자의 노고가 곳곳에서 보인다.




책장에 꽂아두고 천천히 오래도록 즐기고 싶은 책은 참 오랜만이다. 종이를 숭배하지 말라는 이동진 작가의 말에 끄덕이며 이후 줄곧 책에 밑줄을 긋고 책장을 접는 등 '종이는 종이일 뿐이다.'라는 것을 몸소 실천했던 나였지만 이 책만큼은 소중히 대하고 싶다. 에세이도, 소설도 아닌 위원회에서 발간한 책이 이렇게까지 마음에 다가오다니. 실로 놀랍지 않은가.

한국 영화의 100주년. 그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이 책을 통해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가 조금이나 영화에 더 다가가기를.






영음소녀 네이버 포스트를 통해 2019.11.20 업로드된 글입니다.

해당 원고를 옮기는 과정에서는, 브런치 측에서 제공하는 맞춤법 검사 툴로 오탈자만 새로이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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