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사랑도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의지가 수반된 행동 성숙이 필수
사랑을 이해하려면
사랑의 주체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온전하지도 완전하시도 않습니다.
누구나 하자와 실수가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의 사랑에는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한 갈등과 다툼도 야기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사랑이 하는 사랑도 그러합니니다.
사랑을 이해하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모두가 다릅니다. 각각이 하나의 소우주입니다.
원 앤 온리 & 유니크한 독립적인 인격입니다.
사람은 시대, 교육, 언어, 문화, 사상, 경험 등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한 솥밥 먹고 자란 쌍둥이 형제라 하더라도
기질과 특성에 따라 행동양식이 다릅니다.
사람에게는 자기가 아는 나와
자기도 잘 모르는 모습이 내재되어있습니다.
이 녀석은 어떤 조건만 형성되면 불쑥 나와서
자신은 물론 주변의 사람까지 흔들어놓습니다.
사람의 공통점은 누구나 참다운 사랑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참다운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닐까요.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즉 다양성 속의 일치가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사랑을 이해하려면 내적 성숙이 필수사항입니다.
온전한 이해가 안 된다 하더라도 완전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내적 성숙이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뿐 아니라
상대의 미숙으로 인한 아픔과 고통을 받아들이겠을 말하지요.
잘 보면 상처는 사랑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위한 출발점이자 에너지원이지요.
아픔 역시 성숙을 위한 필수 비타민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랑도 인생도 곳곳에 놓인 장애물을 뛰어넘는
장거리 허들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띄어 넘어서자마자 낭떠러지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의 아픔과 고통을 넘어선 만큼 성취와 행복을 경험할 수 있지요.
대부분 걸려 넘어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때로 걸려서 넘어질지라도 나를 아프게 만든 허들만 탓하면
성숙의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함정에 빠지거나 절벽에서 자유 낙하했다고 해서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소아적 경계심만 커질 뿐 유익이 없습니다.
그것을 뛰어넘지 못한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시 도전하는 것이 성숙한 모습이겠지요.
적어도 나는 그렇지 말아야겠다고 반면교사를 삼아야 할 것입니다.
내 발을 걸어 넘어뜨린 사람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면 어떨까요.
"제 발에 차여서 아프지는 않으셨나요. 호오~ 입으로 불어드릴게요.
"저를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무엇이 드시고 싶으신가요?
“제가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는 훈련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숙시켜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짜장면이라도 모시고 싶습니다.
진짜 감사하고 싶은 것은 당신 덕분에 날개가 달린 것 이랍니다."
하늘을 높이 나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 된 것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