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내 두물머리에서
다산 정약용을 기리며
차고 급한 북한강과 따스하고 잔잔한 남한강은 능내에서 하나가 되어 흐릅니다.
아비가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비극의 시대는
노론과 소론, 벽파와 시파, 우익과 좌익, 보수와 진보로 이름만 바뀌어 흘러갑니다.
동서고금 난세가 아닌 역사가 어디 있었겠습니까만
오늘의 조선은 여전히 남북 긴장, 남남갈등의 연속입니다.
빛과 어둠의 양면성을 가진 인간의 군상들은 크게 소인배와 대인배로 나뉩니다.
소인배는 잔머리에 능하고 표리 부동합니다. 그들은 일신 영달과 부귀영화를 추구합니다.
그 옛날, 유년시절의 당신이 자맥질하며 물고기를 잡아 올리던 강가에 섰습니다.
당신은 청운의 꿈을 품고 약관의 나이에 혜성처럼 나타나셨습니다.
508권의 빛나는 저술과 한강의 배다리와 수원화성을 축조하셨습니다.
실사구시
학문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통합하신 것도
남, 북한강 두 강물이 어우러지는 두물머리에서 꿈을 키우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권력과 영달을 추구하는 악역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들은 열등감과 시기심과 편 가르기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제 밥그릇 챙기는 것이 목적인 자들입니다. 암세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들은 잔머리와 이간질이 주특기입니다. 막무가내가 전략입니다.
당신은 살얼음판을 걸으셔야 했습니다.
반대파들까지 너그럽게 포용하시며 중용의 도를 실천하려 노력하셨습니다.
능내에서 바다 같은 강을 보며 자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신은 대의명분, 선공후사, 공명정대를 추구했습니다.
서학을 공부하며 큰 안목으로 넓은 세상을 바라보려고했습니다.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인문학적인 소통으로 역사를 발전시키려 했습니다.
군주는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선각자 이셨습니다.
당파의 이익보다 백성들의 유익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정조라는 현군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커지려는 자 앞에서 기꺼이 작아지셨고
오르려는 자 앞에서 기꺼이 낮추셨으며
나아가는 것만 아는 자들 앞에서 기꺼이 물러날 줄 아셨습니다.
다시 왕의 부름을 받고 조정에 들어서려는데 이 어인 청천벽력이란 말입니까
정조 임금의 승하
큰 별이 떨어지자 이내 어두움이 몰려왔습니다.
소인배들의 모함으로 가족과 생이별한 채 유배지 강진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습니다.
당신이 일곱 살에 지은 시처럼 당신은 가까운 작은 산에 가린 멀리 있는 큰 산이셨습니다.
그 후 18년간 오로지 애민의 정신으로 어진 성군과 선한 목민관이 다스리는
잘 사는 나라를 설계하셨습니다.
백성의 주리면 함께 주리고,
백성이 헐벗으면 함께 헐벗으며,
백성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백성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신 진정한 백성의 아버지로 사셨습니다.
당신의 몸은 비록 갖혀 있었지만
마음만은 목자의 심정을 가진 스승이요, 참 군주, 무관의 제왕이셨습니다.
이백 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나는 강진에서 올라온 녹차 한 잔을 마시며 깊은 상념에 빠져듭니다.
연초록으로 우러난 명경지수
어르신의 깊고 푸른 마음과 마주하며 향연처럼 피어오르는 은은한 당신의 음성을 듣습니다.
시대는 당신을 버렸지만 역사는 당신을 기립니다.
세월은 당신을 강물처럼 흘려보냈지만 나의 가슴속에는 별 빛으로 총총합니다.
아 민족의 참 어르신이여
만 백성을 주군으로 섬긴 충신이시여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나 먼지처럼 사라지고
당신이 이 시대에 다시 살아 한강처럼 도도히 흐르신다면...,
내가 그때 살다가 안개처럼 사라지고
당신이 오늘 여기에 사시면서 백두산처럼 우뚝 솟아계시다면....
당신처럼 올곧게 나라와 백성을 위해 살 순 없을까요
아직도 당쟁과 사화와 반정이 끊이지 않는 피로 얼룩진 이 나라를 온전히 치유할 순 없을까요
당신이 이루지 못한 뜻과 꿈
이 땅에 이루어 한을 풀어드리고 싶습니다.
다산 어르신의 커다란 물줄기에
작은 물방울로 합류하여 메마른 시간과 역사 속으로 흐르고 싶습니다.
강물이 가는 곳마다
찻잎 같은 연한 순이 돋아나고
물고기가 펄떡이며 뛰어오르고
아이들이 발가벗고 깔깔대며 물장구치는
아름다운 강산이 이루어지는 그 날이 오기까지...