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산업을 확장시킨 숨겨진 힘 (저자 조성진/ER북스)
대기업이 장악한 멀티플렉스가 영화산업을 더욱 활발히 만들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3사의 독점으로 기존의 크고 작은 개인 극장이 점점 소멸되고, 특정 영화에 스크린 몰아주기, 가맹점주를 상대로 한 갑질 등 소위 말하는 '대기업의 문제'가 빈번하게 대두되고 있지만, 투자처가 마땅치 않아 영화 제작에 어려움을 겪던 옛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지금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큰 자본이 유입되어 돈이 돌아야 뭘 하든 말든 할 게 아닌가.
문예영화가 흥행하던 194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미국 내 극장은 30여 개에 불과했다.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된 미국의 멀티플렉스는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현재는 16개 이상 스크린을 보유함과 동시에 모션시트, 특수 조명과 같은 시설을 포함한 메가플렉스(megaplex)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98년 등장한 한국의 멀티플렉스는 빠른 속도로 발전했고, 수도권에 거주하는 국민의 경우 생활권 안에 한두 개쯤의 메가플렉스가 존재하는 오늘날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안타깝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대기업이 존재하는 게 일상이다.
나 역시 거주지 30분 거리에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가 자리하고 있으며 편안한 의자와 사용자가 편리하게끔 잘 만든 예매 시스템(APP), 직접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예쁜 포토티켓과 침샘을 자극하는 다양한 매점 메뉴 등 여러 유혹 때문에 대기업을 끊지 못하고 한동안 CGV의 노예로 살아왔다. 게다가 얼마 전까진 '이런 공간을 만든 이 회사야말로 정말 혁신적이구나' 하는 나름의 환상(혹은 대기업뽕)도 있었다. 그러던 중 2018년 가을, 이 책을 구입했고 부산에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단시간에 후루룩 읽었다.
이 책의 저자 조성진 씨는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케이블 TV 대교방송 프로듀서로 입사하였다가 이후 한국경제 TV로 이직하여 경제 전문 PD겸 기자, 부동산부와 산업부 부장을 지냈지만 더 늦기 전에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퇴직의 위험 부담을 안고 2014년 CJ CGV 홍보 팀장으로 입사했다고 한다. 이 책이 발간된 2018년 4월에 대외 커뮤니케이션, 대관, 법무, 사회 공헌을 총괄하는 전략지원담당 업무를 맡고 있다고 했는데 네이버 인물정보에 더 이상의 경력 업데이트가 없는 걸 보니 아직까지 현직에 있는지는 미지수다.
저자가 CJ 소속이다 보니 CGV를 기준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챕터가 여럿 있다. 타사에 비해 CGV만의 특별한 기술이라 자부하는 '스크린 X' 상영관과 국내 최초 영화 도서관인 '씨네 라이브러리' 등의 제작 비하인드가 대표적인 예지만 그렇다고 저자는 본인의 회사가 무조건 잘났다고 말하지도, 읽는 이로 하여금 CGV 소비를 독려하지도 않는다. 영화업계가 왜 수직계열화를 촉구하는지, 혹은 스크린 독과점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현 CGV의 상황을 최대한 담백하게 말하면서 동시에 몇몇 문제에 대해서는 잘못되었다는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바로 한국의 멀티플렉스 역사가 책 한 권에 담겨있고, 중간중간 영화와 영화산업에 대한 TMI 같은 용어 설명이 지루함을 덜어준다는 것이다.(이쯤 되면 TMI가 아니라 Please More Information 아닐까) 또한 이 책은 극장이 지금보다 월등한 차별성으로 소비자를 사로잡지 못하면 결국 IPTV와 OTT 서비스에 살아남지 못하고 밀릴 것이라 말한다. 회사에 소속 중일 때 집필한 글이니 나름의 눈치가 보였을 법도 한데 소신껏 발언하는 모습에 이 책을 단순히 자사의 사업군을 소개하는 가이드북인 양 오해하는 시선을 단박에 거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이 어두운 밤바다를 비춰주는 한줄기의 등대같이 우직하다거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처럼 흡입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장르가 다르니 그것도 당연하겠지만) 다만 영화산업에 관심이 많았던 그 당시 나에게는 더없이 재밌는 정보들이 가득했고,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의 TMI 중 한 분야로 자리매김과 동시에 책장 한편에 조용히 서 있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영화를 사랑함을 넘어서 극장이라는 공간에 애착을 가지고 있고, 나아가 영화 산업에도 관심도가 높다면 아마 나처럼 금방 페이지를 넘기며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영음소녀 네이버 포스트를 통해 2020.02.04 업로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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