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고전을 사랑하는 방식

알프레드 히치콕의 여백을 채운 영화 <레베카>(2020)

by 플레이

본 평론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관람 후 읽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히치콕의 세계는 한결같고, 어찌 보면 단순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여러 정서 중 가장 불안하고 위태로운 부분을 찾아 계속해서 두드리다 눈처럼 쌓여 마침내 커다란 서스펜스로 폭발해버리고 만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오프닝 크레딧으로 한껏 미스터리를 강조했던 <현기증>(1959)부터, 굳이 노먼 베이츠에게 죽임을 당하는 씬까지 가지 않아도 상사의 돈을 횡령해 달아나며 시종일관 긴장감을 보여주던 <싸이코>(1962)를 지나, 12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단 한 번의 음악도 나오지 않지만 떼 지어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관객 모두를 공포감에 떨게 했던 <새>(1966)에 이르기까지. 그가 남긴 영화들 속 팽팽한 서스펜스가 곧 서사이자 주인공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이 이렇게 통일된 구조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단순하다고 해서 그저 사소한 오락거리로 치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의 단순함은 영화 산업 내의 최초나 다름이 없었고, 서스펜스는 결국 교과서처럼 하나의 장르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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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작품 중 하나인 <레베카>(2020)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다시 태어났다. 사실 <레베카는> 히치콕의 영화라는 이유만으로도 유명세를 떨쳤지만 20세기 서스펜스의 여제라 불리는 영국의 문학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원작 소설로 이미 명성이 높은 소재였고,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옥주현 주연의 뮤지컬로 잘 알려져 있었기에 이번 리메이크가 넷플릭스에게 선이 될지 독이 될지 영화계의 많은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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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tin-Scott-Thomas-dans-Rebecca-394093.jpg 누가 그랬던가. 맥심이나 댄버스 부인이나 레베카를 사랑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죽은 전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해 매 상황마다 우유부단함을 보여주는 맥심이나 레베카의 드레스를 입어 곤란스러운 상황에 빠지는 드 윈터 부인 등 스토리의 큰 틀은 이번에도 원작과 동일하다. 오히려 원작이 충실한 작품에 상상력을 과도하게 보탰다가는 혹평을 면치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을 제작진의 선택이었을 터. 다만 몇 가지 디테일이 달라졌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댄버스 부인의 최후이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에서는 불이 난 맨덜리 저택을 연상시키며 이야기가 마무리되기 때문에 댄버스 부인이 죽었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가 없다. 반면 히치콕의 <레베카>에서는 불이 남과 동시에 댄버스 부인이 저택 안에서 잿더미에 깔려 생을 마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는 히치콕이 각색을 통해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넷플릭스판의 결말은 댄버스 부인이 저택에 불을 지른 후 절벽에서 투신하여 깊은 바닷속으로 잠긴다. 누구보다 레베카의 곁에서 그녀를 아끼며 보필했던 댄버스 부인의 죽음을 '불'이 아닌 '물'로 마무리 지은 것은 오히려 먼저 떠난 레베카를 잊지 못하고 따라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전달해 줘서 원작이나 히치콕의 작품보다 매끄러운 면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앞서 끌고 왔던 인물의 짙은 감정선을 마무리 짓기에 충분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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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에서 2020년에 오기까지 많은 기술의 발전이 있었던 만큼 필름 내에서도 다채로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이번 넷플릭스판 <레베카>(2020)를 통해 다시 한번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원작이 개봉한 1940년대에는 아카데미 비율인 4:3(1.37:1) 비율을 주로 사용한 반면, 현재는 2.35:1을 넘어 아이맥스까지 확장시켜 더 큰 화면에 많은 정보들을 담아낸다. 넷플릭스는 2.35:1 비율과 생동감 넘치는 컬러를 선택함으로써 고전영화 특유의 뚝뚝 끊기는 전개를 벗어나 이야기에 살을 더하고 있다. 특히나 맨덜리 저택 입구에 우거진 나무 덩굴은 레베카의 사후에도 맥심과 얽혀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고, 몽유병으로 잠자리를 헤매던 씬을 채우는 짙푸른 색감은 결국 댄버스 부인의 최후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 (4.0)

애초에 이 영화는 히치콕의 명작을 뛰어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뿐더러 넷플릭스가 의도한 바도 그것이 아닐 것이다. 다만 시대적 배경의 간극을 최소화하고, 원작의 스토리텔링에 살을 더했기에 나는 이것이 이야기꾼 넷플릭스가 고전을 사랑하는 방식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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